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 보살의 이름으로

by 박재은

주부의 일상은 때론 여러 사람이 와서 치대기도 하고, 모두들 빠져나가고 조용한 혼자만의 시간도 주어진다. 오늘과 같이 한적한 오후 어느 날에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려고 나간 적이 있다. 갑자기 부슬비가 내렸고, 다시 우산을 가지고 엘리베이터를 타기에는 음식물 쓰레기통까지 거리가 짧았다. 난감해 하고 있는데, 50대 아주머니가 양산을 빌려주시며, 쓰고, 쓰레기를 버리고 오라고 하셨다. 짧은 시간에 아주머니의 포근함이 느껴졌다. 아이가 더 어릴 때 가끔 지하철을 타고 이동을 할 때가 있었다. 그때만 해도 나는 지금보다 더 어설펐고, 그런 나와 아이를 보고 자리를 양보해 주시던 분들은 50대 아주머니들이었다. 나보다 조금 더 나이가 든 50대 아주머니들은 가게에서 장사하시던 분들, 식당 주인, 옷가게, 반찬가게 주인 등이다. 그분들은, 다른 사람의 일인데 모두들 전지적 참견시점으로 한마디씩 한다. 주로 듣는 말은 아이는 왜 하나만 낳냐, 운동해서 살 좀 빼면 좋겠다. 기타 등등... 모두 내가 하나씩 채워 넣어야 하지만 비워두고 있는 내 삶의 자리에 대한 이야기다. 그런 간섭이 싫지만은 않은 것을 보면 나는 외국에서는 정말 못 살 사람이라는 것이다. 우리네 아주머니들 이야기를 조금 더 하자면, 어머니 친구분들의 관한 것이다. 그 많은 고난과 원수들을 이기고 어떻게 사셨을까 싶을 정도로 그녀들을 둘러싸고 있는 것에 만만한 것은 하나도 없다. 인생 전반기에 힘을 빼던 그녀들의 원수들이 퇴장할 무렵 다시 등장한 못난 자식들도 오롯이 그녀들의 몫이다. 그녀들은 실의에 빠져있는 대신에 서로서로 안부를 묻고, 인생의 무거움을 유머로 승화하며 살고 계시다. 우리네 어머니들은 그래서 고단해 보이면서도 어딘지 삶의 반전을 항상 노리는 승부사 같기도 하다. 그 와중에 비벼대는 자식들과 손주에게는 더 없는 보살의 모습으로 현존한다.


여기서 보살에 이야기가 나왔으니 옛 그림으로 이야기를 넘어가 보자. <수월관음보살도>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보살의 이미지는 세속을 벗어나 있는데, 많은 치장을 하고 있는 관음보살도는 세속의 기쁨을 어느 정도 누리는 사람 같다. 옷도 화려하고, 장신구도 크고 예쁘다. 두르고 있는 천의 무늬가 돋보인다. 시선을 은근히 잡아 끈다. 여성의 몸처럼 둥근 선이 많고, 작고 고운 손이 인상적이다. 이 작품에서 관음보살은 화려한 옷과 장신구, 가냘픈 몸매와 곱상한 얼굴로 여성의 모습이지만 보살은 원래 남성이며 그림에서도 종종 콧수염을 하고 있다. 이렇게 여성화된 관음의 이미지는 후대로 갈수록 더욱 유행한다. 1) 아무래도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많이 듣고, 고통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남성보다 여성에게 있는 자질이다. 그러기에 <수월관음보살도>의 보살의 이미지가 이렇게 여성화되어 있는 것이다. 여성들이 남성들보다 수명이 긴 이유도 자신들만의 스트레스 해소법이 있기 때문이다. 주로 수다로 하루의 피로를 날려버린다. 어느 때는 쌓아 놓은 근심 걱정을 지인에게 쏟아 붓는다. 내 생각엔 심리상담가를 찾아 가야 하는 수준의 이야기도 서로서로 품앗이로 들어준다. 이런 행동은 남성으로는 이해가 잘 가지 않는다. 다른 사람의 고충을 들어주는 일은 남성에게는 드문 자질이다. 그리고, 이런 고충을 잘 들어주는 것은 성인(聖人)의 자질이다. 우리가 사는 세계에서는 성인(聖人)은 현존하기 어려우니 보살이라고 해야 옳겠다.


동시대 미술에서 오형근의 <진주목걸이를 한 아줌마>를 보자. 아주머니는 요즘 말로 좀 과하다. 흑백으로 보기에도 진한 화장에 아줌마의 상징인 펌을 했다. 무엇이 즐거운지 신나게 웃고 있다. 제목에서도 언급된 진주목걸이는 무려 3단이다. 이정도 장신구를 했다는 건 아주머니의 나이가 꽤 있다는 의미이다. 여성은 나이가 들수록 장신구를 크고 화려하게 한다. 아주머니는 한껏 꾸미고 무엇이 신났을까? 동창 모임이라도 나가는가 보다. 그녀의 인생이야기도 즐겁지만은 않은 굽이굽이 사연들로 넘실댈 텐데... 아마도 아주머니는 그러한 애환을 녹여줄 친구가 있는가 보다.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밉고도 고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밤새도록 할 거 같다. 나는 그녀에게서 보살의 얼굴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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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월관음보살도(水月觀音菩薩圖)>, 작자 미상, 고려 14세기, 비단에 체섹, 119.2*59.8cm, 보물 제 926호, 삼성미술관 리움

Scan_20201111_154608.jpg 오형근(1963-) <진주목걸이를 한 아줌마>, 1997, 젤라틴 실버프린트, 100*100cm,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1) 조인수, 『군자의 삶, 그림으로 배우다』, 다섯수레, p. 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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