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서른여섯

우울함 앞에서만 솔직해지는 내 몸에 대하여

지극히 사적인

by 흐를일별진



걸었다. 무작정 밖으로 나가 걸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성곽길 근처였다. 짙은 풀 내음이 코를 찌르고 가을을 알리듯 선선한 바람이 나를 스쳤다. 머물고 싶어졌다. 적당히 조금 더 걷다가 나무 그늘의 벤치에 앉았다. 눈앞엔 흔들리는 나뭇잎, 그 너머엔 낮은 집들이 깎아지르듯 즐비해 있었다. 노래를 들었다. 노래에 집중하며 숨을 들이마셨다. 그러나 숨은 온전히 내게 들어오지 못했다. 심호흡을 하는 건 머리를 비우기 위함인데 머리를 비운다 해도 마음이 차 있었다. 사라졌다고 생각한 감정들이 마음에 들어차 있었다. 해결되지 않은 것과 해결할 수 없는 것 혹은 내가 모른척 하고 있는 것들까지, 머릿속을 유영해야만 흩어질 수 있는 것들이 전부 눌러 담긴 채로 가슴께에 머물러 있었다. 누르고 누르다 보니 나조차 알 수 없어진 것들이 결국에는 목 구멍을 틀어막았다. 그러니 숨이 얕았다. 무엇 하나 시원하게 정리되는 것 없이 모든 게 온몸을 틀어막았다.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가슴 중앙에 갈고리를 엮어 등 뒤로 잡아당기는 것 같은 압박감이 들었다. 공허함과 답답함이 동시에 존재했다. 아무것도 없는데 너무나도 많았다. 눈물이 핑 돌았다. 울고 싶지 않아 고개를 들었다. 슬퍼서 눈물이 나는 건지 답답해서 눈물이 나는 건지 아파서 우는 건지 알 수 없었다. 터지듯 눈물이 차올랐다. 그 와중에 들이마신 숨은 튕기듯 밖으로 빠져나갔다. 숨이 깊지 않으니 현기증이 났다. 다행이라 생각했다. 압박감과 고통은 불확실한 것보다 확실하고 생생해서, 잠시나마 벗어난 것 같은 기분이 들었으니까. 무엇에게서 벗어나고 싶은 건지는 나도 모른다. 아닌가. 모르고 싶은 걸까. 눈물을 삼키듯 꿀꺽- 억지로 숨을 삼켰다.


휴대폰 메신저의 알람이 울렸다. 현실이었다. 모두가 힘들었다. 모두가 아팠다. 나까지 감정을 보탤 수 없었다. 그들에게 긍정적인 말을 건넸다. 그 말들이 내게 하는 말인지 그들에게 하는 말인지 알 수 없지만, 아무것도 위로가 되진 않았다. 나는 내가 그저 바보 같았다.



좋았던 것들이 더는 좋지 않았고 편했던 것들이 편하지 않았다. 행복하다 생각했으나 사실 행복하지 않았다. 분명 착각은 아니었지만 행복은 한 순간이었다. 모든 게 해결되면 괜찮아질까. 해결된다 한들 이미 알아버린 것과 이미 본 것들을 모른 척할 수 있을까. 변해버린 내 마음을 나도 어쩌질 못하는데 이전과 같아질 수 있을까.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다. 많은 게 명확하게 정리되고 좋은 방향으로 나를 비워냈다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는데, 처음으로 되돌아간 것만 같다. 길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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