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에서 인간으로

by 박재은

필자가 옛 그림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화조영모화를 본 이후부터였다. 그 전에는 옛 그림 중 고즈넉한 분위기에 약간의 고독이 묻어나는 산수화를 좋아했다. 그러다가 화조영모화에서 느껴지는 편안함과 생동감이 좋아 옛 그림을 찾아 보고 글을 쓰게 되었다. 전통적인 화조영모화는 자연의 정취 속에 동식물이 들어가 있는 경우가 많다. 영모화에는 독자적으로 하나의 동물이나 식물을 관찰하여 그리는 경우가 드문데, 그 이유는 동식물 하나하나를 전체적인 자연 속에 배치하여 그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서양화와 달리 개별적인 모습에 집중하기 보다 전체적인 어울림 속의 구성원으로 보는 관점이 녹아있는 경우가 많다. 반면에, 이와는 대조적인 그림이 <맹견도>이다. 김홍도가 그렸다는 추측도 있지만, 맹견도는 언제 누가 그렸는지 알려지지 않았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그림의 기법으로 보아 조선후기로 추정될 뿐이다. 사나워 보이는 큰개가 마당으로 보이는 공간에 묶여 있는 모습이다. 대부분 영모도에 등장하는 동물이 자유로운 모습인데 반해 화면에 등장하는 개는 자유가 속박당한 모습이다. 그것이 불만인 듯 표정 또한 시큰둥하다. 또한 <맹견도>는 양감을 느낄 수 있는 서양화기법이 들어가 있다 1) 더불어 다른 동물이나 식물과의 어울림이 없고, 독자적으로 개의 특성을 세밀히 관찰하고 있다. <맹견도>는 전통적인 영모화의 형식에 다소 벗어난 그림이라 할 수 있다.

영모화에서 많이 등장하는 개는 어미와 새끼가 함께 있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 자연속에서 여유로운 모습으로 등장한다. 멀지 않은 옛날에, 개는 자유롭게 동네를 활보했으며, 묶여서 지내는 때는 많지 않았다. 사람과 마찬가지로 자연과 함께였으며, 자유로웠다. 그러한 반려견들이 사람에 의해 지배를 받기 시작하면서, 학대를 당하는 반려견들이 다수 생겨났으며, 심지어는 버려지는 상황도 빈번해졌다. 여성의 이야기를 많이 다루던 윤석남 작가가 버려지는 반려견들에 관심을 갖고 작업한 것이 <사람과 사람없이>이다. 윤석남 작가를 뵌 적이 있는데, 그때 선생님은 <사람과 사람없이> 를 작업하고 계셨다. 2008년으로 기억하는데, 필자가 학교과제로 윤석남 선생님께 연락드리자, 선생님께서 흔쾌히 수락해주셨다. 인터뷰 말미에 현재 하고 계신 반려견 작업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많은 버려지는 개를 데려다 기르는 이애신 할머니 이야기를 하셨고, 필자가 보기에 윤석남선생님은 버려지는것에 애착이 많으신분 같았다. 동시대미술 작가 중 반려묘, 반려견들을 작업의 모티브로 삼는 경우가 종종 있다. 전통적인 영모화의 형식을 차용한 작가로는 신선미, 손유영을 들 수 있고, 90년대생 젊은 작가 박지혜의 작업도 눈에 들어온다. 박지혜는 반려묘와 이를 안고 있는 여성의 뒷모습을 인상적으로 표현했다. 박지혜 역시 버려지는 반려묘에 대한 애착으로 작업을 시작하였다. 반려견과 반려묘가 한편에선, 버려지고, 다른 한편에선, 이러한 반려동물에 대해 안타까워한다. 반려동물은 1인 가구가 늘어나는 현재에 가족이나 다름없게 여겨지고 있다. 반려동물을 위한 의류, 간식, 장난감 등 뿐만 아니라, 반려동물을 위한 납골당도 생겨나고 있다. 우리를 둘러싼 자연이 점점 훼손되고 사라짐에 따라 자연을 둘러싼 생명들이 인간의 소유로 바뀌고 있다. 어린아이들은 자연에서 생명이 크고 자라는 것을 경험하지 못하고, 체험학습이나 방과 후 학습을 통해 자연을 접하게 되었다. 우리가 전통을 단절하고, 잃은 것 중 하나는 본래모습이다. 본래모습은 곧 자연이다. 자연을 잃은 인간이 자연을 끌어들이는 방법은 자신의 소유로 만드는 것 뿐이다.


1) 이동주, <우리 옛그림의 아름다움-전통회화의 감상과 흐름>, 시공사, p.329.참조.

윤석남, <사람과 사람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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