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듦 - 안식과 자유의 시간

by 박재은

나는 동네 산책을 잘 다닌다. 자주 가는 빨간로고의 H카페에서 책을 읽다가 갑갑해 지면 동네 한바퀴를 돈다. 우리 동네는 옷가게가 모여 있다. 인터넷으로 의류나 신발을 잘 구매하지 않는 습관 때문에 나는 필요한 옷은 거의 동네에서 산다. 우리 동네 옷가게 중 특별히 마음에 드는 옷가게가 있는데, 내가 좋아하는 빈티지풍의 물건이 많다. 장신구도 앤틱한데, 유럽에 어느 마을 프리마켓 같은 곳에서 살 수 있는 느낌 있는 장신구가 있다. 어느 날 그 옷가게에 갔는데, 가게 주인과 가게 오픈시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픈 시간이 왜 늦어요? 오후 2시 넘어 문 여는거 같아요.” 가게 주인분은 이른 시간에는 나이 드신 분들이 가게를 올 수 있어 피해서 열고 있다고 했다. 다소 마음이 씁쓸한 이야기였다. 나이 드신 할머니들은 동네 옷가게도 오시면 안되나? 하는 생각도 들고 내가 괜시리 섭섭했다. 의류를 파는 곳은 젊은 사람들을 선호한다. 나도 백발 할머니가 되면 내가 좋아하는 숍도 잘 못들어 갈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서글프다. 머리에 하나둘 난 흰머리도 빨리 염색을 해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유독 아름다움은 젊음을 포함하는 성질이 있다. 젊음에는 생기가 있기 떄문이다. 청춘도 그들에게서 뿜어나오는 생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다. 옛 그림에서 여인의 생기는 신윤복에게서 자주 표현되는 것이었다. 신윤복은 기녀들을 통해 그들의 아름다움, 性, 옛 사람들의 풍류문화들을 보여주었고, 우리는 신윤복의 그림을 보고, 조선시대 기녀들의 아름다움을 접할 수 있었다. 옛 그림에 대해 글을 쓰시는 손철주선생님은 신윤복의 <연못가의 여인>에서 화려한 젊음이 지나간 기녀의 모습에 대해 언급한다. 갸름한 얼굴에 애처로움이 남아 있대도 우두망찰 넋 놓은 표정은 어여쁘기보다 수심에 그늘졌다. 그녀의 꽃다운 생기는 갔다.1) 여인에게 젊음과 아름다움은 지나갔을지 모르지만 여인에게 이제 본격적으로 자신의 삶을 살 시간이 펼쳐질 것이다. 가녀린 몸도 굵어지고 수줍었던 미소와 태도도 억척스러워 질 것이다. 그러나 슬픈 일은 아니다. 이제 삶의 안식일이 찾아올테니...


여기 검버섯 활짝 핀 할머니가 있다. 그녀들은 웃고 있다. 환한 꽃처럼. 임서령의 <웃는 여잔 다 예뻐>에서 꽃만큼이나 고운 그녀들의 웃음을 볼 수 있다. 할머니들은 짧은 파마머리를 대부분 고수한다. 늙은 몸은 병치레 할 일만 남았다. 꽃다움을 잃었으니 인생의 재미가 남아있을까 싶지만 이제부터 시작이다. 인생을 잘 살았다면 노경(老境)으로 접어드는 행운도 맛 볼 수 있다. 나이를 먹는다고 모두다 절로 노경에 접어 드는 것은 아니다. 젊은 시절부터 켜켜히 쌓아놓은 내공으로 절로 살얼음처럼 청량해 지는 경지가 노경이다. 임서령의 그림 <웃을 수 없던 날>은 우리네 할머니들의 결혼식 풍경을 그린 그림이다. 결혼식날 할머니는 웃을 수 없었다. 깊은 사귐도 없이 부모님들이 맺어준 사람과 혼인을 올리는 할머니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층층이 시집살이와 많은 자녀의 출산과 양육이 겁나지 않았을까? 젊은 시절 웃을 수 없었던 할머니는 많은 것을 내려놓고 웃고 있다. 이제는 쉴 때가 되었다. 나도 할머니가 되면 이렇게 웃고 싶다. 그럴수 있을 것이다. 그때는 많은 것으로부터 자유로울테니...


1) 손철주, 『옛 그림 보면 옛 생각 난다』, 현암사, p. 86-87.

신윤복.jpg 신윤복 <연못가의 여인>, 18세기, 비단에 채색, 28.2*29.7cm
임서령2.jpg 임서령 <웃는 여잔 다 예뻐-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2008, 장지에 수간채색.
임서령.jpg 임서령, <웃을 수 없던 날>, 2010, 장지에 수묵, 70*26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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