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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디지만 우아하게 Dec 30. 2018

펜팔

'펜으로 맺어진 벗'


 펜팔의 정의다. 연필로 맺어진 우정. 제법 근사하다. 그렇게 펜팔의 뜻도 모르던 어린 시절부터 펜팔을 시작했다. 몇 번의 굴곡과 여백이 있었지만 지금도 펜팔이라고 이름할 벗들이 있다. 오늘도 바다 건너 친구의 메일이 도착했다.


시간이 흐른 만큼 연락하는 방법도 달라졌다. 만남의 모습만큼 인연을 이어가는 방식도 다양하다. 그래도 나름의 규칙은 있다. 일종의 불문법이자 학습된 관습법이다. 어쩌면 서로를 이해하기에 가능한 배려인지 모다.


먼저, 바로 전달과 확인이 가능한 매체는 선호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것을 기다림의 미학이라고 말한다. 무슨 차이인지 묻는다면 궁색한 대답을 내놓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직접 느껴본 사람들은 안다. 편지와 메일에 스며든 온기는 우리가 쉽게 주고받는 메시지의 그것과는 같지 않다. 아니, 같을 수 없다. 나는 와인을 잘 모르지만, 누군가를 떠올리며 써 내려간 편지에 더해진 오랜 기다림은 숙성된 수확의 기쁨이 자아내는 와인의 향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다음으로, 아무 말이나 한다. 나는 이게 참 좋다. 사실 아무 말은 두 종류가 있다. 문자 그대로 정말 아무 말이거나, 아니면 편지나 메일을 보내고 한참 뒤에 답장을 받아서 전후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다. 그럴 때면... 아무렴 어때! 생전 처음 듣는 남아프리카공화국 건국 초기 역사는 당연히 당황스럽다. 대한민국 여권으로 방문 가능한 무비자 국가를 묻는 질문은 진땀이 난다. 그래도 즐겁다. 그리고 그 즐거움을 고스란히 전해주기 위해 나도 아무 말을 적어서 답장을 보낸다.


마지막으로, 추억을 한다. 벚꽃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순간이 있다. 일본에 사는 친구가 보내준 벚꽃 핀 기차역 사진이다. 고즈넉한 분위기에 아무도 없는 한적한 기차역 풍경. 우연히 길을 걷다 발견한 순간을 카메라에 담았나에게 선물했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벚꽃 핀 일본의 시골 기차역은 지금도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다.


가끔 지인들이 펜팔을 어떻게 하는지 묻는다. 나도 잘 모르겠다. 무책임하다는 걸 잘 알지만. 그럼에도. 펜팔을 시작해보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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