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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삶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삶. 이토록 간절하며 동시에 오해가 한데 섞인 주제가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기독교인들에게 무척 중요한 주제를 지난주에 다뤘다. BEDTS(독수리예수제자훈련학교) 학교장이신 이윤호 간사님께서 BEDTS 인터뷰 때 많은 분들이 지원동기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을 언급했다고 하셨을 정도로 우리에게도 밀접한 주제이지 않을까 싶다. 매주 강의 주제와 관련된 말씀을 한 구절을 암송하고 있는데 천태석 간사님께 배운 강의의 핵심을 잘 보여준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요 10:27)


하나님이 말씀이시고 하나님이 우리의 목자가 되신다면 우리는 그분의 음성을 듣지 못할 이유가 없다. 만약 우리가 양이라면 목자 되신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것이 오히려 더 이상하다고 느껴질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할까? 아니면 왜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는다고 착각할까? 이런 질문도 가능하다. 꼭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만 신앙생활이 가능할 것일까?


가장 큰 오해의 시작은 음성이라는 단어에 있지 않나 생각해 본다. 강사님의 표현을 빌자면 우리는 하나님이 중저음에 에코가 가득한 목소리로 'OOO야~~~'라고 부르실 거라고 상상한다. 또 다른 오해는 하나님의 음성을 직통개시와 동일시하는 것이다. 즉, 하나님께 직접 개시를 받아야만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 함정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면 계속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거나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 하는 사람들을 이상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굴레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신 목적은 우리와 교제하시기 위해서다. 동등하지 않은 피조물을 동등한 인격체로 대하시며 사랑 안에서 서로 교제하기 위하여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허락하셨다. 사랑은 강제적일 수 없기에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셨다. 그렇다면 교제는 어떻게 가능할까? 우리는 대화를 통해서 누군가와 교제하고 사랑의 관계를 누릴 수 있다. 하나님이 우리와 교제하는 방식도 이와 같다. 하나님은 자유의지를 가진 우리가 그분과의 자발적인 대화를 통해 교제하며 사랑의 관계를 누리길 원하신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언제나 말씀하시고 언제나 우리의 말에 귀 기울이신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무엇이 하나님의 음성인지 분별하기가 쉽지 않다. 하나님이 비단 음성이나 환상 같은 초자연적인 방식이 아닌 우리의 마음과 말씀과 주변 환경을 통해 매일 말씀하시듯 사탄도 비슷한 방식으로 교묘하게 하나님의 음성인 듯 우리를 속인다. 마치 아홉 개의 진실에 한 개의 거짓이 섞여서 일리 있는 말처럼 들리지만 진리는 아닌 말들로 우리를 혼란스럽게 한다. 심지어 사탄은 예수님도 기록된 말씀으로 시험하고자 했으니 우리라고 예외일 수 없다.


그럼 어떻게 하라는 것일까? 방법은 없는 걸까? 강사님이 제안하신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시간과 장소와 분량을 정해 매일 기도하며 하나님의 음성 듣기를 연습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매일 스치는 상황 속에서 '하나님이라면 내가 어떻게 하길 원하실까?'라고 묻고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다. 가령 퇴근하고 교회에 가는 길에 빵가게가 눈에 들어왔다고 생각해 보자. 시간이 조금 촉박하지만 왠지 끼니를 거르고 교회에 오는 분들이 있을 것 같아서 빵을 사가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이럴 때 마음이 가는 대로 빵을 사가는 게 좋을까? 아니면 하나님이 주신 마음인지 묻겠노라 기다리다가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고 교회로 가는 게 좋을까?


빵을 사가는 게 하나님의 뜻이어서 마침 배고픈 누군가가 감사하게 먹을 수도 있다. 아니면 그저 작은 선행으로 끝날 수도 있다. 하지만 수천번 넘어지며 비로소 걸음마를 배우는 아이처럼 우리도 순종의 경험을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분별할 수 있는 영적인 감각을 기를 수 있다. 다른 지름길은 없다. 여기에서 적용해 볼 수 있는 원리는 작은 것에서부터 순종을 연습하는 것이다. 빵을 사는 것도 고민하고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우리가 인생의 문제 앞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분별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강의를 들으며 이런 의문이 있었다. 작은 순종은 그럴 수 있겠지만 정말 하나님의 음성이 분명하게 필요한 상황에서 하나님의 뜻이 분별되지 않으면 그때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자 하는 우리에게는 잘못된 길을 선택해서 모든 결과를 책임져야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함이 있다. 단순한 예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A라는 산에 올라갔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은 B라는 산이었을 수 있다. 하나님의 뜻을 잘못 분별한 것이다. 그렇다면 A라는 산에 올라간 사람의 인생은 실패한 것이고 더 이상 회복이 불가능한 것일까? 간사님은 이 부분에 대해 비록 하나님의 음성을 분별하지 못해 최선의 길로 가지 못했더라도 하나님은 그분의 뜻을 따르고자 인생을 맡긴 그 사람의 순종을 기억하시고 그 걸음을 결코 헛되게 하지 않으신다고 말씀해 주셨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향후 나에게도 중요한 지침이 될 것 같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을 누군가에게 의존하지 않아야 한다고 재차 강조하셨다. 목사님이나 다른 분들의 역할을 배제하라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의 목자라면 우리가 그분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 모든 만물을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이 오늘 나에게 그분의 뜻을 분명하게 보이시도록 기도하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은 먼 곳에 계신 분이 아니시기에 그분의 음성도 늘 우리와 가까이 있음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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