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해와 죽음
1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 얼마나 알까?
2
삶은 자신의 인생의 경험들에 대하여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이다.
나는 인생을 여지껏 살아오면서 다양한 일들을 겪었다.
그 과정 속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과 접촉하며 만나기도 했다.
각각의 사람들의 모습들은 다양한 성격과 기질을 가지고 있다.
나는 그것에 대하여 어렴풋이 이야기를 나누며 눈치를 채기도 했지만, 어떨 때는 그 사람의 마음속 깊숙한, 정말로 깊고 깊은 마음속의 정말 깊은 이야기에 대하여 나누기도 했다.
나는 그것을 그 사람의 인생의 "정수"를 맛본다고 표현하는걸 좋아했던 것 같다.
그럴 때마다 정말 짜릿할 때도 있고, 엄청난 역경들과 다친 마음에 나도 같이 아파할 때도 있었다.
또 어떨때는 무서웠다. 내가 그 사람의 마음에 잡아먹히는 듯한 착각이 들 때도 있었다.
세상에는 참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 사람들의 마음을 전부 나는 알고 싶었다. 심리학을 공부하면서 사람에 대한 호기심과 과학에 대한 열정이 얼버무려진 잡념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3
오늘 손을 크게 베었다.
유리잔을 닦다가 미끄러져 넘어졌는데, 그 과정에서 손이 베었던 것이다.
손바닥 위주로 크게 베었다. 엄청나게 위험한 충격을 가하지는 않았지만, 넓게 베이면서 출혈이 꽤나 났다.
최근 몸 상태가 좋지 않은게 한 몫을 차지하기도 했다. 두통과 악몽을 지겹도록 꾸는데, 멍하면서도 머리가 지끈거리는 편두통은 이제 질리다 못해 정이 들 정도다. (편두통이 살아있는 사람이였다면 애증의 관계라고 표현했을 듯 하다.) 어쨌든 멍한 상태가 유리를 깨트리는 사고를 만들어낸 주범이다.
다치면서 정말 깜짝 놀랐다. 그러면서도 정신이 번쩍 들었는데 무의식적으로 손을 감춘 것 같다.
일시적으로 정신이 맑아졌는데, 마치 무언가 머리속에 깊게 얽혀있던 것들이 풀리는 그런 느낌이라 할 수 있겠다.
4
이상심리 시간에 배운 Borderline Personality Disorder에 대해서 문득 생각이 났다.(당신이 이에 대해 알고 있든, 모르든 그것은 전혀 상관이 없다.)
줄여서 BPD(경계선 성격장애)는 간단히 말해서 말 그대로, 자신의 경계선이 없다.
누구나 자신을 지키는 국경선과 같은 남들이 넘지 말아야 하는 선이란게 있다.
허나 이들은 그게 없다.
그게 없으면 무슨일이 일어날까?
남들이 무슨짓을 하든, 자신이 무슨짓을 하든 자신과 타인의 국경선을 넘어버린다.
지금 생각난 비유인데, 심심할때마다 남한과 북한을 갈라놓은 38선을 제집 드나들 듯이 왔다갔다 하는 사람이 이들이 될거 같다.
주변에서는 난리가 난다. 허나 이들은 그런거는 중요해 보이진 않는 듯이 행동한다.
마치 이들은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무슨짓이라도 한다.
공허함과 더럽혀진 기분, 사랑에 목마른 허기진 기분을 만성적으로 느끼는데, 이런 다양한 마음속의 요인들이 이들을 무슨짓을 해서라도 그렇게 하도록 하는 것이다.
말할것도 없이 이들은 매우 위험한데, 자해를 반복적으로 하며, 자살시도를 거침없이 한다.
남들에게 사랑을 요구하며 자살과 자해를 도구처럼 쓰기도 한다.
5
나는 최근에 들어 생각할 게 많았다.
머리로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이 세상에 존재하는데, 대부분의 문제는 감정과 관련된 문제가 아닐까 싶다.
오늘 상처가 손에 났는데(피가 철철났지만 깊게 베인 상흔은 아니였다. 다행이 아닐 수 없다.) 그때 당황스러웠지만 그 순간만큼은 내가 위협속에 있고 생생히 살아있음을 느꼈다.
배운적은 없지만 손에 묻은 유리조각들을 다 털어내며 물에 씻은 후, 입고있는 티셔츠로 손을 감쌌다.
말 그대로 생존을 위한 본능인 것이다.
위험한 말처럼 들릴 수 있겠지만, 그때 자해를 하는 사람들의 심정이 공감이 됬다.
자해에 대한 이론적인 심리적 수업은 머리로 들었지만 가슴깊이 받아들여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내가 크게 다치고 피가 날 때 마음속으로 느껴졌다.
아마 인생에 커다란 문제를 겪는 이들은 자신의 삶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서 그것을 이해하고 해결하기 보다는 단순하게 해방감을 바랬던 것이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인생이 내몰린 사람의 가장 큰 해방감은 아마 죽음이 아닐까?
