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사람을 내 곁에 두기 위해
그 풍경이 좋았던 걸까, 그 순간의 사람이 좋았던 걸까.
스물아홉, 사람이 싫어 떠난 제주에서 사람으로 치유받았다. 아마, 지금도 그때의 제주가 종종 떠오르는 건 그 시절을 함께 했던 사람들이 좋았기 때문. 그들과 했던 모든 것들이 낭만적이어서, 나를 바라보던 그들의 눈빛이 다정해서. 그곳에 있던 내가, 나는 무척이나 좋았다.
그때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 이런 생각을 한다. 어쩌면 나는, 단 한 번도 사람을 싫어한 적 없었겠구나. 그도 그럴 것이, 기억에 남는 행복의 중심엔 전부 사람이 있었다. 반대로 기억하고 싶지 않은 때에도 사람이 있고.
가장 가까운 예로는, 두 번의 스쿠버 다이빙 해외 투어.
첫 투어는 5월의 보홀이었다. 그땐 눈물이 날 만큼 행복했다. 시작부터 끝까지, 단 한 순간도 행복하지 않았던 적 없었다. 돌아오고 나서도, 그때가 그리워 종종 눈물이 났다. 그리고 두 번째 투어였던 말라파스쿠아. 그땐 눈물이 날 만큼 많이 아팠다. 시작부터 끝까지, 좋았던 순간보다 좋다고 자위하며 애써 웃었던 순간이 더 많았다. 돌아오고 나서도, 종종 그때가 아파 울음을 터뜨렸다. 기대했던 투어였는데. 복잡한 감정선, 나를 바라보던 표정, 그 기반이 애정이든 뭐든 무신경한 말들의 중심에 있던 나. 모든 게 아팠다는 감각만 남아있다.
결국엔 사람이다. 두 번의 다이빙, 기억의 방향성이 이토록 다른 건 사람의 영향이다.
좋아했던 사람이 있었다.
참 길게도 끌어온, ‘만약’이라는 기대로 차마 내려놓지 못했던 마음이었다. 다이빙을 시작한 것도 그의 영향이었고 해외 투어를 간 것도, 사실은 그와 시간을 보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 친구가 이끌어준 수많은 처음 중에서, 단 하나도 행복하지 않았던 건 없었으니까.
생각해보면, 보홀이 행복했던 건 내가 그를 보고 싶어했기 때문이었고 내 시야의 끝엔 늘 그가 걸려있었기 때문이었다. 날 보는 눈빛이 좋았고 날 챙겨주는 그가 좋았기 때문이었다. 좋아해서, 행복했었다.
그러나, 당황스러울 만큼 말파에서의 그는 달랐다. 난 변한 게 없었는데, 그는 시작부터 내 단점을 만들어 냈다. 내게 선을 긋는 건가, 상처주려고 작정한 건가. 문제는 그가 나를 대하는 태도가 그곳에 있던 이들에게도 전이됐다는 거였다. 상대를 깎아내리는 방식의 분위기 전환. 나는 내가 도마 위의 생선이나 관심병사가 된 것 같았다. 다른 사람이 그러는 건 상관없었다. 어차피 언젠가는 멀어질 이들이니 그러려니 했다. 근데, 좋아하는 사람에게, 아마도 자신을 향한 내 마음을 알고 있을 그에게, 평소 가장 싫어하는 말과 행동을 (그것도 몇 번이나 하지 말라 경고했던) 고스란히 받게 되다니.
고백하자면, 돌아오던 비행기 안에서 담요로 얼굴을 가리고 정말 많이 울었다.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행복하지 않아서. 나를 아끼지 않는 사람을 좋아했다는 게 서럽게 아파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미워지지 않아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정말 그와 멀어져야 한다는 걸 깨달아버려서.
그와 멀어진다는 건, 그로 인해 행복했지만, 그로 인해 행복하지 않게 된 것들도 내려놓아야 한다는 걸 의미했다. 그게 취미이든 사람이든. 어차피 그 사람 없인 의미가 없는 것들이다. 다행히 그를 향한 마음은 애초에 모든 걸 각오한 마음이었으니, 이러한 끝을 몰랐던 건 아니다. 생각보다 엔딩이 늦어졌을 뿐.
내가 바보같은 건지 생각보다 내 마음이 깊었던 건지 한 달이 지난 지금에도, 나는 여전히 그가 밉지 않다.
솔직히, 그를 알게된 이후로 단 한 번도 그 사람이 미웠던 적은 없다. 여전히 그를 이해하고 여전히 그를 좋아한다. 그리고 여전히, 나는 그가 따뜻한 사람이라 생각하기에, 진심으로 그 사람의 행복을 바란다. 언젠가 그가 말했듯 자신이 살아온 방식을 바꾸고 싶을 정도로, 스스로 노력하고 싶어지는 사람을 만나 건강한 사랑을 했으면 한다. 한때는 그 자리에 내가 있길 바랐던 적도 있지만, 이젠 자신이 없다. 그는 내게 반하지 않았고 나는 더이상 애매한 감정들을 견딜 힘이 없으니까. 무엇보다 그를 좋아하는 내가 불쌍하게 느껴진다는 것, 뭔가가 잘못되고 있다는 소리가 아니겠는가. 그 사람을 향한 마음보다 날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 더 크고 중요하다. 그러니 앞으로는, 나를 깎아내리지 않는 사람, 불안을 비뚤어진 방법으로 표현하지 않는 사람, 마음이 건강한 사람을 만나고 싶다. 있는 그대로의 그 사람을 좋아하려다가 있는 그대로의 모습 때문에 상처받고 마는, 이런 슬픈 결말은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다.
진심이라면 그를 변하게 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 모든 걸 이해할 수 있다는 오만이 문제였다. 사람은 절대 바뀌지 않는데. 어쩌면 나는, 그를 좋아하는 내게 취해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르게 생각해보면, 취해 있었기 때문에 깨어날 수 있는게 아닐까. 그러니 숙취 해소제는, 나를 향한 사랑과 앞으로의 시간으로 하자.
끝이 있어야 시작이 있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무섭도록 일이 잘 풀리고 있으니, 당분간은 내가 잘하는 걸 해야겠지. 아아, 나는 정말, 사랑에 소질이 없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