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현 Aug 10. 2022

피자를 왜 두부로 만드는 건데.


아내는 스물아홉이 되기까지 미리 정해진 선로를 달리는 차량처럼 언제나 예측 가능한 하루하루를 보냈다고 했다. 시키는 대로 하고, 하라는 대로 따르면서, 어긋나지 않는 일상에서 편안함을 느꼈다고 했다. 선로는 빤한 역들을 지나며 앞으로만 향했다고. 고등학교 졸업, 대학교 입학, 4년, 졸업과 동시에 취업 같은 역을 정해진 시간에 어긋남 없이 지나왔다고. 잠시라도 멈춰 있다거나 샛길, 혹은 지름길로 들어서는 건 곧 탈선을 의미했고, 그건 인생의 어느 한 부분이 얼룩으로 남을 흉 같은 것이라 생각했다고.

'난 참 재미없는 사람이었어.'

연애시절, 아내가 종종 나에게 하던 말이었다.


실제로 아내는 일탈이나 반항 한 번 없는 무료한 학창 시절을 보냈고, 대학에서도 왠지 반듯하고 올곧은 학문일 것만 같은 문헌정보학을 전공했다. 휴학 한번 없이 4년을 보냈고, 졸업하고는 바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아내가 지나온 길에는 여백이 없었다. 하루하루가 빼곡했다.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아내는 누구보다도 모범적이고 성실했다. 그러던 아내가 스물아홉이 되면서, 그러니까, 앞자리가 곧 3으로 바뀔 나이가 되면서, 방황을 했다. 30대가 되기 전에 20대 만이 할 수 있는 무언가를 채워 보려 했다. 나이 스물아홉이 주는 초조함이었다. 아내는 뒤늦게 일탈을 꿈꿨다.


일탈이라고 해봐야 소소했다. 독립을 계획해 본다거나 혼자 훌쩍 여행을 떠나보는 것이 아내가 기껏 생각해 낸 일탈이었다. 마음의 준비는 단단했지만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몰랐다. 그즈음에 아내는 나를 만났다. 일탈과 반항을 10대의 당연한 의무로 여기고, 이곳저곳 기웃거리느라 남들보다 천천히 대학을 나오고, 몇 년에 한 번씩 직장을 옮기고, 그럴 때마다 몇 달씩 쉬면서 새로운 이력서 내기를 미루던 내가 당시 일탈을 꿈꾸던 아내의 눈에 띄었다. 누구보다도 모범적이지 않고, 성실하지 않은 나를 자신의 일탈 파트너로 여겼다. 결과적으로 아내가 나를 만난 건 스물아홉에 저지른 최고의 일탈이 되었다. 아내가 스물아홉 이전의 맨 정신이었다면 절대로 나를 선택하지 않았을 거다.




지금 아내는 스물아홉 이전의 자신으로 돌아갈 생각이 없다. 일상이 일탈이다. 그런 아내를 보며 나는 헷갈린다. 스물아홉 이전의 모습을 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자신이 재미없는 사람이었다는 아내의 말이 의심스럽다. 원래부터 나와 비슷한 사람이 아니었을까. 스물아홉에 나를 만나고 내 일탈의 영향을 받아 이렇게 변한 거라고 말하지만, 그저 나를 만난 이후로 쓰고 있던 가면을 벗은 게 아니었을까.


아내가 하려는 요리만 해도 그렇다. 정상적인 레시피를 따르는 법이 없다. 일반적인 것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집에 있는 두 권의 요리책을 아내는 단 한 번도 열어본 적이 없다. 늘 나조차 한 번도 해 보지 않은 창의적인 일탈을 한다. 피자를 왜 두부로 만드려는지 도무지 난 이해가 가지 않는다. 늘 만들던 피자가 지루해 변화를 주어보려는 거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 하며 넘어가겠지만, 그런 것도 아니다. 아내는 자신이 만드는 첫 번째 피자의 재료로 두부를 선택했다. 아내는 걱정하는 나를 안심시키려는 듯 한마디 한다.

'두부는 맛이 없을 수가 없어.'

그렇단다. 그러려니 한다.


그렇다. 두부다.

토마토소스와 모차렐라 치즈가 괜히 반갑다. 피자 위에 얹으려는 토핑도 모두 내가 아는 것들이다. 파프리카와 올리브, 베이컨이 토핑으로 올라간다는 것에 조금 안심을 한다. 다행스럽게도 아내의 일탈은 감당 못할 정도로 파격적이지는 않다. 이 정도면 견딜 수 있다.


이건 피자 도우를 만드는 과정이다.

아내가 재료를 다듬는 동안 두부를 면포로 감싸고 꾹꾹 눌러 물기를 뺀다. 물기가 빠져 퍽퍽해진 두부는 달걀 세 개로 촉촉함을 채운다. 다듬어 놓은 재료 절반을 함께 넣는다. 피자 도우의 반죽에 들어가는 재료를 보고 있자니 어쩐지 그럴듯하다. 불안함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지만, 맛있을 수밖에 없는 조합이기는 하다.


묽다. 부침가루 투입.

두부가 부족했는지, 달걀 세 개가 많았는지 반죽이 묽다. <은퇴부부의 아침밥상> 매거진을 쓰면서 요리를 몇 번 경험해 봐서인지 아내는 당황하지 않는다. 위기관리 능력이 생겼다. 부침가루를 꺼내 한 숟가락 퍼 넣는다. 그러고는 아내의 곤경을 놓칠세라 사진을 찍고 있는 나를 보면서 태연하게 말한다.

'부침가루 넣어서 더 맛있을 거야.'

그렇구나. 그런 거면 미리 넣지.


점점 피자의 모습으로 변해간다.

반죽을 가스레인지 위에서 익히고 그 위에 토마토소스를 바르고 모차렐라 치즈를 뿌린다. 토핑은 하나하나 정성껏 보기 좋게 올린다. 이제 마지막 과정, 200도로 예열한 오븐에 넣고 5분을 기다린다. 난 요리를 하면서 오븐을 사용해 본 적이 거의 없는데, 아내는 만들려는 모든 요리를 오븐에 넣는다. 아내의 일탈은 나에게서 파생해 나간 것이 아님이 분명하다.

 

완성.

오븐에서 5분을 버틴 피자는 피자다운 제 모습을 갖췄다. 두부와 달걀로 도톰한 도우에서는 모락모락 맛있는 김이 올라왔다. 한 입 베어 무니 빈대떡과 비슷한 식감이 느껴진다. 따라놓은 와인이 막걸리였다면 더 어울릴까 하는 생각이 얼핏 들었는데 바로 날려버렸다. 그래도 엄연히 이 음식의 이름은 피자니까. 아내의 일탈은 성공이다. 걱정했던 게 민망할 만큼 맛도 괜찮다. 아내의 표정도 밝다.

'거봐. 맛있을 거랬잖아.'


맛이 없으면 안 먹으려고 했다는 말에 아내는 우리는 부부이고 한 배를 탄 거라고, 죽어도 같이 죽는 거라고, 맛없어도 혼자 빠지면 안 되는 거라고 응수한다. 그런 건가. 이런 게 결혼의 굴레인 건가. 아내의 일탈이 매번 성공 할리는 없다. 일탈의 결과가 무엇이든 이제는 서로의 일탈을 함께 책임져야 한다. 와인 한 모금을 삼키며 아내의 다음 일탈에 대한 마음의 준비를 한다.


이전 02화 세상일이 다 미역국 같으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