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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현 Jun 09. 2022

30만 원짜리 도쿄

<그 시절 그 물건: 부루마블>

   동네 공터에는 학교를 마친 아이들이 축구공으로 패스 연습을 하며 몸을 풀고 있다. 이미 발자국 열 개만큼의 간격을 두고 책가방을 양옆에 쌓아 골대도 만들었다. 꽤 여럿이 모이긴 했지만, 축구를 하기에는 인원수가 아직 부족하다. 우리가 낀다면 그런대로 시합을 시작할 머릿수가 되겠지만, 우리는 밖으로 나갈 생각이 없다. 세계는 서울로 모이고 서울은 세계로 뻗어나가는 글로벌한 시기에 한갓진 동네 공터에 모여 공이나 차고 있을 수는 없다. 올림픽도 코 앞이다. 세계는 서울로, 서울은 세계로, 그러니까 우리도 세계로.


   보드판을 꺼내면 세계가 펼쳐지며 우리를 기다린다. 씨앗은행은 상환할 필요도 없는 목돈을 두둑이 쥐어준다. 이동수단은 주사위 2개. 준비물은 필요 없다. 여행책자를 살펴볼 필요도 없다. 방문할 도시에 머무르는 시간은 내 다음 턴이 돌아와 다시 주사위를 던질 때까지의 짧은 시간이다. 각 도시에 들르는 목적은 땅을 사기 위함이지 관광이 아니다.


   동희가 먼저 출발한다. 동희의 손을 떠난 주사위는 보드판 위를 몇 바퀴를 구르다 1과 5를 내보이며 멈춘다. 합이 6. 주사위가 알려주는 도착지는 싱가포르이다. 첫 번째 땅문서는 동희가 얻었다. 광철이는 기도하듯 주사위를 두 손으로 맞잡아 기를 모으고는 힘차게 주사위를 던진다. 주사위 하나가 보드판 밖으로 밀려나며 4를 가리킨다. 상관없다. 윷놀이가 아니니 낙은 없다. 보드판 위의 주사위는 머리에 6을 얹었으니 합이 10. 광철이는 머리를 감싸 쥐며 무인도에 들어앉는다. 푹 쉬어라. 이제는 내가 떠날 차례. 주사위를 던진다. 3과 6이다. 경유 없이 단번에 이스탄불에 도착한다. 12만 원을 씨앗은행에 지불하고 이스탄불의 땅문서를 얻는다. 시작이 좋다. 다음 도착지는 스톡홀름이었으면 했는데, 동희가 선점한다. 그렇다면 베를린을 노려봐야지. 주사위의 합이 9가 될 조합을 머릿속에 그리며 주사위를 던진다.




   대학을 졸업하고 들어간 첫 회사는 일본 관공서에 관리 소프트웨어를 납품하는 회사였다(입사하고 나서야 알았다). 사무실로 걸려오는 전화의 대부분은 일본에서였고, 직원들은 자연스럽게 일본어로 대화를 나누었다. 회사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나에게 가장 시급했던 언어는 c++이나 python, javascript 같은 프로그래밍 언어가 아니라 Japaness였다.


   입사 후 며칠이 지나고, 그날따라 유독 출근이 빨랐던 날, 그래서 사무실에 나 혼자였던 날, 하필이면 전화벨이 울렸다. 받아야 하나. 일본에서 온 전화면 어떡하나. 몇 초간 고민을 하다 수화기를 들었다. 전화기 너머에서 일본어가 쏟아져 나왔다. 뭐라는 걸까. 그러니까 난, 전화를 받지 말았어야 했다. 어쩔 수 없이 받았더라도 '캔 유 스피크 잉글리시?'라고는 하지 말았어야 했다. 상대방은 당황했는지 한동안 말없이 숨소리만 몇 번 내더니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날 오후, 팀장님에게 회사의 갑을 관계에 대한 강의를 들었고, 내가 다니는 회사는 을이어서, '캔 유 스피크 잉글리시?'같은 건방진 말 대신 '스미마셍'을 입에 달아야 한다는 훈계를 들었다.  


   입사한 지 반년이 조금 지나고, '스시마셍' 정도는 자유롭게 구사할 정도의 일본어를 익혔을 때, 일본으로 파견을 나가게 되었다. 최소 6개월 이상의 장기 파견이었다. 근무지는 도쿄였다. 부루마블 출발선에서 31칸이나 떨어져 있던 곳. 한국을 제외하고 다섯 번째로 비쌌던 곳. 땅문서의 가격이 30만 원이나 되었던 곳. 한국 밖으로 나가는 건 처음이었다.


