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큰 어른도 아프면 눈물이 나요

트라우마와 치유

by 장준
20

어른처럼 굴어야 한다는 것은 어리광을 피울 기회를 약탈 당하는 불합리한 일이 될 것이다.

사람은 자라오면서 환경에 따라 사회적 지위가 정해진다.

물론 인생의 주인은 내 자신이며, 내가 삶을 이끌어나갈 변화의 시작이라 굳게 믿는다.

다만 주변에서, 나에게 어떠한 역할을 주어준다면 나는 그런 모습이 하나씩 되어가버릴 것이다.


21

I may cry ruining my makeup

(나는 화장을 망치며 울어 버릴거 같아)
Wash away all the things you've taken

(너가 가져가버린 모든 것들을 씻어내버려)
And I don't care if I don't look pretty

(그리고 나는 내가 안이쁘게 보여도 상관안해)
Big girls cry when their hearts are breaking

(다 큰 여자도 마음이 아플때면 울어)


Sia-Big Girls Cry


22

어렸을 때에 정말 억울했던 것이 하나 있다.

나에게는 형이 한명 있는데, 우리 형은 어렸을 때부터 용돈을 받았다.

용돈뿐만 아니라 핸드폰, MP3, 게임기 등 재밌는 오락거리를 받을 기회가 있었다.

어릴 때는 그것이 내가 차별받는다는 기분을 느끼게 했던 것 같다.


내가 20살이 넘어 성인이 되고 나서 그런 부분에 대하여 엄마에게 불만을 토로한 적이 있었다.


"너희 형은 천원을 주고 심부름을 시키면 천원을 잃어버리고 엉엉 울면서 왔고
너는 똑같이 천원을 주고 심부름을 시키면 어디서 천원을 주워 오더라."


어렸을 때부터 나의 행동이 형보다 독단적이고 제멋대로여서, 혼자 두어도 괜찮겠거니 싶었더랬다.

그래서 그냥 형은 더욱이 신경을 썼고 나는 적당히 신경을 쓰셨다는 말이었다.


그 말을 들었을 때에 머리로는 이해가 됬지만 마음 한켠에는 화가 났던 것 같다.

똑같이 못받았으면 이렇게 억울하진 않았을텐데, 사소한 차별이라도 이리 마음속에 남을수가 있구나 싶다.


23

내 친구중에는 20살 초중반임에도 불구하고 벌써부터 일을 열심히 하는 친구가 있다.

그 친구를 보고 있노라면 몸이 부서져 나가는 업무를 하루 몇 십 시간 하면서도, 아무 말 없이 고통을 인내하는 듯 했다.

마치 도시 속에서 고통을 감내하는 고행자 같기도 했는데, 그 친구가 마냥 어린 유치원생처럼 사랑스럽고 귀여울 때가 있었다. 그래서 마음이 더욱 안타까웠다.


그 친구는 나랑 비슷한 나이지만, 집안의 가난한 사정을 고려하여 일을 20살때 부터 뛰어들었다.

가난한 처지에 부모에게 돈을 주지는 못할 지라도, 본인 밥 벌이는 자신이 하겠다는 그런 이유였다.

하지만 요즘 사람들 중에 그런 사람이 몇이나 있겠는가?


그 친구는 나 이외에 애인도, 친구도, 가족들도 필요치 않는 듯이 보였다.

일 밖에 모르는 일 중독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다만, 20대의 나이에 삶의 무게를 젊어 지기엔 너무 벅차 보였다. 마치 곧바로 스트레스로 쓰러질 것만 같은 사람같이 보였고, 실제로 편두통, 근육통, 난시 난청 등 많은 신체적 어려움또한 겪고 있었다.

어떻게 그렇게 힘든데 혼자서 일을 하며 버티냐며 물어 본 적이 있다.


"힘든 것도 버티다 보니까 익숙해지더라"


아픈 고통이 익숙해질 수 있을까? 나는 그말이 거짓말처럼 느껴졌다.

힘든 것을 버틸 수 없다고 생각하면 자신이 도저히 못버틸 것 같아 별거 아닌 듯 치부한 모습이 참 안타까웠다.


24

그 친구는 "착하다"는 말을 극도로 혐오했다.

단어에 그렇게까지 혐오감을 가진 사람은 그 아이가 처음일 것이다.

자신이 힘든 삶을 겪었음에도 아무 불만을 토로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 어른들이 "정말 착하구나"라며 어떠한 보상도 없이 넘어가기 일쑤였다고 한다.

친구들 사이에서도 불공정한 일이 있을 때에는, "너는 착하니까"라는 이유로 상황을 유아무아 넘어가려고 했던 경우도 있었더랬다.


물론 실수를 했다고 그만큼의 댓가를 정확히 계량하여 보상해 줄 수는 없다.

다만 이런 가벼운 겉치레보다는 더욱 가치있는 말을 해야 하는게 사람의 도리가 아닌가?


