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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운 Jun 09. 2022

이런, 쓸모없는 호기심 같으니라고

<그 시절 그 물건: 88 담배>

그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여기저기 피어나고 곳곳에서 봉기하여 날아올랐다. 그것은 태양 아래서 당당히 존재감을 과시하였으며  비 오는 날 처마 밑에서 낮게 깔리며 스며들 줄 알았다. 그것은 자유와 고독의 서사시, 삶이 만들어낸 한숨과 함께 날려 잊혔고 잠시의 휴식으로 사라졌다. 그것은 어른의 세계, 어른의 놀잇감이자 전유물, 새파랗게 젊은 놈이 가까이했다간 가끔 혼쭐이 났다. 그래서 젊은것들은 돌아서서 혹은 뒷골목에서, 숨어서 그것과 조우했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아빠의 담배 심부름을 가끔 다녔다. 술 심부름을 한 것도 물론이다. 요즘은 미성년자에게 술과 담배를 팔지 못하지만 예전에는 돈만 내면 누구나 살 수 있었기에 가능했다. 심부름을 흔쾌히 자처한 것은 단 하나, 자투리 돈이 심부름값으로 떨어졌기 때문인데 용돈이 궁할 때면 "아빠, 담배 사다 드릴까요?" 먼저 물어보기까지 했다. 심부름의 시작은 <한산도>부터였다. 이후 <은하수>와 <거북선>도 있었고 80년 대에는 솔아 솔아 푸르른, <솔>이 주류를 이루었지만 <아리랑> <한라산> <도라지> <라일락> <태양> <88>로 이어졌다. 


   

   담배 심부름을 하면서 그 맛이 궁금했던 것은 가게에 가면 항상 "oo 하나 주세요" 하고 이름을 불러줘야 했는데 이름이 쓸데없이 친근하고 근사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담배를 피우는 아빠의 모습도 나쁘다거나 혐오스럽게 느껴지지 않았다. 엄마는 항상 아이들 앞에서 피우는 담배를 못마땅하게 여겼고 징글징글하다고 잔소리를 해댔지만 담배를 피우는 아빠의 모습은 예의 신중했고 진중해 보였다. 후~ 하고 뿜어대는 연기 사이로 비치는 얼굴에서는 고달픔이랄까 고민의 흔적이 엿보였기에 어떤 삶의 무게감까지 느껴지는 것이었다.


   7,80년 대만 해도 남자 어른들은 열에 아홉 담배를 피우던 시절이었다. 학창 시절 동네 선배의 꼬드김이나 호기심에 담배를 피기 시작했겠지만, 담배의 '담' 자를 모르던 사람들도 군대에서 무조건 배워 나오던 때이기도 했다. 담배는 장소 불문이었다. 시내버스에서 사무실에서 극장에서 음식점에서 커피숍에서 길거리에서 담배는 허용됐다. 판매도 비교적 자유로워 버스정류장 신문 가판 가게나 포장마차 같은 곳에서는 낱담배, 즉 개비 단위로 팔기도 했다. 심지어 어른들은 집에서도 식구들 눈치 보지 않고 피워댈 때였다. 특히 청소하시는 분들이 다녀가기 전, 아침 등굣길 어디에서나 꽁초는 나뒹굴었고 수북이 쌓여있기까지 했다. 골목길, 대로변, 버스정류장 어디에서나 삶의 편린(片鱗)들은 흩어져 있었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담배는 고독과 치환되는 그 무엇이었다. 담배는 어린 나의 일상 속에 거리감 없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기에 호기심까지 자연스럽게 자리하게 되었을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어이없기도, 우습기도 한 일이지만 '어른이 되면 꼭 해보고 싶은' 목록 중 첫 번째가 담배 피우기였다. 버킷리스트 1번. 담배에 대한 환상은 단지 호기심 하나 때문은 아니었다. 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는 열망이었다. 어른의 세계는 그런 것이었다. 하고 싶은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스스로 결정하고 주도하고 책임지는 것. 3살 때 어른들에 대한 반항심으로 더 이상 자라나기를 포기한 <양철북>의 주인공 오스카와는 정반대의 경우다. 오스카가 본 어른들의 세계는 타락하고, 나치즘을 받아들이고, 불륜을 저지르고, 성적 욕망에 휩싸이고, 현실에서 도피하고, 약자를 괴롭히며 기회주의적이기까지 했다. 그러나 내 주위에 펼쳐진 어른들의 세계는 빨리 써 내려가고 싶은 일기와도 같았다.  


