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서른여섯

밤마다 따릉이를 타는 이유

일종의 고백

by 흐를일별진




요즘은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 수시로 바닷속으로 끌려 들어가는 기분이 듭니다. 꼭 몸과 마음이 분리된 것처럼. 몸은 어떻게든 발버둥을 치는 데 마음은 아래로 더 아래로 가라앉는 거죠. 걱정해서 달라지는 게 없으니, 걱정은 잠시 묻어두기로 하지만, 모두가 알다시피 묻어두는 건 임시방편입니다. 조금만 방심해도 걱정은 고개를 들이밀어 몸과 마음을 잠식하거든요. 다행인 건 제가 그 모든 과정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기에, 조금이라도 힘들어질 것 같으면 그날은 무조건 자전거를 탑니다. 몸을 움직이면 빨리 뛰는 심장에 비해 뇌가 느려지는 기분이 들거든요. 의도하지 않아도 생각이 사라지는 거죠.


저에게 자전거를 타는 행위란 일종의 명상과 같습니다. 시선은 앞, 온 감각은 제 주변의 모든 것에 집중됩니다. 습도에 따라 달라지는 향기, 제 몸을 스치는 바람, 등으로 흘러내리는 땀줄기, 귓가에 들려오는 음악과 여름 곤충 소리. 모든 사고가 제 안이 아닌 밖으로 집중되면 문제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집니다. 바닷속으로 끌려 들어갔던 제가, 자전거를 타는 순간만큼은 자유롭게 수면을 유영하는 것만 같습니다.



얼마 전, 비가 올 듯 말 듯 검은 구름이 드리워진 날. 친구의 걱정을 뒤로하고 자전거를 탔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출발한 지 몇 분 만에 쏟아지는 비를 맞았습니다. 생각했습니다. 그냥 돌아갈까.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내리는 비를 뚫을 수 있을까. 이러다 감기라도 걸리면 어떻게 하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우두커니 멈춰 생각하는 동안에도 비는 모든 걸 삼킬 듯이 쏟아졌습니다. 젖은 청바지는 다리에 감기고 얇은 소재의 크롭 셔츠는 살에 달라붙었습니다. 우습게도 제 몰골을 보고 있자니 생각이 정리됐습니다. 어차피 늦었으니 조금만 더 가보자. 이대로는 어떤 대중교통도 탈 수 없을 것 같으니까.


저는 미끄러지지 않으려 조심하며 페달을 굴렸습니다. 브레이크를 약하게 잡고 조심조심 나아가는데, 슬슬 오기가 생겼습니다. 고작 비 따위에 지고 싶지 않았습니다. 이 비를 뚫고 목적지에 도착하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잠깐 딴 길로 새면 제가 가장 잘하는 건 소소한 목표 설정과 달성입니다. 제 기준 백 퍼센트 달성할 수 있는 목표를 잡고 – 횡단보도 흰색 부분만 밟으면 행운이! 차 타고 터널을 지날 때 숨을 참으면 좋은 일이! -손쉽게 달성하는 거죠. 그렇게라도 작은 성취감을 얻으면 하루를 성공의 기억으로 마무리할 수 있습니다. 결국 비를 맞으며 끝까지 가겠다는 결심도 일종의 소소한 목표였습니다. 제가 못 할 거라는 의심은 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부류의 목표는 실패한 적 없거든요.