주변사람들은 이 "착한"친구에게 착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불합리한 일거리, 골칫거리를 넘겨 던져줘 버리는 모양인 듯 했다. 어쩌면 착하다는 꼬리표를 붙이고 제멋대로 사람을 편할대로 다루는 일이였다.


이 일을 계기로 나는 타인에게 착하다는 말을 하는 것이 조심하게 되었다.


25

현재 아프리카 지역에는 아직도 전쟁이 일어나고 내전이 일어나는 곳이 많다.

사람이 많이 죽고 하루 끼니조차 제대로 챙기기가 어렵다.

일부 지역에서는 우리가 이해하기 힘든 풍경이 있다고 한다.


아프리카 일부 전쟁 국가에서는 피난민 가족에게 특이한 사고방식이 발견된다.
바로 일정 나이 이하의 아이들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고 평범하게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성인으로써 기능하기 충분하지 않은 영유아들의 죽음에 대하여 아이의 어머니는 장례를 치르거나 눈물을 보이지 않는다.

이것은 이들이 냉혈이라는 증거가 아니다.
전쟁으로 인하여 양육자는 많은 영유아가 죽는 것을 알고 있다.
그것은 자신의 아이 또한 예외는 아닐 것임이 분명하다.

즉, 어른으로 행동할만큼 충분히 자라지 않은 아이의 죽음에 대하여 어머니는 슬퍼하지 않는데, 매 순간 아이가 죽을 때마다 슬퍼하기에는 너무나도 커다란 충격적인 사건들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전쟁이라는 극박한 상황이 어머니의 눈물을 흘릴 시간 조차 뺏어가 버리는 것과 같다 할 수 있다.

충분히 자란 성인의 죽음은 정말로 슬픈 일이다.
전쟁 속에서 죽음의 선고를 몇번이나 피하고 살아남은 사람이며, 성인이 되었으므로 전쟁속에서 영유아보다 더욱이 살 수 있는 가능성이 많은 이들이기 때문이다.
다만 아이의 죽음은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이 위태로운 상황임을 알고 있었기에, 문화적으로 그리고 암묵적으로 없는 일로 치부해버리는 듯해 보인다.

어쩌면 인간은 자신이 견딜 수 없는 고통에 대하여 없던 것으로 치부해버리는 것이 더 편하다고 느낄 때도 있는 것 같다.


26

사람들의 모습은 참으로 다양하다.


누군가는 내가 어찌 할 수 없는 일에 대하여 완전히 무너졌다고 느낀다.

누군가는 이를 바득바득 갈면서 모든 것을 완벽히 다루기 위해 열심히 달린다.

누군가는 나의 엄청난 고통을 자신의 인생 전체가 고통인 것인 것처럼 고통스러워 한다.

누군가는 나의 고통이 별거 아닌 듯 웃음거리로 치부한다.

누군가는 인생의 아픔들을 해결하기 위해 남들에게 극도로 의존하며 매달린다.


이들의 본디 가지고 있는 기질, 그리고 만들어진 성격구조는 다를지언정 하는 말은 똑같다.


"나도 사람들한테서 사랑을 주고 받으며 내가 가치있는 사람이길 확인받고 싶어!"


세상에 본디 태어나기를 악마로 태어난 사람이 있을까?

아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하나같이 이쁘고 귀여운 천사들이 따로 없다.


27

우리는 본디 태어나면서부터 무능할 수가 없다.

아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울고, 떼를 쓰고, 화를내고, 칭얼대고, 욕구대로 해버리는 것이다.

아이를 돌보는 것이 정말 힘든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는데, 아이들은 무능하지만 자존감은 하늘을 찌른다는 것이다.

이것에 대하여 어감이 조금 이상할 수 있겠다.

이것은 아이들의 선천적인 결함에 대하여 논하자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어떻게 아이를 다루어야 하는지 이야기를 꺼내고 싶다.


아이는 마치 자기가 신이라도 된 듯 마냥, 부모에게 밥을 가져와라 요구한다.
자신이 피곤할 때는 무조건 잠에 자야 하며 화가 나면 부모가 어떻든지간에 소리를 지른다.
자신이 원하면 그것은 이루어야 하는 것이고 싫으면 세상에서 없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럴때일수록, 아이들이 마치 '아기폐하'를 보는 기분이 든다.


부모는 아이의 이런 요구에 대하여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가?

엄마는 이런 아동의 요청사항을 전부 들어줄 필요는 없다.


만약 아이에게 "그래! 우리아이가 최고지! 너는 뭐든 할 수 있단다."라고 말한다면 그 아이의 미래는 극도로 비참해질 것이다. 어떠한 사람도 만수르가 아닌 이상(심지어 만수르도) 제 마음대로 세상을 주무르고 신처럼 인생을 조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이에게 모든 것을 다 퍼주고 싶지만 (내 자식이니까) 그럴 순 없다. 우리는 만수르가 아니다. 또한 예수도 아니다.


반대로 아이에게 엄격하게 현실을 알려줄 필요도 없다.