   1987년, 그렇게 대학생이 되었다. 7살에 국민학교에 입학한 나로서는 아직 미성년자였지만 대학교 앞 주점에서 술을 마실 수 있었고 학생증을 제시하면 시내 어디에서도 술을 마실 수 있었다. 분홍색 투피스에 랜드로바 신발과 가방을 메고 책 몇 권 옆구리에 끼고 입학식을 치른 얼뜨기 새내기는 순수해 보이는 모습과는 달리 마음에는 잔뜩 어른의 세계를 장착하고 있었다. 오라, 어른의 세계여! 가자, 어른의 세계로! 뭐 이런 슬로건이지 않았을까.


   이왕 하는 거 멋있게 폼 나게 하고 싶었다. 처음 하는 것처럼 어설프게 보여서도 안되고 잘못하여 실수해서도 안되었다. 연습이 필요했다. 당시 아빠는 밀양에서 직장을 다니고 계셨기 때문에 주말이 되어서야 식구들이 사는 부산 집에 오셨다 가셨다. 아빠만 집에 계신다면 담배는 언제든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솔 담배 하나를 훔쳐 3월의 어느 토요일, 늦은 저녁, 옥상으로 올라갔다. 스릴을 언급하자면 007 시리즈의 본드걸이 된 듯한 짜릿함이었고 온몸에 전율이 퍼졌다. 옆집 앞집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물탱크 옆에 낮은 자세로 기대앉아 담배 하나를 꺼내 불을 붙였다.



   엉망진창이었다. 연기가 훅 하고 속으로 들어오면서 매워 기침이 났고 구역감이 들었다. '이게 뭐람?' 놀라서 벌떡 일어섰다 다시 주저앉았다. 머리가 핑 돌았다. 어지러웠다. '이렇게 역겨운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피우셨던 거야?' 그러면서도 담배는 내팽개치지 않고 꼭 쥐고 있었다. 담배는 솔솔 연기를 양산해 내며 나를 유혹하고 있었다. '한 번 더 해보면 다른 무언가가 있을 거야' 호기심은 다시 일었다. 한 모금 더.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맵고 메스껍고 썼고 어지러웠다. 이건 아니다 싶었다. 어지럼증이 없어질 때까지 밤하늘만 바라보다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어야 했다. 그러나 호기심이란 게 왜 이런 상황에서만 전투력이 급상승되는 것일까? 게다가 초지일관, 끈기와 인내까지 발휘되는 것이 아닌가. 일주일 후에 다시, 또 일주일 후 다시, 담배 잘 피우기 연습에 연습을 계속했던 것이다. 부단히 노력한 결과 '술자리에서 멋있게 담배 피우기' 목적은 달성하였지만 기쁨의 환호성을 지르기도 전에 놀라움과 마주하게 되었다. 대다수의 남학생이 담배를 피우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미 많은 여학생이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80년대는 자유화, 민주화에 대한 바람과 열망이 들불처럼 일어나기 시작할 때였다. 아울러 여성의 사회 참여와 인식이 향상되고 인권 의식, 평등사상, 자유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거세질 때였는데 그 시류 중 아주 작은 한 부분이 '여성의 흡연'이지 않았을까. 우리 과에서만 보더라도 30% 정도의 여학생이 담배를 피웠을 정도였으니까.  87년, 한 고등학생이 담배 이름 공모에서 88 올림픽을 생각하며 이름 지어 당선된 <88>이 출시되면서 흡연의 전성시대를 열었고 아주 오랫동안 88의 물결이 굽이쳤다. 흡연자가 당당했던 시절이었다.


   나 역시 얼떨결에 시작한 흡연으로 인해 8, 90년대 끊임없이 담배와의 전쟁을 치렀다. 물론 팔(18)이 아닌 팔팔(88)과의 살 떨리는 전쟁이었다. 이런 팔팔 같으니라고...


   호기심도 때로는 쓸모없다는 것을 그때 알게 되었다.





4인 4색, 결 다른 사람들이 글쓰기 위해 모였습니다.

제대로 한번 써보자는 모의이며, 함께 생각을 나누며 어울려 살자는 시도입니다.

격주 목요일 매거진에 글로 작당 모의할 예정이니 지켜봐 주시길 바랍니다.

자, 그럼 수작(手作) 들어갑니다~, 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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