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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디지만 우아하게 Dec 06. 2016

채식주의자

The Vegetarian

글, 그리고 길


배낭을 메고 길에 오르듯 글과 함께 길에 오른다. 때론 글이 길을 이끌기도 하고, 때로는 길 위에서 글을 마주하기도 한다. 시와 철학은 우리의 삶을 낯설게 한다. 우리는 여행을 하며 오래된 자신을 만난다. 그렇게 우리는 길 위에서 시와 철학자가 된다. 길 위에서 글을 만난다.



채식주의자


한강 작가의 연작소설이다. 맨부커상 수상에 대한 호기심도 있었지만 서정적인 느낌의 작가와 책의 이름이 인상적이었다. 한강이라는 사람이 쓰는 채식주의자는 어떤 느낌일까. 다소 엉뚱하고 막연한 생각으로 책을 펼쳤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채식주의자는 서정적인 글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자연에 가까운 다채로운 색감이 등장하지만 특유의 무미건조한 감정표현에 색감마저 흐려진다.


분명 개인의 성향에 따라 평가가 달라질 수 있는 글이다. 하지만 가독성과 흡입력에 대해서는 대체로 이견이 없으리라 생각한다. 첫 장을 넘기면서 시작되는 뭔가 엉겨 붙은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어느새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게 된다. 글을 읽으면 어머니가 갓 지은 밥을 주걱으로 꾸욱 눌러서 담아주시던 모습이 생각난다. 그처럼 한 글자 한 단어가 꾸욱 눌려서 쓰여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작가의 필력에 감탄하는 순간들이 있다.


번뜩이고 일면 아름다운 상상을 표현하는 방식은 제법 충격적이다. 작가가 지닌 문제의식의 발현인지, 자연스레 채득 된 삶의 태도인지 알 수 없다. 다만 글을 관통하는 일종의 뒤틀림과 간극을 작가는 일상이라는 언어로 표현하고자 했던 것 같다. 어찌 보면 시종일관 섬뜻하리만큼 무덤덤한 시선이 글을 읽는 우리의 무언가와 지속적인 공명을 일으키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마 내 생에 이런 글을 쓰긴 어렵겠지. 선뜻 일독을 권하기 어렵고, 오월의 신부의 감성을 지녔다면 더욱 그렇다. 미리 책의 분위기를 알았다면 읽지 않았을 수도 있겠지만 어떤 의미에서 분명히 오래 기억되는 글이 될 것이다. 주인공이라 단정하기 어려운 등장인물들의 나이 즈음에 다시 읽어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덧붙여 처음에 조금 낯설게 느껴졌던 '채식주의자'라는 제목이 이제야 글과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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