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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현 Apr 05. 2022

시간을 얹은 홈메이드 파스타.

아내가 하루 생활비는 40,000원이라고 했다. 터키에 머무는 동안에는 40,000원으로 하루를 살겠다고 못을 박았다. 그 한도에 일상을 집어넣어야 한다. 아침을 깨우는 커피, 아침 겸 점심인 첫 끼니, 낮 산책길의 간식과 차, 아내의 기쁨인 저녁밥, 하루를 마감하는 맥주, 곁들일 안주를 40,000원 한도 안에서 해결해야 한다. 하루 단위만 따졌을 때 그렇다. 단위를 일주일, 한 달로 늘리면 먹는 것 말고도 필요한 것들이 튀어나온다. 샴푸와 린스, 두루마리 휴지, 키친타월, 빨래 세제, 쓰레기봉투, 마스크 팩(아내 거다!), 터키 전통 문양의 컵받침(아내가 원했다!), 물 빠짐이 답답한 샤워실을 위한 오물 용해제(이걸 왜 우리 돈으로!!) 등등. 모두 살면서 필요한, 돈 들어가는 것들이다. 이 모든 걸 하루 평균 40,000원으로 맞춰야 한다.


37,600원이나 42,800원처럼, 무언가 고뇌가 담겼을 것만 같은 액수가 아닌,  떨어지는 40,000원을 하루 생활비라고 선언한  보면  값이 충분한 계산을 거쳐 나온  아닐 거라는 의심이 든다. 하루를 신중하게 가늠해보고 책정한 금액이 아닐 거라는 말이다. 나에겐 무척이나 합리적이라고 느껴지는 의심을 들은 아내는 그래도  달이면 120 원이나 .라는 말로 가볍게 물리쳤다. 어찌 보면  달에 100 원이라고  떨어뜨리지 않아   그나마 다행인 일이었다. 돈에 맞춰 하루를 사는  은퇴  2년째  오고 있는 일이긴 하다. 따를 수밖에 없다. 어치피 가계부는 아내가 쓰고 있고, 생활비 카드도 아내의 명의이고, 미리 환전해  100달러  지폐가 담긴 봉투도 아내가 가지고 있다.




전날 아내는 저녁밥에 감성을 얹었다. 그리스식 돌담으로 둘러 쌓인 정원의 한가운데에 커다란 나무 한 그루가 그늘을 만들고, 그 둘레로 원목 테이블이 널찍이 놓여있는 식당을 골랐다. 듣기 편한 음악이 적당한 볼륨으로 흘렀고, 식당을 가로지르던 고양이는 발걸음이 급하지 않았다. 수프와 가지 샐러드가 애피타이저였고, 홍합 튀김과 안심 스테이크를 즐기면서 맥주까지 곁들였다. 377리라가 청구됐다. 한국 돈으로 30,000원 정도였다. 음식에 감성을 얹으면 비싸진다. 아내는 당당했다.

'한국에서 이렇게 먹었다고 생각해 봐. 얼마가 나왔을지.'


서로 번갈아가며 저녁 메뉴를 고르기로 했다. 하루는 아내가, 그다음 날은 내가. 저녁 메뉴 선택에 있어 불만은 절대 용납하지 않기로 했다. 내가 3리라짜리 에크맥을 우적우적 씹어 먹자 하더라도, 아내가 온통 풀떼기만 파는 비건 식당이 건강 가득한 곳이라 우기더라도 서로의 선택에 단 한마디 불평을 하지 않기로 했다. 오늘 저녁은 내 차례다. 어제 감성이 얹어진 비싼 저녁을 먹었으니 오늘은 자제해야 했다. 하루 40,000원의 생활비 한도는 아내가 정했는데 절제의 굴레는 내가 짊어진다. 집에서 차린 간단한 아침 첫 끼니를 먹자마자 아내는 가장 큰 관심사인 오늘 저녁 메뉴를 물었다. 고민할 거리가 없다.

'오늘은 홈메이드 파스타.'


일단 싸다. 바릴라 스파게티면 500g이 700원이다.

