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온도
작가 일을 하며 가장 크게 충격을 받은 말이 있었다. 사투리가 없어 보인다며 너도 이제 서울말을 하며 분위기를 촌스럽지 않게 바꿔보라는 말. 나를 위해 고심한 듯, 가르치는 그 얼굴이 나는 적잖이 충격이었다. 사실 난 내 말투가 촌스럽다고 생각한 적 없었다. 나는 지방 사람이 맞고, 그 정체성이 좋았기에 굳이 사투리를 ‘고쳐야’ 한다는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다. 선배의 말에 의하면 내 사투리는 본인이 생각하는 방송작가의 이미지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 (라고 말하기엔 난 그 사투리 덕분에 사랑받았다) 도대체 방송작가가 뭐길래. 어쩌면 그 언니는 자신의 팀에 본인의 희망사항을 덧입히고 있었는 지도 모른다.
나는 다정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함께 있으면 따뜻해지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늘 예쁜 말을 하고 싶었다. 내가 생각한 예쁜 말은 마음이 담긴 말이었고, 마음을 담는 일에 사투리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나는 내 말씨가 좋았고 자랑스러웠다. 그건 내 삶의 증거와도 같았으니까. 오히려 나는 비수를 꽂는 언니의 서울말이 더 싫었다. 나와 같은 지방 사람이면서 서울말을 쓰는 언니는, 늘 다정한 말투로 비수를 꽂으며 주변 사람을 내려쳤다. 언니가 말하길 사투리는 억양이 세서 사람들을 상처 준다고 하지만, 억양이 부드럽다고 상처받지 않는 건 아니었다. 모든 건 마음의 문제일 뿐.
서울에 왔으면 사투리를 쓰지 마라. 사투리는 신뢰가 없어 보인다. 촌스럽다 등등, 도대체 그건 어떤 논리인 걸까. 결국엔 다 우물 안 개구리의 편견일 뿐인데. 나는 촌스러운 게 좋다. 담백한 게 좋다. 서울에 산다고 해서 내가 지방 사람인 게 거짓이 되진 않는다. 그냥, 있는 그대로. 그 모습 그대로 사랑하고 사랑해 줄 순 없는 건가. 꼭 뭔가를 바꿔야만 하나.
(+)
물론 지금은 충분히 나답게 사랑받고, 사랑하고 있는 중이다. 다만 아직도 주변에서 종종 사투리에 대한 이야기가 들려오고, 그 이야기가 사회 초년생에게 전해지는 걸 보면 안타깝긴 하다. 서울은 도시일 뿐 왕국이 아닌데.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편견에 사로잡혀 사는구나 싶어서 조금은 씁쓸해진다.
나는 그들이 삶의 증거를 부끄러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난 내 말씨가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걸. 사투리가 좋다. 지역 특유의 삶이 묻어있는 그 생생함이 너무나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