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들었던 학교괴담 중 가장 기억나는 것이 있다. 초등학교때 친구하나가 괴담을 이야기해줬다. 당시 내친구는 종종 나를 웃게도 해주고, 다른아이들을 왕따 시키다 자신이 왕따가 되기도 했던 아이였다. 그 괴담은 우리학교인지 어디에서 미친여자가 아이를 낳고 탯줄을 스스로 끊었다는 이야기였다. 물마시는 수돗가에 피가 낭자했다 어쩌구저쩌구 하는 오싹오싹공포체험 같은 이야기였다. 초등학교때 빨간옷이나 빨간운동화를 신은 아이를 보면 홍콩할매귀신이 잡아간다는 이야기가 떠돌았지만 홍콩할매보다 미친여자가 아이를 혼자 낳다 탯줄을 스스로 끊었다는 이야기가 더 공포스러웠다. 지금은 공포보다 처연한 감정이 더 드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때는 그 이야기가 무서웠다. 가만히 보면, 우리는 혐오하는 것들이 많다. 여성 남성이 대립하고 혐오하고, 성소수자나 특정 질병에 걸린 사람들, 정신질환자들 등등을 혐오한다. 고등학교때는 또 이런일도 있었다. 누군가 비둘기가 먹는 먹이에 독극물을 타서 비둘기가 떼죽음을 당한 일이 있었다. 고등학교때 아이들의 이름을 유난히 잘 외우시던 작문선생님이 계셨는데, 비둘기가 뚱뚱해져서 날라다니는 것이 꼴보기 싫어 그랬을거라고 이야기하셨다. 그말을 듣고 보니 비둘기가 혐오스러워진 나와 친구들은 한동안 비둘기가 보이면 소리를 질러대며 피해 다녔다.
최북(1712~1786?)이란 조선시대 화가가 있다. 메추라기 그림을 잘 그렸고, 괴이하고 과격한 행동도 잘했다. 특히 고관대작을 경계하는 측면이 강했는데, 권력으로 그림 요청을 하는 사람을 아주 싫어했다. 그림요청을 거절하고 분에 못이겨 자신의 눈을 찔러 애꾸눈이 되었다. 구렁이 담넘어가듯 피하면 될 것을 최북이라는 사람도 참 과격하다. 30대 때 자살소동 등 괴팍한 그에 대한 일화는 지금도 전해진다. 그의 죽음도 수수께끼이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운명했는지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중략) 다만 조희룡만 최북은 49세에 죽었으니 이것이 칠칠의 징조(7×7=49)라는 소문을 전했다.1) 최북은 자신의 눈을 찌를 정도로 그림요청한 이가 혐오스러웠나보다. 어떻게 보면 자신은 자신이 혐오하는 사람보다는 나은사람이라는 생각이 강한 것이 혐오라는 감정일지 모르겠다.
혐오란 것은 대개가 나보다 신분이나 처지, 행동, 교양 등이 얕보일 때 동반하는 경우가 많다. 다른사람에게 지나치게 민폐를 끼치는 사람, 도덕성이 결여된 인간, 노숙을 하거나 혐오시설에 갇힌 사람 등등...을 사람들은 곧잘 혐오한다. 박영숙이라는 작가가 있다. 박영숙은 대학에서 사학을 전공하고 사진기자로 일하다 대학원에서 사진 이미지가 어떻게 심리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공부했다. 이때 여성문화연구모임 ‘또하나의문화’에서 조한혜정(연대 명예교수)과 공부하면서 성이 무엇인지, 여성이 왜 억압받는지 고민하기 시작했다.2) 시선이 집중되는 타이틀 박영숙의 <미친년 프로젝트>(1999~)중 하나를 소개한다. 베개를 아기마냥 꼭 껴안고 있는 광기어린 젊은 여자가 있다. 무슨 사연이 있을 법한 여인이다. 아마도 그녀에게 삶이 전쟁처럼 쳐들어왔나보다. 미친년에게도 지키고 싶은 단한가지는 있는법이다. 여자의 베개는 베개가 아니다. 꼭 쥐고 싶은 삶! 사회변두리에 버려진 그녀를 사람들은 혐오하고 무서워한다. 단지 그녀는 세상이 무서운 것일 뿐인데 말이다.
우리는 맞고 사는 피해자들을 종종 동정하지만, 가정폭력을 합리화하는 사람의 단골변명은 ‘맞을짓을 해서 때렸다.’란 말이다. 그 말은 ‘그사람이 나를 비추는 거울이었다.’라는 말과 동일하다. 혐오는 가장 강력한 자기혐오이다. 자신의 열등감으로 남을 미워하는 가장 강력한 적개심이 혐오란 감정이다.
1) 송희경, 『아름다운 우리 그림 산책-선비정신, 조선회화로 보다』, 태학사, 174.
2) 박유리기자, 월간미술, 2018. 3. p.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