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서른여섯

만날 사람은 만나고 헤어질 사람은 헤어진다

관계의 불연속성

by 흐를일별진




긴 시간 동안 이런 꿈을 꾼 적이 있었다.


꿈속은 어둠. 나는 그 어둠 속에 서 있다. 정확하진 않지만, 어렴풋이 내가 있는 곳이 숲 가까이에 있다는 건 느껴진다. 말 그대로 느낌이다. 나는 누군가의 손을 잡고 서 있다. 그 사람은 내 손을 잡고 앞장서 걷기도 하고 발맞춰 걷기도 하지만, 대체로 나는 그의 뒷모습을 보고 있다. 이 사람이 나의 연인인가... 하는 생각이 들 때쯤 그가 뒤돌아 나를 본다.


같은 꿈의 반복이었다. 다른 게 있다면 꿈을 꿀 때마다 점점 그의 얼굴이 보일 것 같다는 것뿐. 똑같은 장소 똑같은 장면, 그리고 같은 사람. 내 손을 잡은 그는 점점 나를 향해 몸을 틀었다. 늘 확인하기 직전에 꿈에서 깼다는 게 문제지만. 나는 꿈에서 깨고 나면 늘 아쉬움에 사로잡혔다. 조금만 더 보면 그가 누군지 알 수 있을 것 같은데.

주기적으로 반복되던 그 꿈은 대학 시절 첫 연애를 시작하고 난 뒤부턴 꾸지 않았다. 그 사람을 만나려고 그랬던 건지, 아니면 사랑에 대한 로망이 있던 나의 마음이 꿈으로 표현된 건지는 알 수 없지만, 내가 겪은 몇 안 되는 낭만적인 꿈이었다.



만날 사람은 만나고 헤어질 사람은 헤어진다. 스쳐 지나갈 사람은 노력과 상관없이 멀어지게 돼있다. 모든 만남에는 이유가 있다.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 기쁘게 하는 사람도 똑같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말은 모든 만남에서 우리가 깨닫지 못할 건 없다는 걸 의미한다. 그만큼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란 그 자체로 특별한 법이다. 그러나 우습게도 그 특별한 사람 덕분에 힘을 얻기도 하고 특별해서 상처받기도 한다. 존재 이유를 찾게 하기도 하지만 어떨 땐 삶의 목적을 잃게 만들기도 한다. 관계는 양면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번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같은 마음을 주게 되는 건, 이 모든 과정에 이유가 있다고 믿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상처받은 마음이든 실망이든 실패한 사랑이든, 과정이 지나면 분명 내가 달라져 있을 테니까. 어떤 식으로든 변화는 있을 것이고 그 변화의 활용 방법은 내 몫이다. 자신 있는 건 정당화와 자기 세뇌. 부정적인 감정을 성장의 발판으로 삼는 일엔 도가 텄다. 그러니 마냥 슬퍼할 이유도 행복에 젖어있을 필요도 없다. 불행도 행복도, 내가 느끼는 모든 감정엔 영속성이 없으니까. 어차피 흘러간다. 남을 사람은 남고 떠날 사람은 떠난다. 모든 건 내 의지와는 관계없다. 나는 그저 받아들이기만 하면 된다.

예전엔 노력으로 무언가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사랑, 우정을 비롯한 모든 관계를 통틀어서 그랬다. 요즘 깨달은 게 있다면 노력으로는 그 어떤 것도 변화시킬 수 없다는 거다. 노력은 나를 지치게 만들 뿐 사람의 마음은 통제할 수 없다. 차라리 본능이나 진심이 더 낫다. 내 방식대로 표현하고 내 방식대로 나아가면 그 뿐이다. 사람이란 많아도 적어도 결국에는 나를 힘들게 만든다. 나와 비슷한 사람,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만 남으면 된다.


사실 이건 자기 세뇌다. 가만히 있어도 숨이 막히고 사람을 대하는 게 겁이 나는 나에 대한 세뇌다. 땅으로 끌려 들어가듯 이유 없는 불안과 압박감을 느끼는 나를 향한 세뇌다. 이유가 있다 믿는 것도, 이 어둠이 끝이 없을까봐 불안해서 그러는 거다. 결국 내가 출구를 찾지 못할까봐 겁이 나서 이러는 거다. 아아, 비겁한 나를 견딜 수가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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