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알프레도가 절실한 이유

by 박재은


며칠전 우연히 알고리즘이 안내한 유튜브를 시청하는데 시네마 천국의 테마곡이 나왔다. 엔니오 모리꼬네의 음악이었다. 엔니오 모리꼬네 음악이 좋은건 다 알고 있는 사실이고, 나에게 이 음악은 조금 더 특별하게 다가왔다. 남편과 나는 남편이 살던 오피스텔에서 머물렀다. 아이가 생기기 전이었고, 남편의 회사와 가까웠기 때문이었다. 그때 걸어서 10분 정도 걸리는 회사 위치 덕분에 남편은 점심을 먹으러 오피스텔로 왔다. 그때 나는 지인의 블로그에 들어가 배경음악을 틀어놓고 식사를 했다. 배경음악은 엔니오 모리꼬네의 ‘시네마 천국’ 테마곡이 흘러나왔다. 지금은 사소한 일로 틀어져 보지 않는 지인이지만, 그때 당시 꽤나 서로 속얘기를 털어놓는 사이였다. 얼마전 알고리즘이 안내한 엔리오 모리꼬네의 음악을 듣고, 나는 지금도 시네마 천국의 테마곡을 종일 듣는다. 나는 그녀를 그리워 하는 걸까? 그 시절을 그리워 하는 걸까? 시네마천국에는 어른과 아이의 우정이 등장한다. 토토와 알프레도이다. 나는 왠지 토토보다 알프레도가 눈이 간다. 커서 사회적으로 크게 성공한 토토보다 세속의 이득으로부터 조금은 떨어져 있어 보이는 알프레도...


옛 그림에서 알프레도와 토토의 사이를 볼 수 있는 그림이 있을까? 책을 뒤져 보다가 우연히 <오수도>를 보았다. 한가한 날에 선비와 동자의 풍경이다, 선비는 낮잠에 빠져 있는 듯 하고, 동자는 선비의 차를 달이고 있다. 차를 달이는 일은 간단해 보이지만 시간과 기다림이 필요한 일이다. 차를 마시는 행위에서 우리는 마음을 보지만, 차를 달이는 행위에서도 자신의 조급한 마음을 알아차릴 수 있다. 선비의 차림새나 여유를 보아서 선비는 세속에서 떨어져 나온 사람이다. 동자는 그를 시중드는 존재이지만, 곁에서 그의 가르침을 조금씩 익혀오는 존재일지 모른다.


그림에서 성인이 되지 않은 사람 중 토토와 같이 삶의 짐을 지고 있는 누군가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이준(李俊)의 <가두>라는 그림 속 소녀이다. 1950년대 그림으로 거리에서 장사를 하고 있는 소녀의 모습이다. 소녀는 사춘기에 접어든 것 같다. 이토록 자신의 존재를 어쩌지 못하는 모습은 사춘기 소녀에게서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소녀의 성장에 걸맞게 소녀에게는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역할이 돌아왔는가 보다. 깡마른 그녀의 몸과 기다란 목, 검게 처리된 그녀의 얼굴이 그녀의 짐을 더욱 무겁게 느끼게 한다.


동시대 미술에서 소녀들의 경직된 모습을 볼 수 있는 사진이 하나 있다. 안창홍의 <봄날은 간다>이다. <봄날은 간다> 연작에 속하는 이 작품은 안창홍의 부인이 초등학교 시절 찍은 빛 바랜 기념사진을 초대형 벽화 크기로 확대 인화한 후, 인화지에 아교를 칠하고 그 위에 잉크와 아크릴 물감을 채색한 것이다.1) 즐거운 소풍날 같은데 모두 웃음기가 없다. 단체사진에서 웃지 않는 모습은 40대의 나조차 생소한 풍경이다. 웃지 않는 아이, 부모말을 듣지 않는 아이에게 필요한 건 아마도 토토를 믿고 가르쳐준 알프레도 같은 어른일지도 모른다. 토토는 어머니의 매질에도 알프레도가 있었기 때문에 용기 있게 사회로 나갔다. 우리사회에 알프레도 같은 어른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까?


1) 삼성미술관 리움 전시 <코리안 랩소디- 역사와 기억의 몽타주> 전시 도록, p. 139.

이재관(1783~1837), <오수도午睡圖>, 19세기, 종이에 수묵담채, 122*56cm, 삼성미술관 리움.
이준, <가두街頭>, 캔버스에 유채, 193*112cm, 1957.
안창홍(1953~), <봄날은 간다>, 2005, 패널에 사진, 아교, 드로잉잉크, 아크릴채색, 207*400cm,국립현대미술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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