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집에 왔습니다.
따뜻한 식사를 마치고 방에 들어왔습니다. 포장을 뜯지도 않은 책들이 상자에 담겨 책상 위에 놓여 있었습니다. 비좁은 공간을 헤치며 책장을 정리하던 중 한 권의 책에 시선이 머물렀습니다. "더디지만 우아하게"라는 제목의, 같은 책 세 권이 나란히 책장에 꽂혀 있었습니다. 몇 해 전 한국에 돌아와서 만들었던 책입니다. 열 권을 한 번 더해 스무 권의 책을 주문했고, 저마다 누군가의 손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그렇게 잊고 있던 세 권의 책이 책장에 남아 있었습니다. 비슷한 키높이의 원서들 사이에 있어서 하마터면 그냥 지나칠 뻔했습니다. 기억을 더듬어본 어느 날, 직장으로 지역을 옮기면서 어머니의 손길과 눈길을 피해 그곳에 넣어뒀나 봅니다.
어머니에게 책을 건넸습니다. 그저 책을 건네는 하나의 순간을 위해 많은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소년 시절의 추억을 엮은 시집. 출품작으로 선정된 글. 감사하게 후한 평가를 받았던 논문. 어느 것 하나 어머니에게 보여드린 적이 없습니다. 언론사에 칼럼을 연재했던 글들도 부모님께는 선뜻 전하지 못했습니다. 아마도 그런 마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미당 서정주의 글을 빌려, 내 정서의 깊은 뿌리가 되어준 어린 시절의 어머니, 팔 할을 넘어 지금의 나를 지켜봐 준 어머니기에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런 건 떨어지는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부끄러워했던 윤동주 시인과는 다르지만 그보다 가볍지 않은 수줍음입니다.
식사를 마치고 설거지를 다하셨을 즈음이니 아마 저녁 8시가 조금 넘어서 어머니에게 책을 건넨 듯합니다. 어색함을 가리고자 이제야 책을 드리는 서툰 핑계를 둘러대고 방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고요한 방에서 잠시 미뤄둔 하루를 정리했습니다. 사실은 중간에 문틈으로 거실에서 책을 읽고 계신 어머니의 모습을 봤습니다. 몇 번이고 봤고 그때마다 어머니는 한결같이 책을 읽고 계셨습니다. 갈증을 느꼈지만 선뜻 거실로 나가지 못했습니다. 부끄러움과 어색함, 고마움과 미안함 사이 어디 즈음에 놓인 감정으로 저도 덩달아 고요해졌습니다.
그렇게 어머니의 독서는 한동안 이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