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고, 그리고, 키우며 삽니다
좋은 글이란, 완성도가 높아야 하며, 시대를 읽는 맑은 눈을 간직해야 하며, 마지막으로 재기발랄하면 더욱 좋다.
언젠가 좋은 글에 대한 정의를 내려 본 적이 있다. sns에 좋은 글 쓰기가 어렵다고 위와 같은 좋은 글에 대한 정의를 써 본적이 있다. 누군가 볼멘 소리로 그거 몰라서 못쓰는 사람 없다고 댓글을 달았다. 몰라서 못쓰는 사람 없다. 사실 글을 쓰는 동안에 나는 줄곧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 같다. 글을 쓴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의 완성도를 높이는데만도 몇년이 걸렸다. A4한장짜리 리뷰나 작가평론, A4 두장반 정도의 주제를 가지고 쓴 글, A4 다섯장 이상의 논문 형식의 글 등등을 몇년간 썼다. 가장 중요한 것은 완성도였다. 완성도는 미술학원을 다니며 입시미술을 배웠을 때도 늘 따라다니던 숙제였다. 3시간이라는 한정된 시간안에 그림을 그려야 하기 때문에 세월아 네월아 그림을 붙들고 있을 수 없었다. 재빠르고 정확하게, 또 깊이있게 그려야 했다. 학원 선생님들은 그리고 싶은 그림은 대학가서 그리라며 진한 그림을 권했다. 언뜻 진한 그림이 작업의 완성도가 높아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그림은 약했다. 억지로 진해질 수가 없었다. 완성도를 올리는 것은 쉬운일이 아니었고, 학원을 옮기자 그림이 진해졌다. 다시 돌아온 학원에서 바른선생님은 "그림이 진해졌어요." 한마디 하셨다. 그리고, 딱 한장의 그림은 칭잔하셨다. "이건 잘 그렸네요." 오이와 완두콩 그림이었다. 초여름날 오이와 완두콩을 시험으로 그려본 것이었다. 그날은 집중이 잘되었다. 이상한 날이었다. 3시간안에 완성도를 높이다니. 그런날도 있는가보다.
그림의 완성도가 하루아침에 이루어 지지 않듯이, 글의 완성도도 마찬가지이다. 어머니 말씀에 많이 먹어야 똥이 많이 나오듯, 많이 읽어야 많은 글이 나온다고 하셨다. 그 말씀이 맞았다. 독서량이 적으면 여지없이 내안에 밑천이 떨어진 것을 느낀다. 우선 글을 쓰려면 읽어야 하는 것이다. 다독도 좋다. 그렇지만, 사람이 자신과 영 관련이 없는 책에는 손이 가지 않는다. 자신의 삶에서 파생된 주제면 한번 깊이 들어가 보는 것이다. 그러면서 재미를 느끼면 가장 좋다. 내가 재미를 가지고 쓴 글은 독자도 재밌어 한다. 그러면 절로 완성도가 높은 놈이 하나 나온다. 그런 놈을 같이 즐거이 읽어주는 사람이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