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과 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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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만큼 세상에 확실히 정해진 것은 없다.
그러나 죽음에 대해서 준비하고, 생각하려 하는 사람은 많지 않은 듯 하다.
어떻게 삶을 꾸려나갈지에 대해 고민을 할 뿐, 어떻게 삶을 마칠지, 그 이후에 주변에는 어떻게 될 지 생각해본적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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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대하여 가장 처음 생각해본 것은 유치원 때였던 것 같다.
누군가가 나에게 생명의 태어남과 죽음에 대하여 알려준 적은 없다.
유치원에 다닐 즈음에 컴퓨터 게임을 한 적이 있다. 그 때에 총을 쏘고 사람이 맞아 죽는 그런 종류의 게임을 하였었는데, 내가 사랑하는 엄마도 언젠간 총에 맞아 죽은 게임 캐릭터처럼, 죽을 것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그런 생각이 들자 나는 문득 속상해져 침대에 들어가 숨었었다.
그게 죽음에 대해 처음 깨달은 시작점이 아니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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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은 내가 태어날 때 즈음부터 금붕어를 여러마리 키웠다.
학교 앞에서 파는 오백원 짜리 금붕어였고, 항상 어항에는 금붕어가 있었다.
언젠가 금붕어가 하나 뒤집어져 죽어있던 것이었다.
엄마는 금붕어를 뒷마당에 묻어라고 하셨고,
아빠는 변기에 가져다 버려라고 하셨다.
그때 당시 나는 금붕어를 열을 다해 묻어주었다.
가장 오래 장수한 금붕어는 중학교 때 즈음까지 살았었는데
마지막 금붕어가 죽었을 때에 께름직해 하며 삽으로 건져 변기에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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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척 분들 중에 한 분이 통풍으로 급사하셨다.
말 그대로 갑작스런 죽음을 맞이하셨다.
친척분의 자녀분이 인상 깊었는데(어린 시절 나와 동갑이였던 것 같다.)
상을 치르고 집에 찾아가 인사를 나눴을 때에 무덤덤하게 게임을 즐기고 있던 거였다.
그 당시에는 어르신들이 모이고, 부모님이 돌아가셨는데도 게임만 하니 참 이상하기 짝이 없게만 느껴졌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 어린 아이가 부모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해 현실을 외면하는 것이 아니였을까?
부모의 죽음은 어린아이가 감당하기엔 울기도, 짜증내기도, 속상해하기에도 너무 큰 고통이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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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하는 사람들의 심리에 대하여 생각해본적이 있는가?
자살론 하면 경찰학부라면 누구나 Emile Durkheim의 자살론이 턱 하니 생각날 것이다.
세상에 미련이 없는 사람은 어떠한 말도 남기지 않는다.
죽은 사자(死者)가 어떤 유언을 남기고 갔다면, 그건 세상에 미련이 있다는 뜻일 것이다.
마지막 유언은 죽음과 타협하는 마지막 메아리가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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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죽음을 맞이한 애도상담(Grief Counseling)과 죽음의 위기를 겪는 위기상담(Crisis Counseling)에 대해 공부한 적이 있다.(이 두 가지에 대해 몰라도 상관없고, 알 필요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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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란, 무언가의 죽음에 깊이 슬퍼하며 떠나보낼 준비를 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삶은 가족을 떠나 보내고, 친한 친우를 떠나보내고, 애완동물을 떠나보내고
새로운 애인을 만나 가족을 받아들이고, 새 친구를 사귀고, 낯선 사람과 만나 인연을 가진다.
어쩌면 우리의 삶은 누군가를 떠나 보내고 그것에 대해 슬퍼하며 다시 누군가를 맞이하는,
죽음과 애도, 그리고 새로운 만남의 반복선상위에 놓여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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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란, 한 사람 개개인 한명 자체를 완벽하게 부수고 흔들어놓을 만큼 강력한 사건을 겪을 때에 위기라 할 수 있다.
위기는 한명의 인간을 무너뜨리는 시발점이 될 수 있지만, 반대로 말하자면 자신의 성격을 새롭게 재 탄생 시킬수 있도록 뜨거운 용광로 속에서 모양이 변해과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위기 속에서 우리의 내면은 뜨거워지고 부드러워 지는데, 올바른 모양으로, 그리고 부드럽고 굳세게 무두질을 해야 한다. 그 위기를 버텨낸 한 사람은 대장장이가 만든 검처럼 단단하고 이전보다 날카로워져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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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등학교 친한 친구의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사건이 있었다.
그때 그 친구는 밝은 듯이, 그리고 아무일도 없다는 듯이 학교를 예전처럼 다녔다.
그리고 이후에 자신의 아버지가 죽은 일에 대하여 말하곤 했다.
아버지가 죽고 나서 내 인생이 흑백 먹구름이 껴버린 것만 같다고 했다.
그리고 아버지가 죽은 것에 대한 것이 자신의 책임이라고 말을 하였다.
나는 그 친구의 책임이 아니라고 했지만, 좋은 위안은 되지 못한 듯 했다.
아버지의 죽음에 대하여 원망 할 대상이 없으니 자기 자신이라도 채찍질을 해야 겠다는 것만 같아 보여 퍽 눈물이 났다. 죽음은 마치 역병처럼 죽은 사람 주변지인들 까지도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한 개개인이 죽는다고 끝이 아니다. 당신을 사랑하는 누군가의 마음의 일부도 죽어버릴 것이다.
장례식은 어쩌면 죽은 자의 넋을 기리는 것이 아닌 산 사람들이 죽은 사람에 대한 마지막 애정을 묻어두고 앞으로 걸어나가기 위한 것일 지도 모르겠다.
쥐도새도 모르게 죽어 장례조차 치르지 않는다면, 죽은 사람의 영혼은 물론이고 죽은 이를 사랑하는 사람의 일부 또한 이 세상 어딘가를 먹구름처럼 떠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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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당신의 마지막 순간을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