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도의 <염불서승도>는 도석인물화이다. 김홍도의 <염불서승도>를 처음 본 것은 동방예술학회강좌에 오신 백인산 선생님의 강의에서였다. 당시 많은 이미지를 접했는데, <염불서승도>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김홍도의 <염불서승도>는 한 선승의 뒷모습을 그렸다. 뒷모습 임에도 선승의 인격이 느껴진다. 꼿꼿하며, 주체적인 사람일 것 같다. 얼핏 봐도 선승은 중생의 고통을 벗어난 듯 싶다. 스님은 구름 위를 타고 있고 구름 속에 연꽃이 포개어져 있으니... 김홍도의 도석인물화를 보자니, 자의 반, 타의 반 마음공부를 하고 있는 내가 보인다. 필자는 20대의 어느 초여름날 부터 마음공부를 안하면 안되는 상황을 맞이하였다. 그래서 나를 보는 연습을 10년 넘게 하다 보니, 지금은 조금씩, 내가 보이고 다른 사람이 보인다. 처음에는 마음공부는 해서 뭐하나 하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고, 마음공부라는 것이 추상적이고 모호하게 느껴졌으며, 아무짝에도 쓸모 없고, 끝이 없는 길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미술에 관련된 공부와 더불어 마음공부를 하고 있는 이유는 내 자신을 찾아가며, 점점 깨어나기 때문이다. 현재 나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가 돌아가는 모습, 내 주위에 가족이나 지인들이 겪고 있는 문제들, 내 마음에 24시간 발동하고 있는 핵심감정들을 잠시나마 마주 할 수 있게 되었다. 김홍도의 그림 속 스님은 마음공부를 한 40년쯤 하지 않았을까? 그러니 구름 타고 연꽃 타고 광배 두르고 있는 것일테지.
동시대미술에서 눈에 띄는 도석인물화가 있다면, 정종미의 <일엽>이다. 일엽은 일제강점기에 신교육을 받은 최초의 여성유학생이며, 수필 등을 남긴 문인이기도 하다. 일엽은 몇 번의 만남과 이별을 반복하다 돌연 속세를 등지고 출가한다. 나혜석 김명순과 더불어 여성의식 계몽에 앞장 선 인물이다. 탄실 김명순의 경우, 그녀가 데이트 폭력을 당한 일을 김동인이 소설 ‘김연실’ 전에 발표함으로써, 2차 가해를 하게 된다. 탄실은 일본에서 가난에 시달리다 행려환자로 정신병원에서 홀로 죽었다. 나혜석과 김명순이 불행하게 삶을 마감 한 것을 보면, 시대를 앞서간다는 것이, 어떤이들 에게는, 특히, 그 당시 인권이 미약했던 여성의 입장에서는 결코 유리한 것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나혜석과 김명순과 다르게 일엽은 출가하여 사회적인 태도에서 자기 자신의 문제로 돌아서며 자신을 정면돌파하기로 마음 먹는다. 정면돌파, 마음공부는 정면돌파이다. 피하지 않고 직면하는 것이 마음공부이다. 기쁘면 기쁜대로, 슬프면 슬픈대로, 노여우면 노여운대로, 희노애락을 마주하는 것. 그것이 마음공부이다. 우리는 마음의 소리를 자주 무시한다.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야 될 시간에 배고파도 참고, 졸려도 자지 않는다. 화가 나도 상대를 봐서 참거나, 심지어 자신이 화가 났는지 조차 모른다. 이것은 수 없이 자신을 보지 않고 억압해버린 결과로 나타나는 현상인 것이다. 마음공부는 자신을 보지 않고, 피하고 억압하는 것으로부터 해방 시켜주는 것이라고 말해 볼 수 있다. 간단히 말하면, 마음공부란, 인생의 파노라마를 직면하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보는 것, 있는 그대로 느끼는 것, 즉 살아있는 것이다.
김홍도의 <염불서승도>와 정종미의 <일엽>을 보고 있노라면, 인생의 고통을 피하지 않고, 직면한 두 선가의 스님이 오롯이, 스스로 서 있는 것이 보인다. 마음공부 평생 하다보면, 두 스님의 그림자 정도는 밟는 날이 오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