기본 베이스는 올리브유, 마늘, 고추다. 그것만으로 충분히 맛이 나지만 함께 어울릴만한 다른 재료들을 더한다. 그래 봤자 새우, 바질 페스토, 건조된 양파뿐이긴 하다. 새우는 냉동된 걸 샀었는데, 엄지손가락 만하던 놈이 해동되자마자 마술처럼 엄지손톱만 하게 줄어드는 걸 보고 냉장으로 바꿨다. 파스타 재료 중에서 새우가 가장 비싸다.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거다. 마늘 한 봉지가 300원, 고추도 500원을 넘지 않았으니 재료들 중 가장 비싼 몸값으로 오르는 건 꽤 쉽다.


노동력이 필요하다. 싸니까.

마늘을 까고 고추를 다듬는다. 한국에서는 깐 마늘을 샀었는데, 터키에 그런 건 없다. 마늘 다섯 개 중 한 개는 상태가 좋지 않아 버려야 한다. 괜찮은 녀석들도 싹이 수줍게 나 있다. 이 동네의 큰 마트, 작은 마트 몇 군데를 열심히 돌아다녀 봤는데, 마늘의 종류는 사진에서 보이는 단 한 가지뿐이다. 고추도 마찬가지다. 고추 비슷하게 생긴 건 딱 한 종류였다. 그래도 불만을 갖지는 않는다. 싸니까.


왼쪽 위 주전자에 사진 찍는 아내가 비친다. 난 타이머 누르는 것도 잊고 멀뚱이 서있다.

소금을 넣은 끓는 물에 면을 촤르르 펼치려다가 절반 가량을 쏟았다. 오랜만에 아내가 들이 댄 카메라에 긴장했나 보다. 허겁지겁 흩어진 면을 모아서 냄비에 넣었다. 다시 아내가 사진 몇 장 찍는 걸 지켜보느라 타이머 스위치를 늦게 눌렀다. 쏟은 면을 주워 넣고 사진을 찍으면서 1분 정도 지났으려나. 면은 삶는 건 시간이 생명인데 낭패다. 이렇게 된 이상 감으로 할 수밖에 없다.


마늘과 고추향이 올리브유에 배면, 파스타면, 새우, 양파, 바질페스토 투하.

끓는 물에 파스타면을 넣은 지 5분 10초가 지나면(감이다.) 옆 가스불 위에 프라이팬을 올린다. 올리브유를 잔뜩 들이 붇고 손으로 일일이 다듬은 마늘과 고추를 볶는다. 8분 20초가 되면(물론 감이다.) 가스불을 끄고 파스타면을 프라이팬으로 옮긴다. 면수 두 국자와 함께 나머지 재료들로 풍미를 높인다. 무엇보다도 바질 페스토가 맛에 큰일을 한다. 맛있어져라.라는 주문은 굳이 필요 없다. 그런 거 없어도 높은 확률로 맛있다.


완성.

파스타를 접시에 담는 동안 아내가 와인을 따른다. 쉬라즈 품종의 8,000원짜리 와인이다. 터키에서 산 두 번째 와인인데, 맛이 조금 아쉽다. 처음 샀던 까베르네 쇼비뇽 품종의 10,000원짜리 와인에 비해 맛이 떨어진다. 어차피 싼 거 다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고른 거였는데, 2,000원의 차이는 컸다. 세 번째 와인을 살 때엔 돈을 좀 더 지불하기로 했다.




설거지를 마치고 핸드폰을 보니 끓는 물에 파스타면을 넣으면서 시작된 타이머가 아직 돌고 있었다. 시간이 47분을 넘기고 있었다. 만들고, 먹고, 설거지까지 하는데 47분이 걸렸다. 마늘을 까고 고추를 다듬은 시간까지 더해 본다면 저녁 식사에 1시간 20분쯤 걸렸나 보다. 시간은 좀 들었지만 40,000만 원으로 책정된 하루 생활비를 아꼈다. 어제의 소비를 만회했다.


저녁을 먹은 지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았는데, 아내는 내일 저녁에 먹을 메뉴를 고르려는지 구글맵을 뒤진다. 별점과 댓글을 일일이 확인하고 메뉴판을 다운로드해 구글 번역기에 돌린다. 음식 플레이팅과 식당 내부의 인테리어까지 꼼꼼히 살핀다. 저녁 메뉴 선정만큼은 언제나 진심이다. 그런 아내를 말리지는 않는다. 생활비 한도는 괜찮다. 아내가 음식에 감성을 얹으면 내가 다시 음식에 시간을 얹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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