   도쿄의 첫인상은 흙이 까맣다는 것, 까마귀가 많다는 것, 그리고 우동이 맛있다는 것이었다. 파견 간 회사에서 사토는 업무를 지시했고, 그 지시를 나카무라와 함께 들었다(사토, 나카무라라는 이름이 너무나 낯익어서 오히려 낯설었다). 나카무라는 나와 비슷한 또래였는데 사토 앞에서는 늘 긴장했고, 나와 둘이 있을 때에는 일본어 선생이 되어 주었다. 나카무라는 훌륭한 일본어 선생은 아니었다. 엉터리 일본어를 더듬거리면, 그 말을 문법에 맞게, 혹은 일본인들이 잘 쓰는 표현으로 매만져주면 좋았을 텐데, 단 한 번도 그러지 않았다. 나카무라는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해 미안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스미마셍’을 입에 달고는 엉터리 말의 의미를 찾으려 노력했다. 일본인 특유의 배려인가.


   두어 달이 지나고 나카무라를 내가 머무는 숙소에 초대한 날은 나카무라의 차를 타고 이동했다. 차에서는 보아의 <넘버원>이 나왔다(미리 준비한 티가 났다). 한국의 라면을 맛보고 싶다는 나카무라에게 신라면과 짜파게티를 내놓았다. 신라면은 스푸를 반만 넣었는데도 맵다며 땀을 흘렸다. 검은색이어서 주저하던 짜파게티의 맛을 보고는 연신 '우마이'를 외치며 한 그릇을 비웠다. 라면을 치우고, 나는 맥주를, 나카무라는 녹차를 마시며 더듬더듬 조금은 긴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나카무라는 도쿄대학을 나왔고, 아직 애인은 없고, 주말이면 컬링을 즐긴다고 했다. 컬링? 하며 되물었더니 나카무라는 양손을 들어 빗자루질 흉내를 냈다. 우동이 정말 맛있다고, 한국에서 먹던 맛과는 다르다고 했더니 나카무라는 한국에도 우동이 있다는 사실에 더 놀랐다. 집으로 가는 나카무라에게 짜파게티 한 봉지를 쥐어 주었는데, 나카무라는 두 손으로 공손히 짜파게티를 들고 '아리가또'를 다섯 번쯤 말했다. 그럴 줄 알았으면 한 봉지 더 쥐어 줄걸.


   8개월의 파견기간이 끝나 한국으로 돌아오고 나서도 나카무라와는 회사 메일로 몇 번 안부를 교환했다. 나카무라의 메일엔 짜파게티 이야기가 매번 담겨 있었다. 그러다 1년이 지나고 내가 다른 회사로 이직을 하면서 나카무라와의 인연도 끝이 났다.


   도쿄는 부루마블의 작은 칸으로만 존재했었다. 땅문서를 사고, 호텔을 짓는 것 외에는 별다른 이야깃거리가 없는 곳이었다. 그 작은 칸에 수많은 이야기가 담겨있다는 것을 주사위를 던져서가 아닌, 비행기를 타고 가서야 알았다. 우동이 맛있다는 것도, 사토와 나카무라라는 성씨가 정말 있다는 것도(도요토미와 이토는 만나지 못했다), 짜파게티가 일본인의 입맛에 딱 맞는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도쿄의 이야기가 풍부해졌다. 비록 30만 원짜리 도쿄의 땅문서는 사지 못했지만.




   세계 곳곳의 땅문서와 호텔들을 가지고 있는 내가 고작 런던에 동희가 소유한 호텔 숙박비를 감당하지 못하고 파산하면서 게임은 끝난다. 지금 생각해보면 호텔에서 도대체 뭘 했길래 숙박비를 감당 못해 파산을 했나 싶기도 하지만, 이스탄불의 땅문서를 12만 원 주고 샀다는 것부터가 말이 안 되기는 매한가지니까.


   주사위만 던지면 어디든 갈 수 있었던, 그리고 12만 원으로 이스탄불을 살 수 있었던 그때의 시절은 지나갔다. 이제는 현실에서 부루마블의 작은 칸에 예전엔 미처 몰랐던 이야기를 채워 나가고 있다. 도쿄에서 나카무라를 만난 것처럼, 리스본에서 가르시아를 만나고, 상파울루에서 곤잘레스를 만나고, 이스탄불에서 에미르한을 만나면서.





Image by Pixabay



4인 4색, 결 다른 사람들이 글쓰기 위해 모였습니다.

제대로 한번 써보자는 모의이며, 함께 생각을 나누며 어울려 살자는 시도입니다.

격주 목요일 매거진에 글로 작당 모의할 예정이니 지켜봐 주시길 바랍니다.

자, 그럼 수작(手作) 들어갑니다~, 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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