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두 달 앞두고 신혼여행지가 바뀌었다.
필리핀 보홀의 스쿠버다이빙 여행은 몇 달 전, 서로 결혼을 생각하기 전에 예약을 했었다. 예약할 때에는 당연히 이 여행이 신혼여행이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결혼을 하기로 하면서 신혼여행은 따로 준비할 것 없이, 미리 예약했던 보홀 여행을 신혼여행으로 하기로 했다, 자연스럽게 결혼식날은 여행 출발 전날이 됐다. 예식장 예약을 마치고 가족들에게 결혼 날짜를 알렸다.
‘10월 9일 오후 4시 30분이야.’
형에게서 문제가 생겼다.
‘형이 10월 내내 미국 출장이라고 얘기했었잖아. 조금만 미루면 안 돼?’
아 맞다. 그랬었지. 미루지 뭐.
예식장 예약을 하고 나간 지 30분도 안돼서 다시 찾아온 우리를 예식장 직원이 의아하게 쳐다봤다.
‘결혼식 날을 미뤄야 할 것 같아요.’
다행히 형이 출장을 마친 이후 날짜에, 같은 조건으로 다시 계약할 수 있었다.
신혼여행도 변경해야 했다. 보홀 여행은 그냥 결혼 전에 예정대로 다녀오기로 하고, 신혼여행지를 새로 알아보기 시작했다. 사실 내심 그래도 신혼여행인데 여행지를 보홀로 하기엔 좀 아쉽긴 했었다.
‘호주는 어때? 캠핑카로 사막을 3000km 달려 울루루를 보고 오는 거야.’
아내의 표정이 시큰둥했다. 맘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나름 고심해서 떠올린 여행지였고, 아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여행이었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지?라고 할 줄 알았다. 의외였다.
‘그럼 오로라 보러 갈까?’
말이 끝나자마자 아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
‘와! 좋다! 오로라 보러 가자!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지?’
신혼여행은 노르웨이의 트롬쇠로 결정했다. 캐나다의 옐로나이프도 후보지였지만 영하 30도까지 내려간다는 추위에 겁을 먹었다. 트롬쇠는 영하 10도 정도로 오로라를 볼 수 있는 곳 치고는 따뜻했다.
트롬쇠까지의 여정은 멀었다. 트롬쇠까지 가는 직항은 없었다. 일단 오슬로까지 가야 했는데 그마저도 헬싱키에서 한번 환승을 했다. 트롬쇠는 작고, 오렌지색 불빛이 따뜻한 도시였다. 위도가 높은 곳이어서 낮에도 해를 볼 수 없었다. 하루 종일 초저녁의 어스름함이 이어졌다. 어둑어둑했지만 낮의 학교는 아이들로 시끄러웠다.
오로라 헌팅은 저녁 8시 즈음부터 시작되었다. 우리 외에 중국인 두 명이 더 있었다. 가이드는 두 명이었는데, 운전을 하는 남자와 설명을 해주는 여자였다. 둘은 부부처럼 보이기도 했다. 남자는 오로라를 쫓아 우리를 데리고 다녔다. 그냥 주변 불빛이 없는 깜깜한, 늘 가던 곳으로 가는 건 줄 알았는데, 말 그대로 ‘헌팅’이었다. 달리던 차를 잠시 세우고는 먹이를 찾는 매처럼 하늘을 한번 훑고, 다시 달리기를 반복했다. 먹이가 포착됐다. 그는 급하게 차를 길가 벌판에 세우고는, 손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오로라는 현실적이지 않았다. 푸른색과 보라색이 뒤엉키면서 머리 위에서 춤을 췄다. 출렁이는 오로라의 물결은 원근감을 잊게 했다. 멀리 보이는 산을 더 멀리 있는 오로라가 뒤덮고, 반대편 하늘까지 이어졌다. 손을 내밀면 잡을 수 있을 것처럼 가까이 왔다가 다시 하늘 전체로 퍼져나갔다. 오로라는 하늘 전체를 덮을 만큼 거대했고, 어두운 밤이라는 걸 잊게 할 만큼 밝았고, 하늘이 100미터 트랙으로 보일만큼 빨랐다. 표현이 풍부하던 아내도, 왜 오로라가 발생하는지 설명하려던 나도, 그대로 얼어붙은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와.. 와.. 와..’
매일 밤 오로라 헌팅을 다니는 가이드도 흥분했다. 이 정도 화려한 오로라를 바로 머리 위에서 볼 수 있는 건 행운이라며 가이드의 임무를 초과 수행한 자신을 자랑스러워했다.
딱 10분 정도. 자신을 가두기에는 하늘이 너무 좁다는 듯 몸부림치던 오로라는 10분 정도가 지나자 차분해졌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멀리 보이는 하늘에서 얌전해졌다. 마치 금세 늙어버린 것 같았다. 그 뒤로도 가이드는 우리를 데리고 새벽까지 오로라를 쫓았지만, 더 이상 생기 넘치는 젊은 오로라를 만날 수는 없었다.
돌아오고 한 달 즈음 지났을까, ‘꽃보다 청춘’에서 정우, 조정석, 강하늘, 정상훈이 아이슬란드로 오로라를 찾아 나섰다. 매일 구름 낀 날씨가 그들의 오로라 영접을 방해했다. 이대로 오로라를 보지 못한 채 돌아오는 건가 했는데, 결국 하늘이 허락했다. TV 화면에 오로라가 펼쳐지기 시작했다.
‘어.. 어.. 저거 우리가 봤던 오로라 같지 않아?’
아내가 소리쳤다. 정말 그랬다. 아직까지도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있던 그 젊은 오로라의 모습이었다. 방송이 끝나고 촬영일을 검색했다. 그들의 아이슬란드 여행 날짜는 우리의 신혼여행 날짜와 겹쳤다. 방송에 나온 아이슬란드의 오로라는 트롬쇠의 하늘을 뒤덮었던 그 오로라였다.
우리에겐 그날 오로라의 사진이 없다. 오로라를 사진에 담기 위해서는 노출 조절이 가능한 카메라와 그 카메라를 고정할 수 있는 삼각대가 필요했는데, 아내와 난 애초에 사진에 별 관심이 없었다. 함께 오로라 헌팅을 했던 중국인 두 명중 한 명이 친절하게도 오로라를 배경으로 우리를 찍어주었고, 여행이 끝나면 보내주겠다며 메일 주소를 받아갔다. 벌써 5년이 지났는데 아직 그한테서 메일이 오지 않았다. ‘꽃보다 청춘’에서 나온 오로라 장면은 우리에게 큰 선물이 되었다. 언제든 보고 싶을 때 검색만 하면 그 젊고 활기차던 오로라를 볼 수 있었다. 벌써 몇 번이나 보고 또 봤는데, 볼 때마다 가슴이 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