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포스의 형벌과 일상 사이
“엄마가 한 제육볶음~~ 엄마가 해준게 맛있어!~~” 언젠가 반찬가게에서 제육볶음을 샀다. 아이가 먹기에는 조금 간이 셌다. 요즘 내가 제육볶음 양념을 하는데, 간을 약하게 해서 딸아이 입맛에 맞았나 보다. 사온 반찬이 싫다고 해달라고 고집을 부린다. 나는 요리를 잘하는 편이 못된다. 신랑도 어머니 음식이 더 좋았는지 어머니가 국을 늘 끓여 주셨다는 이야기를 가끔 한다. ‘나는 국을 잘 못 끓이는데 어쩌란 말인가?! .’ 국을 잘 끓이겠다는 집착도 내려놓은지 오래다. 그런데 딸이 내가 해준 싱거운 제육볶음이 먹고 싶다고 조르자 이상한 뿌듯함이 마음을 감싸고 돈다. 가끔 엄마들과 어울려서 수다를 떨다가 “오늘 저녁에는 뭐 해먹지.”라는 말이 한번씩 누군가의 입에서 나온다. 모두 맨날 같은 음식 할 수도 없고, 메뉴 걱정이 제일 크다며 맞장구 친다. 여성의 일상은 밥과 관련이 많이 되어 있다. 아침, 점심, 저녁도 밥 먹는 시간이 기준이 된다. 누군가는 세끼를 모두 차려야 하는 주말에 두끼만 먹어주는 센스를 남편이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도 한다. 가사가 좋으나 싫으나 아직도 여성의 일이라는 인식도 존재한다. 매일 같은 일의 반복은 집에 있는 사람이나 나가서 돈을 버는 사람이나 매한가지다. 어딘가 소홀하게 되고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 것은 집안일이 조금 더 그러하다.
옛날 선비 조영석은 여성의 일상을 잔잔하게 비춘다. 세 명의 여성이 정성스럽게 바느질을 하고 있다. 아낙네들이 제법 진지해 보인다. 조금은 재미도 있는지 여성들의 입꼬리가 올라가 있다. 바느질하는 손, 가위질하는 손을 간결하게 동세를 표현했다. 옛 그림을 보면 여성의 손을 볼 기회가 있는데, 모두 손이 작고 가녀리다. 그런데 이상하게 손에 눈이 간다. 크고 강직한 것보다 여리고 약한데 사람의 마음이 가는가 보다. 세 여인은 아마도 살아가는 이야기들을 도란도란 나누는 것 같다. <바느질>은 조영석(1686-1761)의 풍속화첩 《사제첩》麝臍帖에 나오는 그림이다. 조영석은 사대부였는데 당시에는 사대부가 평민을 이렇게 그린다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었다. 물론 조선 후기 화가 공재 윤두서가 드물게 평민들의 삶을 그린 사람이다. 조영석은 흔한 일상을 특별하게 <바느질>이란 그림으로 은밀한 화첩에 남겼는데, 조영석 본인이 이런 일상을 기록하는데 자부심이 없었던 것 같다. 조선 사회가 질서를 중시해서 사대부가 이런 그림을 남긴다는 것을 떳떳하게 느끼지 않았던 탓도 있다. 1)
1946년에 그려진 조병덕의 <식사 준비> 역시 집안일을 하는 여성의 모습이다. 날이 갠 오전이나 해가 높이 뜬 오후의 시간을 표현하였다. 식사 준비를 하는 여성의 모습이 차분하고 정갈하다. 소쿠리에 담긴 감자와 파를 적절한 그림자로 생동감 있게 표현하였다. 현대가 되어서도 여성은 가사를 하는 존재로 깊이 인식되어 있다고 볼 수 있는 그림이다.
우리 사회 페미니즘이 화두가 되었던 가장 가까운 해는 2018년이었다. 2017년, 2018년에 mee too도 가장 활발하게 일어났던 것 같다. 그러한 흐름과 맞춰 내가 보는 월간지에서 여성작가의 글이 실리는 것을 볼 기회가 있었다. 작품 뿐만이 아니라 일상이 투영된 송하나의 글에는 육아와 살림 그리고 작업에 대한 그녀의 견해가 조용하게 피력되어 있었다.
아줌마가 된 작가에게 넘기 힘든 벽 중 하나는 역시 살림이다. 살림이란 시시포스(Sisyphus)2)의 형벌 같다. 깨진 항아리에 끊임없이 물을 채우는 일처럼 보인다. 이것도 놀랄 일인데 더 놀라운 점은 채워져 있는 물을 보고 아무도 신기해하거나 대단하다 여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설거지를 하다가 문득 드로잉 할 것이 생각나면 고작 남은 접시 두 개를 마저 씻고 할지, 펜을 들지 고민한다. 남은 음식을 정리하다 큰 고민에 빠진다. 먹을까, 버릴까, 얼마 뒤 나는 잔반드로잉이란 이름으로 그것들을 그리기 시작했다. - <<월간미술>> <청년작가가 된 아줌마>> 중에서 3)
수채화로 그려진 일러스트 같은 이 그림은 깨진 독에서 물이 흐르고 있고, 이 깨진 독에 계속해서 물을 부어야 하는 여성이 조그맣게 그려져 있다. 그녀는 미술작가인 남편도 그렇게 다른 입장은 아니더라는 글도 덧붙였다. 지금 우리가 나아가는 시대는 여성과 남성이 같은 것을 고민하기도 하고, 조금의 차이를 인정하기도 하는 분위기이다. 결국 남성이든 여성이든 시시포스의 형벌 같은 반복되는 일상에서 자신이 인간임을 잊지 않고 살아갈 수 밖에 없지 않겠는가.
참고문헌
1) 윤진영 『조선 시대의 삶, 풍속화로 만나다 – 관인, 사인, 서민 풍속화』, 다섯수레, 139-140. 참고
2) 시시포스 (Sisyphus)-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코린토스의 왕으로 코린토스 시의 창건자(창건 당시의 이름은 에피라)이다. 교활하고 못된 지혜가 많기로 유명했다. 시시포스는 제우스의 분노를 사 저승에 가게 되자 저승의 신 하데스를 속이고 장수를 누렸다. 하지만 그 벌로 나중에 저승에서 무거운 바위를 산 정상으로 밀어 올리는 영원한 형벌에 처해졌다고 한다. - [네이버 지식백과]
3) 송하나, <청년작가가 된 아줌마>- 월간미술 2018년 3월호, p. 104.
조영석, <바느질>, <<사체첩>>중, 18세기, 종이에 담채, 134.5*64.0cm, 개인 소장
송하나, <시지프스의 형벌>, 종이 위에 연필, 수채화, 21*14.8cm, 201
조병덕, <식사 준비>, 1946, 캔버스에 유채, 116*91c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