달렸습니다. 멈추지도 않았어요. 넘어져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며 속도를 냈습니다. 이미 다리는 멍투성이니 상처 몇 개 더 생기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웃음이 나왔습니다. 달라붙은 셔츠도 벗어 버리고, 나시 한 장 차림으로 비를 맞았습니다. 그게 나았습니다. 맨살에 비가 닿는 게 더 자유롭게 느껴졌습니다.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다리 아래를 지나며 비를 피할 수 있었습니다.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달렸습니다. 다리를 통과하니 비가 내리지 않았습니다. 역시 처음에 돌아가지 않기를 잘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얼마 뒤, 저를 비웃듯 또 다시 비가 쏟아졌습니다. 마치 비구름과 술래잡기를 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날 약 1시간 40분가량의 주행 동안 전 비구름에 세 번 잡혔습니다. 온몸이 젖었다가 마르기를 반복했고요. 하지만, 결과적으로 술래잡기에선 제가 이겼습니다. 집에 도착할 때쯤엔 완전히 비가 멎었거든요. 아마 비구름은 제 뒤 어딘가에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집 도착 10분 전. 직선 코스에서 미친 듯이 속력을 낸 후, 페달을 밟고 일어서 바람을 맞는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처음 비가 왔을 때 그길로 돌아갔다면 전 자전거를 타다가 비 때문에 멈춘 사람이 됩니다. 이러나저러나 이미 젖은 옷은 어쩔 수 없었을 거고요. 그러나 끝내 목적지에 도착한다면 전 비를 뚫고 자전거를 탄 사람이 됩니다. 끝까지 해내지 않으면 마른하늘을 볼 수 없습니다. 중간에 멈추면 세찬 빗줄기 너머 무엇이 있을지 알 수 없는 거죠. 전 비가 쏟아지고 멈추는 과정, 그 길을 뚫고 가는 여정이 삶과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무리 세찬 비가 내려도 피할 곳은 있습니다. 그건 물리적인 가림 요소일 수도 있지만, 함께 비를 맞을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상황에서 다시 나아갈 힘을 얻으며, 또 비를 맞아도 긍정적 경험을 기반으로 포기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구름은 흐릅니다. 구름에 머무르는 비도 흐릅니다. 비는 일 년 내내 쉬지 않고 쏟아지진 않습니다. 이미 비를 맞았다면 몸을 맡기는 것도 방법입니다. 물론 아플 수 있어요. 독한 감기에 걸릴 수도 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해낸 사람은 그 와중에도 웃을 수 있습니다. 결과가 아플지언정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겼으니까요. 제 여정에선 비가 멎었습니다. 집에 도착해 젖은 옷을 벗어버렸을 때의 개운함이 기억납니다. 저는 결국 그날의 목표를 이뤘습니다. 포기하지 않았어요.


그날 제 목표 달성의 보상은 이러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행복해지는 것. 내가 그들의 행복이 되는 것. 그들을 지킬 힘을 얻는 것. 진짜 제가 원한 건 모든 걸 버텨낼 마음가짐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론 얻어냈고요. 그도 그럴 것이 저는 여전히 바닷속에 끌려 들어가지만, 다시 올라오는 데 긴 시간이 걸리진 않습니다. 제 소소한 목표 달성엔 끝이 없으니까요.



사실 이 글은 각자의 태풍 속에서 허덕이는 그들을 걱정하는 제 마음입니다. 할 수 있는 건 이렇게라도 스스로를 다잡으며 글을 쓰는 일밖엔 없어서, 차마 직접적으로 힘내라는 말과 도와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을 할 수 없어서. 긴 고민 끝에 써 내려가는 제 비겁함입니다. 생각한 걸 담담하게 전하고 싶지만 행여나 말이 부담될까 글을 빌린 소심함이기도 합니다.


저는 잘 하고 있습니다.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존재만으로 힘이 되는 그대들을 응원하며, 저는 잘 하고 있습니다. 부족함은 채우고 과한 건 걷어내고 있습니다. 지금 제가 바라는 건 사랑하는 이들의 걱정이 줄어드는 겁니다. 그들의 평안을 위해서라면, 바닷속에 끌려 들어가는 것쯤은 몇 번이고 더 할 수 있습니다. 앞서 말했듯, 전 이제 끝까지 끌려 들어가지 않으니까요. 어쩌면 이건 참 많이 좋아하고 있다는, 일종의 고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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