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고, 그리고, 키우며 삽니다
매체는 글을 담는 그릇이다. 글이 본질인데, 글은 물과 같다. 그릇에 따라 모양이 변한다. 나는 몇몇 매체를 거쳤다. 정확히 말해서 나는 돈을 버는 전업작가가 아니라 내 글을 실어 주는 매체에 따라 내 글은 변했다. 처음에는 배운 것이 도둑질이라 배운 글을 써야 했다. 배운 글은 대학과 대학원에서 배운 미술평론이다. 미술평론은 어려운 글이다. 딱딱하기도 하다. 재미없는 미술평론은 침체되어 있다. 신춘문예에 한번 미술평론을 응모해 본 적이 있다. 우연히도 우리 과 교수님이 심사위원이었는데, 내 글은 최종 심사평에 들지 못했다. 떨어진 글도 다시 보자. A4 9장의 글은 쪼개졌다. 쪼개고 다듬고 벼렸다. 그리고 다시 소생된 글은 새 매체를 만났다. 그렇게 올리고 보니, 쓸만해 보였다. 구글에 들어가서 하는 키워드 검색은 내 즐거움의 하나가 되었다. 여기서 확장되어 나와 같은 키워드로 글을 쓰는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대학원 시절부터 은둔과 전통이라는 키워드로 관심을 가지고 글을 조금씩 써왔다. 놀랍게도 이 두 키워드는 확장되고 있었다. 요즘 읽은 책은 신기율 선생님의 <<은둔의 즐거움>>이다. 신기율 선생님은 알고리즘이 안내해준 사람이다. 또 하나 알게 된 책은 <<은둔 기계>> 이 책은 곧 읽을 예정이다.
내가 거쳐간 매체는 아트사이트, 블로그, 소식지, 전시도록, 책 등이다. 블로그는 습작을 쓰는 공간이었다. 조잡한 에세이 습작에 친구 두 명은 댓글을 달아주었다. 내가 좋아한 에세이는 나를 싫어한다. 내 글이 깜짝 관심을 받았던 적이 있다. 맘 카페에 남편의 짠내 나는 일상을 스스럼없이 썼다. 맘들은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평론을 쓸 때는 책을 읽고 형식을 가듬고, 논리를 확장해야 했다. 에세이는 더욱 어렵다. 무엇도 정수를 맛보진 못했다. 그래도 내가 관심 있어하는 키워드가 사회에 확장되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즐겁다.
매체가 더 다양해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관심사, 키워드가 같거나 다른 사람들과 소모임을 하고 싶다. 무슨 말들을 할까? 저마다 다양하고 깊은 말들을 쏟아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