하지만 죽음은 인생의 비상탈출구가 아니다. 아무리 내몰려도 거기로 도망치는 사람이 없기를 바란다.
그 사람들의 도착지는 결코 좋은 모양새를 가지진 못할 것이다.
죽음을 도피처로 삼은 이들은 자신과 얽힌 이들이 겪을 충격에 대하여 생각할 겨를이나 있을까?
자살에 대한 나의 생각은 "이해는 되지만 이기적인 선택"이 아닐까 싶다.
6
죽는다는 것을 무겁게만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렇지도 않다.
우리는 흔히 "매우 가볍게" 죽음을 생각한다.
정말 쪽팔린 일을 겪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아휴, 쪽팔려 죽겠네."
"어휴, 못죽어서 산다."
"죽더라도 이 일은 무덤까지 가져가야겠다."
가볍게 언어적으로 스며든 이 말들을 보라!(과대해석이라 생각해도 좋다. 심리학이 원체 그런 재미가 아닐까?)
우리는 쪽팔린 순간에도 죽어버리고 싶다고 표현하는 경우가 많은데, 심리학의 창시자 Freud는 이를 놓치지 않았다.
우리의 삶을 이끌어나가는 에너지는 단 두 가지가 있다고 했다.
바로 살고자 하는 욕망과 죽고자 하는 욕망이다.
살고자 하는 욕망(Life Instinct):말 그대로 생생하게 살아있고 싶다고 느끼는 마음이다. 보통 이런 기분은 무언가를 먹거나, 다른 사람과 같이 있거나, 공동체에 들어갈 때에 나타난다.
이것들의 공통점은, 무언가에 합쳐진다는 것이다.
죽고자 하는 욕망(Death Instinct):말 그대로 죽고 싶다는 마음이다. 허나 세상에 죽고싶은 사람이 있는가? 옛말에 똥밭을 굴러도 이승이 저승보다 좋다고 했다. 누구나 살고자 하는 마음이 매우 크기 때문에 죽어버리고 싶다는 마음은 숨겨진다. 이 숨겨진 마음은 분노처럼 날카롭고 살인적인 공격적인 마음과 같은데, 마음이 변질되어서 타인에게 향하기 쉽다.
쪽팔린 일을 경험했다고 생각해보라. (ex.아이 참! 쪽팔려 죽고싶다. 나한테 이런 수치를 준 놈을 가만두지 않으리라!) 내가 죽기엔 참 아까우니 남을 죽여버리고 싶다는 말이 되겠다. 그렇게 까지 이기적인 사람이 아니면 자신을 죽인다.
이것들의 공통점은, 무언가를 부수고 망가트린다는 점이다.
당신은 언제 살아있음을 느끼는가?
당신은 언제 죽어버릴거 같다고 느끼는가?
이 두 가지는 당신의 마음에 접근할 수 있는 단서를 준다.
7
나는 피가 철철나서 옷에 피가 흥건해졌다.(손을 옷으로 피가 안나도록 치료 전까지 감쌌다.)
어머니가 이를 보시고는 이게 무슨일이냐고 깜짝 놀랐는데, 김칫국물이 흥건히 묻었다고 농담을 했다.
사실 그때, 나는 아파서 농담을 하고 싶진 않았다.
다만 이 일을 너무 큰일처럼 치부하기엔 머리가 아팠기에 웃음으로 가볍게 넘기고 싶었다.
8
가학증(Sadism)과 피학증(Masochism)이 이런 심리와 매우 유사하다.(현대의학에서는 이 용어를 자주 사용하진 않는다. 주로 정신분석학파에서 많이 사용하는 듯 보인다.)
보통은 인생을 살면서 사랑을 주고받고 상처를 입기도 한다.
자신의 사랑에 대한 상처가 극심한 경우, 이것에 대해 해명하거나 이해하려고 극도로 노력한다.
다만 학대, 근친상간, 강간, 무차별적인 폭력, 집단 따돌림같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고통스러운 인생의 상처는 한명의 사람(사건의 피해자)이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 큰 사실이다.
그래서 그 사실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보다 단순하게 포장해버린다.
속된말로 머리아팠던 일은 잊어버리고, 꼴리는대로 해버리는 것이다.
즉 인간관계에 있어서 서로 사랑을 나눌 때에 가지는 생각이 다르다.
내가 얼마나 화나는 인생을 살았는지 알아? 너도 한번 나처럼 고통받아봐!
이 사람은 가학증이 되겠고
나 진짜 고통스럽게 삶을 살았거든? 나 정말 불쌍하지? 나를 마음대로 다루어줘! 그리고 그만큼 사랑해줘.
이 사람은 피학증이 되시겠다.
9
말로 표현하기에 어려운 것이 있는가?
당신의 감정은 아마 그 답을 알고 있지 않을까?
가끔 머리로 생각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면 몸이 움직이는 대로 행동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