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을 떠올리니 벌써 작년이다. 12월의 몇몇 일들이 있었는데, 제일 기억에 남는 것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크리스마스 홈파티를 한 것과 2020년 마지막 날의 아침이다. 2020년 마지막날에 나는 새벽부터 깼다. 무슨꿈을 꾸었는지는 새벽에 잠을 깨서 부스스 일어나 이것저것을 하고 있었다. 딸아이는 엄마가 곁에 없으면 곧잘 깨는데, 그날도 그랬다. 새벽에 일어나 엄마 때문에 잠을 빨리 깼다며 꽤나 억울해 하면서, 먹는것도 마다하고 제일 먼저 하는 일이 노는일이었다. 소꿉 장난감 몇가지를 가져와서 놀기를 재촉한다. ‘유아 때나 이러고 놀지... 아직도 놀아?’ 이런 생각이 들기 무섭게 어린시절에 내모습이 딸아이 얼굴에서 보인다. 나도 놀이라면 정말 속된말로 뽕이 빠지게 놀았다. 어릴적 기억나는 것들은 동네의 벽에 그려져 있던 낙서들, 가게주인들, 같이 놀던 동네친구, 자주 가던 떡볶이집이다. 어릴적 내가 특히 좋아했던 것은 놀이와 간식인데, 대표적으로 고무줄놀이와 떡볶이를 좋아했다. 아침을 어떻게 먹었는지는 기억나진 않지만 점심에는 떡볶이집에 가서 떡볶이를 사먹고 온 적이 많았다. 지금은 위생상 충격적인 일이지만 떡볶이가게를 가보면, 파리끈끈이가 천장부터 식탁까지 내려와 있었고, 그 끈끈이 테이프에 파리가 더덕더덕 붙어있었다. 게의치 않고 먹는 아이들 중에 뻐드렁니의 언니가 한명 있었는데, 어찌나 맛있게 떡볶이를 큼지막한 이로 끊어 먹는지 그 뻐드렁니 마저 부러울 지경이었다. 고무줄놀이는 학창시절 내내 계속되었는데, 그 절정은 중학교 2학년 때였다. 쉬는 시간마다 교실 나무 바닥에서 땅이 꺼져라 고무줄놀이를 했고, 친구 영미는 나를 ‘우리반에서 고무줄 제일 잘하는 아이’라는 영광스러운? 호칭도 붙여주었다. 고무줄을 심하게 하다보니 실내화 바닥이 구멍이 났는데, 아버지가 그걸 보시고 웃으시던 기억이 난다. 어릴적 놀던 기억이 다시 나기 시작한 것은 딸아이의 노는 모습을 보고 부터이다. 정말 ‘놀이하는 인간’이라는 생각이 날 정도로 딸아이는 먹는것 보다도 노는것에 열정적이다. 사람의 본성은 놀이를 하는데 있구나... 저렇게 놀기 좋아하는 아이를 공부하라고 앉혀 놓는것도 무리겠구나... 뭐 그런 생각들이 떠올랐다.
옛 그림에서도 노는 아이들의 모습을 볼 수 있을까? 물론이다. 백자도百子圖라는 것이 있는데 숫자 백(百)과 사내아이를 결합한 기복화이다. 많은 사내아이를 낳기를 바라는 열망이 담겨 있는 그림이다. 국립고궁박물관 소장의 <백동자 6폭 병풍>을 보면, 빨간옷, 파란옷 입은 아이들이 지그재그 선형으로 놀고 있다. 아이들의 주변에는 연꽃이 있는데, 연꽃은 특유의 은은함을 뽐낸다. 아니, 뽐낸다고 볼 수 없게 차분히 어우러져 있다. 대부분의 동자들은 노느라 정신없고, 어떤 아이는 놀이에 심취했는지 아랫도리를 안 입은것도 잊은 것 같다. 백동자도를 보다보니, 아이들이 이런 자연에서 뛰어 놀았다는 것 자체가 부러울 따름이다. 화면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은 쌍계머리에 중국식 전통 복장을 하고 있으며, 배경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전각(殿閣)들도 우리나라의 전통 건물과는 확실하게 다른 중국식 건물이다. 이렇듯 강렬한 중국적 요소를 감안할 때, 이 그림의 범본(範本)이나 모본(模本)이 중국의 그림이거나 최소한 중국그림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는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다.1)
이왕 남자아이 이야기가 나왔으니, 남자아이가 좋아하는 로봇모형을 현대미술작가가 만든 작업 하나를 소개해 볼까 한다. 말보로우 라는 담배를 이용해 만든 이 작은 로봇은 <프로파겐더>이다. 로봇의 특징처럼 작은 머리에 큰 몸짓을 지녔다. 마치 로봇의 이름이 말보로우인 것처럼 가슴에 크게 담배 이름이 새겨져 있다. 청소년의 건강에 해롭다는 메시지가 곳곳에 숨어있다. 아이들의 놀이는 어른들에게는 환영할 만한 것이 아니었다. 어른들이 아이가 귀찮으면 “나가 놀아라!” 고 종종 말하곤 했지만, 어른들은 아이를 위해서 아이가 책상 앞에 앉아 공부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아이는 조금 더 크면 놀이보다 백해무익한 담배를 또래 아이들로부터 권유받을 것이다. 그에 비하여 아이의 놀이는 얼마나 건전한가!
1) 유정서, <<월간민화>>, 2018년 5월호, p.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