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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현 Jan 26. 2021

갓 지은 무쇠솥밥 맛.

나의 첫 가마솥밥의 기억은 초등학교 때이다. 방학만 되면 집에서 늘 게으름을 피우는 아들이 보기 싫은 아빠는 언제나 방학 시작과 함께 시골 할머니네로 나를 보내셨다. 서울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세 시간을 달리고, 다시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하루에 오전, 오후 두 번만 운행하는 시외버스로 갈아 타, 논밭을 지나며 한 시간 정도를 더 깊이 들어가면 할머니 집이 나왔다.


키가 낮은 철로 된 녹슨 대문이 있고, 비만 오면 진흙밭이 되는 마당이 있고, 키우는 닭과 병아리, 목줄이 메이지 않은 강아지가 있고, 그 모습을 앉아 바라 볼 대청마루가 있고, 부엌에 불을 때는 아궁이가 있는 곳.


주소지가 ‘면’을 지나 ‘리’까지 들어가는 할머니네는 주위가 온통 논으로 둘러싸인, 열 가구  정도가 가족인 듯 모여 사는 작은 마을 안에 있었다. 저녁때가 되면 어느 집 할 것 없이 굴뚝에서 흰 연기가 났고, 밥 짓는 냄새가 골목을 채웠다. 할머니의 부엌, 무쇠 가마솥이 고정된 두 개의 아궁이에도 빨갛게 불이 지펴졌다. 할머니는 부엌 한쪽에 더북이 쌓인 마른 볏짚을 옆에 가져다가, 한 손으론 풍로를 돌리시고, 다른 한 손으로는 볏짚을 가지런히 펼쳐 아궁이 안으로 집어넣으셨다. 할머니 옆에 강아지처럼 바싹 붙어 앉은 난 그 볏짚이 타닥타닥 불에 타는 모습을 보는 게 좋았다.


그렇게 나온 밥이 엄마가 해주셨던 밥 보다 더 맛있었는지에 대한 기억은 없다. 밥과 함께 나오는 반찬들도 정갈하지 못하고 투박했다. 밥이 내는 맛을 아직 모를 나이이기도 했다. 다만, 할머니가 차려주신 그 밥은 아궁이에 볏짚을 태워 무쇠 가마솥으로 지은 밥이었다는 것은 또렷이 기억한다.


공부를 한다는 핑계로 할머니네를 가지 않았던 고등학교 시절을 보내는 사이, 오래되어 낡은 할머니 집은 마을의 다른 집들과 마찬가지로 헐어지고, 신식의 새로운 집이 지어졌다. 그러면서 집 밖에 있던 부엌이 집 안으로 들어왔다. 아궁이 대신 가스레인지가 놓이고, 더 이상은 할머니네를 찾아가더라도 볏짚을 태워 무쇠 가마솥으로 갓 지은 밥은 먹을 수가 없었다.




갓 지은 밥이 내는 맛을 처음 알게 된 건 언제부터였을까.


공깃밥에 단정하게 담겨 모락모락 김이 나는 흰쌀밥을 젓가락으로 보듬으면 제 덩어리 그대로 끈기를 잃지 않은 채 모아진다. 젓가락으로 들어 올리느라 힘을 줄 필요가 없이 부드럽다. 밥알 하나하나가 찰기를 가져 흩어지지 않는다. 뜨거운 기운과 부드러움이, 은근한 향과 함께 느껴진다. 갓 지은 밥에서만 느낄 수 있는 맛이다.


밥이 내는 맛을 알게 되면서 음식의 투정은 반찬이 아니라 밥으로 향했다. 고기반찬이 없다는 것 보다도 새로 한 밥이 아니라는 게 더 아쉬웠다.

‘엄마. 밥 이거밖에 없나?’

보온밥통에 오랜 시간 보관되어 있던 밥은 윤기를 잃고 푸석푸석했다. 한입, 한입 먹는 시간이 나도 모르게 늘어졌다. 다 비우지 않고 먹다가 남길 때도 많았다. 매번 새로 지은 밥을 내놓을 수 없었던 엄마는 아들의 밥투정을 다른 방법으로 해결하셨다. 볶는다든가. 비빈다든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집 밖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밥은 주로 사 먹는 일이 되었다. 식당에서 먹는 공깃밥은 갓 지은 밥이 아니었다. 스테인리스 공기에 꾹꾹 눌러 담긴 밥은 식지 않을 정도의 온기만 간신히 지닌 채, 몇 시간이 지나면서 향을 잃었다. 어차피 식당에서 내세우는 메뉴도 김치찌개나 제육볶음이었다. 주인공은 밥이 아니었다. 밥이 메인이 되는 식당은 드물었다.


갓 지은 밥은 집을 떠나서는 늘 귀했다. 식당에서 내놓는 밥이, 어쩌면 공장에서 만들어진 게 아닐까 하는 의심마저 들 때쯤이면 하나의 생각이 머릿속을 계속 맴돌았다.

‘집밥 먹고 싶다.’




