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면서도 뛰어들어서
한때는 눈치 빠른 내가 좋았다. 직업병의 일환이기도 하지만 사람들을 관찰하며 그 사람의 기분이나 마음, 원하는 걸 알아내는 내가 좋았다. 사람이 쓰는 단어에는 그 사람의 진심이 담겨있기에 말 한마디에서도 삶의 흔적을 찾아내는 내가 좋았다. 그 사람의 삶을 추측하고 조심할 것은 조심하며 상대와의 거리를 유지하는 내가 좋았다.
그러나 요즘 들어 느끼는 게 있다면, 내가 생각한 내 모든 좋은 면이 오만이었다는 거다. 남들의 기분을 안다고 생각하며 그들의 우위에 있다는 착각. 내가 그들을 컨트롤하는 것처럼 세뇌를 하던 날들. 사람들을 살폈던 이유는 상처받지 않기 위함이었고 여차하면 모든 혼란을 상대의 탓으로 돌려 도망치기 위함이었다. 상대를 세심하게 살필수록 그 사람과 나와의 차이를 찾아낼 수 있고, 그렇게 거리가 멀어질수록 끊어내는 게 수월했으니까.
정이 많다고 생각한 나는 정이 아니라 겁이 많았다. 언제나 한 쪽 발을 바깥으로 향하게 두고 도망칠 준비를 했다. 결국엔 혼자 남더라도, 끝내 어떤 사랑도 하지 못하더라도 모든 게 내 몫이라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내 행동의 결과를 받아들이는 데엔 도가 튼 사람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눈치가 없는 게 살기 편하다. 아무것도 모르는 게 도움이 된다. 내 마음의 방향도 모르는 게 낫다. 바보 같이 사는 게 낫다.
피곤하고 싶지 않아서 주변의 관계들을 많이 끊어냈는데, 정작 소중한 게 생기니 관계의 넓이와 상관없이 힘든 건 여전히 힘들다. 사람이 없어도 힘들고 많아도 힘들다. 어떤 식으로든 사람이 얽히니 마음이 요동친다. 하루에도 몇 번씩 물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기분이 든다. 가까워진다는 게 이렇게 아프다는 걸 알면서도 뛰어들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