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기 놓친 결혼의 좋은 점
결혼을 할 상대가 있고, 언제 결혼식을 할지도 정해졌고, 식을 마친 후 떠날 신혼여행도 이미 준비가 됐다. 결혼이 이렇게 간단한 것이었나. 주변 사람들의 결혼 준비는, 자세히 들여다 본건 아니지만, 선택과 결정의 무한반복이었다. 사랑하는 사이지만 선택과 결정이 모두 일치하는 건 아니었고, 그 과정에서 둘의 사이가 안 좋아지기도 했다. 결혼이 둘만의 문제라면, 어차피 연애할 때도 수시로 싸우고 화해했던 것처럼 시간이 좀 지나면 해결이 되겠지만, 결혼은 가족 전체가 발을 담갔다. 양쪽 집안의 힘싸움에 힘들어하는 연인이 결국 파혼에 다다른다는 소재는 TV에서도 자주 나왔다.
처음 경험해보는 (누구나 그렇겠지만,) 결혼 준비여서 몇 가지 시행착오가 있었다는 걸 빼면, 대체로 별문제 없이 순조롭게 진행됐다. 둘 다 시기를 한참이나 지나고 하는 결혼이었어서 사위를, 며느리를 맞는 양쪽 부모님들이 관대하셨다.
‘데려가 주는 것만으로도 고맙지.’
상견례장의 분위기도 화기애애했다. 양쪽 부모님 모두, 평생 결혼도 못하고 혼자 살뻔한 혼기 놓친 자식 걱정을 해결해 준 고마움에 너그러웠다. 조금 늦기는 했지만 어쨌든 집안의 마지막 혼사(우린 둘 다 막내다.)를 기어이 치러낸다는 홀가분한 마음은, 상견례장의 어색함을 가볍게 눌렀다.
난 결혼식이 부담스러웠다. 평생 살아오면서 무대의 중앙에서 스포트 라이트를 받고 싶어 한 적이 없었다. 그건 내 몫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내가 원하는, 해왔던 삶은 무대 중앙의 스포트 라이트의 수리를 담당하는 조명기사 정도까지 였다. 결혼식은 중앙으로 올라가야 했다. 할 수만 있다면 결혼식 같은 건 생략하고, 구청에 가서 혼인 신고만 하고 끝내고 싶었다.
‘결혼식 로망 같은 건 있어?’
결혼은 혼자 하는 게 아니니, 아내의 의견도 중요했다.
‘아니 없어. 그냥 작은 데서 친한 사람 몇 명만 불러서 하고 싶어.’
‘그럼 우리 그냥 스몰웨딩 같은걸 하자.’
작은 데서 하면 돈도 적게 드는 줄 알았다. 스몰웨딩은 겉치레를 다 걷어내고 필요한 것에만 비용을 지불하려 하는 검소한 사람들이 하는 걸로만 알았다. 스몰웨딩을 하기 위한 예식장은, 이미 세팅된 식장에 몸만 들어가면 되는 일반 예식장과는 달랐다. 모든 걸 하나하나 준비해야 했고 그 모든 것 하나하나가 전부 비용이었다. 돈도 돈이지만 하나하나 준비할 만큼 부지런하지도 않았다. 스몰웨딩이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결혼식 로망이라는 것도 그때 알았다. 결혼식은 일반 예식장에서 하기로 계획을 바꿨다.
‘주차 편하고 밥 맛있는 데가 좋더라.’
가봤던 다른 사람의 결혼식 중에 주차가 편하고 밥이 맛있었던 걸로 기억되는 예식장을 각자 두어 군데를 추렸고, 한 번씩 가보기로 했다. 첫 번째 예식장은 선릉역과 가까웠다. 아내가 선택한 곳이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까다롭고 꼼꼼하게 따지는 성향을 가졌던 친구가 결혼을 했던 곳이니 믿을 수 있다는 게 선택의 이유였다.
설명을 해주는 담당 직원은 친절했다. 남의 결혼식의 모르는 하객들 사이에 껴서 먹어본 식사도 괜찮았다. 우리가 원했던 날짜는 4시 30분 타임이 비어있었다. 당장 두 달 후이고, 애매한 시간대이다 보니 할인이 많았다. 식장 대여비와 폐백비가 무료였다. 하객들의 밥값만 지불하면 됐는데, 이마저도 할인이 들어왔다. 스드메와 웨딩촬영, 부케 등은 세트로 묶인 데다 저렴했다. 결혼까지 두 달 밖에 안 남은 시간은, 우리보다 예식장 쪽이 더 급한 것처럼 보였다. 딱히 이곳을 선택하지 않을 이유가 안보였다. 두 번째 예식장을 굳이 가 볼 필요가 없었다.
함께 살 집은 장모님께서 찾아주셨다. 발품을 많이 팔아 구해주셨던 건 아니고, 동네 부동산 사장님이 추천한, 장모님이 사시는 곳의 바로 옆 단지 아파트였다. 용인의 34평, 13층 아파트였다. 회사 대출을 받으면 가능한 가격이었다. 탁 트인 산이 보이는 전망을 가진 곳이었고, 그 대가로 대중교통을 포기한 집이었다. 보자마자 아내는 마음에 들어 했다.
‘거실 뷰가 끝내줘. 펜션에 온 거 같다.’
신혼집도 결정됐다. 대출을 받아야 한다는 점이 내심 맘에 걸리긴 했지만, 34평 아파트에 들어가면서 대출이 없기를 바란다는 건 욕심이었다. 나중에서야 깨달은 건데, 왜 집값을 결정하는 1순위가 편리한 교통인지를 알게 됐다. 출퇴근은 매일 등산을 하는 기분이었다. 퇴근 후, 한 시간 버스를 타고 내려서 언덕길을 20분 정도 걸어 집에 도착하면, 산 정상에 올랐을 때의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결혼 전 둘 다 독립된 생활을 하고 있었어서 가구나 가전제품들을 따로 살 필요가 없었다. 서로 가지고 있던 살림살이를 채우기만 하면 됐다. 겹치는 살림살이는 조금 더 나은걸 가지고 있는 쪽으로 고르면 되었다. TV와 세탁기, 침대는 내 것을 선택했고, 옷장, 책장, 식탁은 아내 것을 들였다. 15년 동안 끌던 내 차는 5년 된 아내 차에 밀려서 처분됐다. 넓은 집이 황량하게 느껴져 소파만 따로 구입했다.
늦게 하는 결혼이어서 서로 저울질할 게 없었다. 부모님들은, 내내 처리하지 못해 마음이 편치 않았던, 부모로서의 마지막 할 일이 해결된다는 후련함이 무엇보다도 우선하셨고, 결혼 준비에서 일어나는 못마땅함은 작은 일처럼 여기셨다. 결혼식은 귀찮지만 어쩔 수 없이 하는 요식행위처럼 느껴졌다. 필요성을 크게 못 느껴서 준비가 요란하지 않았다.
‘가족들이 더 빨리 끝내고 싶어 하는 거 같아.’
선택과 결정이 까탈스럽지 않았다. 최선도 아니고 빈틈 투성이인 결정에도 가족들은 토를 달지 않았다. 인륜지대사라는 결혼이 때를 놓치면서 찬밥신세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