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신문사의 기자가 보낸 제안 메일의 내용은 이랬다. 우연히 아내의 브런치 글을 보았고, 아내가 풀어내는 은퇴 후의 이야기가 무척 관심이 가는 내용이어서 기고를 받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연락처를 받을 수 있는지를 물었고 자세한 내용은 추후에 전하겠다고 했다. 메일의 마지막에 추운 날씨에 건강을 염려한다는 끝인사도 잊지 않았다.
‘기분이 이상하다 남편. 나한테 이런 일이 생긴다는 게 너무 신기해.’
아내의 흥분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나 역시 잔뜩 들뜬 마음을 한참이나 진정시키지 못했다.
‘이제 너 돈 받고 글 쓰는 프로 작가 되는 거잖아.’
서로의 연락처를 주고받은 아내는 신문사 기자와 몇 번의 전화 통화를 했다. 기자는 은퇴의 결심과 준비과정, 그리고 은퇴 이후 살아가고 있는 이야기를 7회에 걸쳐 격주로 한겨레 신문 토요판에 연재해 줄 수 있냐고 물었다. 한 회당 분량은 대략 4,000자 정도이고, 하단 광고면을 제외한 전면에 글이 실리게 될 거라 했다.
‘원고료는? 얼마 준데?’
가장 궁금한 부분이었다. 아내가 쓰게 될 글 값이 얼마인지. 브런치가 아닌, 돈이 오가는 실제 필드에서의 글은 어떤 대접을 받는지 궁금했다.
‘200자 원고지 1매당 1만 원이래. 만약 글에 사진이 들어가면 사진 한 장당 2만 원에서 3만 원 정도 추가된다고 하고.’
한 회당 4,000자 정도를 요구했으니 대충 계산해도 회당 20만 원 가까이였다. 그렇게 격주로 7회 연재이니 석 달간 대략 140만 원 정도.
‘와! 작가님!’
작가님이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은퇴 전 아내가 다니던 회사의 동료가 아내의 사주를 봐주었었는데, 올해 아내의 직업운이 최상이라고 했었다. 직업과 관련해서는 모든 일이 잘 풀리고, 성취도 크게 이룰 거며, 그에 보상도 넉넉히 따를 거라 했었다.
‘은퇴하는데 웬 직업운? 사짜네 사짜.’
그땐 엉터리라며 아내와 함께 그냥 웃고 넘겼었는데, 그게 이거였나. 아내가 바깥양반이 되고 내가 안사람이 되는, 하지만 아내가 나를 따라 은퇴를 결심하면서 사라져 버린 가정주부의 꿈이 이렇게 다시 이루어지는 건가.
며칠이 지나 기자는 한 가지 더 놀랄만한 소식을 아내에게 전했다. 신문 연재와는 별도로 아내의 글을 책으로 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한겨레 출판사에 아내의 글을 소개했는데, 흥미를 보인 출판사 편집자 한 분이 미리 약속했던 기자와의 미팅에 함께 참석하고 싶다는 의사를 보였다고 했다.
‘출판사? 그럼 너 책도 나오는 거야?’
아내의 말을 전해 듣자마자 호들갑을 떠는 나를 아내가 진정시켰다.
‘그냥 한번 만나보고 싶다는 거래. 그리고 아직 출판사에서 나한테 제안을 한 것도 아니고.’
말은 그렇게 하지만, 아내 역시 평소보다 목소리의 톤이 높았다.
아내 안에 숨어있던 문학소녀는 아내보다도 신문사 기자가 먼저 찾았다. 브런치 첫 글 발행 이후, 몇 번 글을 쓰면서 아내의 글은 점점 힘이 붙었고, 짜임새가 탄탄해졌다. 아내의 브런치 구독자수는 먼저 브런치를 시작했던 당시의 나보다 빨리 늘었다. 아내의 문학소녀는 숨바꼭질을 잘하는 타입은 아니었다.
미팅을 하기로 한 날, 약속 장소로 출발을 하려는데 기자에게서 연락이 왔다. 전날부터 있던 열이 아직 내리지 않아 때가 때인 만큼 미팅 자리에 자신은 함께하지 않는 게 좋겠다는 내용이었다. 한겨레 출판사의 편집자가 나갈 테니 그 분과 먼저 이야기를 나누어 보라고 했다. 미팅 장소는 출판사가 있는 건물의 2층, 중식당이었다. 약속 시간보다 10분 정도 일찍 도착했다. 심호흡을 하고 1층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연락을 보냈다. 잠시 후, 한 분이 건물에서 나와 우리를 반겼다.
‘작가님. 안녕하세요. 오시느라 고생하셨어요.’
처음 보는 출판업계 사람이었다. 출판업이라는 프로의 세계에서 직접 발로 뛰는 사람이었다. 두근두근했다. 왠지 그 주변으로 아우라가 보이는 듯했다. 그런 사람이 아내를 보고 작가님이라고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