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잡문집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더디지만 우아하게 Jan 12. 2017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

The Sun Also Rises

글, 그리고 길


배낭을 메고 길에 오르듯 글과 함께 길에 오른다. 때론 글이 길을 이끌기도 하고, 때로는 길 위에서 글을 마주하기도 한다. 시와 철학은 우리의 삶을 낯설게 한다. 우리는 여행을 하며 오래된 자신을 만난다. 그렇게 우리는 길 위에서 시와 철학자가 된다. 길 위에서 글을 만난다.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


히말라야에 오른 적이 있다. 산을 오르는 속도는 제각각이지만 오후 4-5시 즈음에는 어김없이 시야에 오두막집이 나타난다. 이정표이자 일종의 관문인 셈이다. 이런 관문을 몇 차례 통과하다 보면 어느새 목적지에 다다른다. 라운딩을 하는 이들에게는 베이스캠프라는 목적지가 없지만 나름대로의 정상을 머릿속에 그리며 걸으리라 생각한다. 


어느 오두막집의 밤이 가장 기억에 남는지 말하기는 어렵다. 하늘 끝 마지막 오두막집의 밤은 추위와 싸우던 그 날의 풍경이 먼저 떠오른다. 모닥불에 앉아 여행자들과 나눠 먹었던 라면의 맛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반면 공간 자체에 대한 기억은 처음 오두막집에서 더욱 선명하다. 처음이라는 낯섦과 비교적 추위가 덜해서 여유가 있었던 것 같다. 


장편소설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는 어니스트 헤밍웨이(Earnest Miller Hemingway)'라는 산을 오르는 첫 번째 관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우리에게 잘 알려진 '노인과 바다'는 하늘 끝, 아니 바다 끝 마지막 밤이라고 해도 좋겠다. 지난해의 끝자락과 새로운 해의 초입을 이어 헤밍웨이의 산에 오르고 있다. 이제 시작이다.


절반 정도는 산만했고 나머지 절반에 산만함이 가라앉았다. 물수제비로 이리저리 돌을 던졌는데 저만치 쌓인 돌들이 어떤 하나의 형태를 하고 있는 느낌이랄까. 헤밍웨이는 형상화된 그림 위에 돌들을 놓았고, 나는 흩어진 돌들을 주우며 그림을 더듬어갔다. 프랑스와 스페인에서 책을 읽었다면 좋았을 거란 생각도 해본다. 물론 다음을 기약하면 될 일이다. 


국외추방자라는 말이 마음에 남는다. 스스로를 추방한 사람들. 길 잃은 세대. 책의 분위기는 어둡고 묘사는 생생하지만 절망을 노래하는 책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길 잃은 세대를 비난하지도 막연히 옹호하거나 위로하지도 않는다. 노골적인 희망도 없다. 하지만 결코 절망이 그보다 크진 않다. 그래서 이 글이 좋다.


노천카페에서 들려오는 북적거림과 거리의 음악, 비둘기 모이를 주는 풍경이 떠오르는 책이다. 여행길에 동행해도 제법 괜찮은 길동무가 될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새해맞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