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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디지만 우아하게
Jul 18. 2019
글에 대한 기억이다.
언젠가 글쓰기 강의에 참여했었다. 강사는 글쓰기로 제법 이름이 알려진 분이다. 2시간 남짓 되는 강의로 간단한 교육에 이어 실습도 했다. 첫 과제는 회사의 소개글을 읽고 최대한 명료하게 요약하는 것이었다. 10분 동안 글을 작성한 후 익명으로 제출했다. 무난한 평가들이 이어지던 중 하나의 글에 모든 혹평이 집중됐다. 내가 쓴 글이었다.
다음으로 조금 더 긴 신문기사를 읽고 보고서 형태로 요약하는 과제가 주어졌다. 동일하게 10분이 지나고 다시 글을 제출했다. 처음과 마찬가지로 비슷한 평가가 이어졌고 마지막 글에 완벽에 가깝다는 칭찬이 덧붙었다. 이번에도 내가 쓴 글이다.
차이는 분명하다. 처음 쓴 글이 오롯이 내 글이라면 두 번째 글은 내가 '만든' 글이다. 처음은 형편없었고 다음은 훌륭했다. 모두 내가 쓴 글이다. 혹평을 받았다면 그저 내 글이 다른 사람들에게 익숙하지 않을 뿐이다. 그리고 애석하게도 나는 두 번째 글처럼 사람들에게 익숙한 글을 제법 잘 만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