물건을 사달라고 떼를 아이에게 "저것은 우리 집 가정 형편 상 사주기가 어려운 가격대의 물건이야"라고 말하는건 어림 반푼어치도 안먹히는 변명인 것을 아이를 키우시는 엄마들은 알고 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적당하게, 그리고 이만하면 충분한(Good Enough)"을 강조하고 싶다.

아이의 모든 요구사항을 오냐오냐 받아줄 필요도 없고, 반대로 현실을 냉철히 들이대며 아이에게 혹독한 현실을 면상에 치댈 필요는 없다.


다만 아이의 편에 서서, 아이가 자존심 상하고 화날 수는 있지만 아이가 버틸 수 있는 적당한 수준의 충격을 주어야 한다.

아이에게 인생의 가혹함을 한번에 던져버린다면 그 아이는 산산조각난다.

나 조차도 인생 살기 빡빡하다고 생각할때가 많은데, 어린애가 그 모든 가혹함을 버틸리 만무하지 않은가!


아이에게 조금씩, 무너지지 않게 당신이 같은 편에 서서 현실이란 충격에 대하여 쿠션이 되어 주어라.

아이들은 그런 당신을 비난하거나 싫어하지 않을 것이다.


28

당신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충격적인 사건은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당신을 어떻게 망가트렸는가?

당신은 그것에 대하여 회복을 하였는가? 만약 하였다면 어떠한 과정을 거쳤는가?


29

내가 카페 바리스타로 일을 할때 였다.

사장과 하루에 12시간 업무를 맡았었다.(허나 이는 명백한 근로기준법 위반이었다.)


나는 한달 동안 일한 후 봉급을 받았다. 내가 받아야 할 예상 봉급은 160만원 가까이로 계산이 됬었다. 적어도 나의 계산에는 그랬다.


사장은 그때 40만원을 입금했었다. 나는 어떤 착오가 있는 것이 아닌가 사장과 이야기를 했고, 세상 넉넉하고 친절해 보이던 그 사람은 내 말을 자르며 계약서를 들이밀며 나에게 무언가 충고를 하기 시작했다.


"너가 이쪽 일하는 방식을 전혀 몰라서 그래. 좀 더 철 좀 들어야 겠어!"

"아니, 너 말은 들을 필요 없고, 정확히 내말에만 답해. 내말이 맞아 틀려?"


나는 그 사람에게 주휴수당의 부재, 약속되었던 최저시급 미만의 월급, 휴게시간을 지급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시간을 일하는 시간으로 계산하지 않았음을 문제시 삼았다.


사장은 계약서에 명시된 것들을 말하며 반박했다. (이것은 나의 불찰도 있었다. 이 사람은 언어적으로는 주겠다는 듯이 표현했지만 계약서에는 그런 내용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모두들 계약서는 꼭 두번 이상 읽어보자. )


억울함에도 불구하고 일은 일단 계약서대로 해야 했다. (그때는 정말로 돈이 필요했다.)

어떻게 문제를 해결하든지간에, 내가 나가기 싫다고 일을 안나가면 안 되듯이 잘못을 바로잡더라도 일단 일은 나갔다. 법적인 문제로 돈은 나중에 받더라도 이번 달까지는 일을 완수하자는 생각을 했었다.


일은 매 순간이 힘들었다.

손님이 많으면 위생상 고무장갑을 끼고 설거지를 해야 한다.

허나 혼자서 계산결제를 하고, 커피를 타고, 손님이 남긴 자리를 치우고, 설거지를 도맡기는 정말로 치열한 전쟁이다.

맨손으로 설거지를 하다가 손님을 맞을때가 정말로 많았는데, 그게 반복되다 보니 손틈 사이에서 피가 새어나올 때가 있었다.


나는 그때 하루에 12시간 쉬지 않고, 밥도 챙겨먹을 시간없이 카페 일을 했다.

카페 매니저도 없고 나 혼자서 일을 했었는데, 진짜 생 지옥이 따로 없었다.

아침 10시에 출근하여 저녁 10시에 퇴근하였는데, 막차 버스를 타고 집에 도착하면 거진 11시가 넘어갔다.


11시 정도 새벽즈음에 버스에 내려서 집에 걸어올 때면 발꿈치가 미친듯이 아팠다.

항상 집에 오는 도로변에 도착할 즈음이면 눈물이 펑펑 났던 것 같다.


진짜 억울함이 치밀고 분노가 목 끝까지 올라오니 나도 모르게 소리내어 엉엉 울었다.

적당히 울고 나면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나는 강한 사람이다. 균형을 잃지 말고 똑바로 걸어야한다.
이 모든 걸 나는 오롯이 혼자서 버틸 수 있다.


그렇지만 나는 그만큼 강한 사람은 아니였던 것 같다.

내가 정말 너무 억울하고 힘들어서 모든 일들을 때려치고 포기하고 싶다고 투덜대고 싶었다.


나의 삶이 각박해지니 마음이 찌그러지는 것만 같았다.

나라는 사람이 망가지고 처참히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이런 기분을 내 사랑하는 사람들이 느끼지 않았으면 한다.


keyword
이전 03화나를 키운건 8할이 거짓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