결혼 후, 신혼의 식탁을 꾸리는 건, 한 두 개의 냄비와 프라이팬만으로도 충분했다. 전기밥솥으로 지은 밥도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늘 비슷한 식탁의 모습이 심심했다. 몇 안 되는 조리도구가 만들어 내는 음식 맛은 분명 다른 음식인데도 비슷비슷하게 느껴졌다.


그즈음 무쇠솥이 눈에 들어왔다. 하루 종일 하는 일이라고는 세끼 밥만 만들던 예능프로에서 손호준이 한참 가마솥에 밥을 지었다.

‘나 어릴 때 시골 할머니 집에서도 가마솥밥 해 먹었는데.’

기억이 날개를 뻗었다.

‘불도 내가 때고 그랬어. 밥 짓는 건 불 세기가 참 중요하거든.’

초등학생이 그랬을 리가. 아내가 믿지도 않을 괜한 허풍도 넣어 본다.

‘숭늉 생각난다. 그거 정말 엄청 맛있었는데.’

이건 진짜다.


밥을 짓고 싶어 졌다. 전기밥솥에서 버튼만 누르는 게 아닌, 밥물을 맞추고 불 세기를 조절해 익히고, 뜸을 들여 지은 밥이 먹고 싶어 졌다. 언젠가부터 기억 속에 새겨져 있던 갓 지은 밥. 새로운 조리도구가 필요했다. 무쇠솥을 샀다.


오늘의 메인재료. 무쇠솥.

쌀의 품종에 따라 밥맛이 다르다지만, 무엇보다도 이제 막 지어먹는 밥맛이 품종보다 우선이다. 좋은 품종과 도정한 지 오래되지 않은 햅쌀이면 더 좋겠지만, 그렇게까지 까탈스럽지 않아도 된다. 무쇠솥으로 갓 지은 밥이 내는 맛은 그 자체로 충분히 훌륭하다.


밥물의 양은 적당히. 끓어오르면 약불로 20분.

밥물을 맞추는 건 쉽다. 물을 적당히 넣으면 된다.


이 말을 꼭 한번 써보고 싶었다. 요리 초보자를 혼란스럽게 하는 ‘적당히’라는 말. 소금의 양을 적당히. 끓이는 시간도 적당히. 맛의 비결은 역시나 적당히. 도대체 적당히는 얼마만큼을 말하는 건지. 음식 만드는 글을 쓰면서 계속 기회를 노리고 있었는데, 지금이다. 밥물은 적당히. 후련하다.


센 불로 시작해서 뚜껑 틈 사이로 물이 넘치기 시작하면 약한 불로 줄이고 20분 정도 더 둔다. 밥이 익어가는 비린 향이 퍼진다. 20분이 지나면 불을 끄고 5분간 뜸을 들인다.


햄을 자른 갯수가 짝수로 떨어지면 기분이 좋아진다. 안 세셔도 된다. 정확히 14조각이다.

연애시절, 스팸 정식이라면서 달걀 프라이와 햄을 아내에게 자주 해줬었다. 할 줄 아는 게 이 정도뿐이었다. 즉석밥을 데우고, 세 팩에 만원 주고 산 밑반찬들. 그때는 그 정도만 차리더라도 집밥 먹는 기분이었다.


갓 지은 밥에는 짭조름한 반찬이 잘 어울린다. 밥이 지어지는 동안 달걀 프라이를 부치고, 햄을 잘라 굽는다. 즉석밥이 무쇠솥밥으로 바뀌면서 스팸 정식이 진화했다.


다 된 무쇠솥밥. 사진으로는 폴폴 나는 김을 잡아 낼 수가 없었다. 그게 좀 아쉽다.

뜸 들이는 5분이 지나면 다 됐다. 장갑을 끼고 솥뚜껑을 잡아 들어 올리면, 안에 모여있던 뜨거운 김이 한 번에 올라온다. 놓치지 않고 구수한 향을 맡는다. 갓 지은 밥이 주는  첫 번째 즐거움이다.


주걱으로 각자의 공기에 밥을 담고, 솥에 눌어붙은 밥 위로 뜨거운 물을 붓는다. 물은 솥의 열기를 만나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누룽지를 익히며 구수한 숭늉이 된다.


완성. 반찬을 꺼내 담는 아내가 점점 사진욕심을 부린다. 반찬 그릇이 저리 많이 필요할 일인지. 설거지 거리만 늘어난다.

식사 준비가 끝나는 건 언제나 밥이 다 지어지는 순간이다. 손이 많이 가, 시간이 잘 가늠이 되지 않는 반찬이라도 만든다면 미리 준비를 하고, 밥이 다 지어지기 전 마무리해놓는다. 미리 만든 반찬이 밥이 다 익기를 기다리느라 조금 식더라도 괜찮다. 갓 지어진 밥이 반찬을 기다리는 것보다는 낫다.


밥이 지어지는 30. 미리 준비  놓은 반찬들이 밥을 기다린다. 뜨거운 김을 내며 부드럽게 찰진,  지은 흰쌀밥이 공기에 담겨 마지막으로 식탁에 놓이면, 식사는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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