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의 문을 열고 모험에 뛰어들기

<읽다> 김영하 지음, 문학동네 출판

by 여행하는 그리니
<읽다> 김영하 지음, 문학동네 출판


우리는 화폐경제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교환이 불가능한 것들은 무가치하다고 생각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그러나 정말 소중한 것은 교환이 불가능합니다. 부모가 준 사랑을 계량화해서 자식이 되갚을 수는 없습니다. 어려움에 처한 타인을 도운 경험이 똑같은 형태로 내게 돌아오지도 않습니다.

소설을 읽음으로써 우리가 얻는 것은 고유한 헤맴, 유일무이한 감정적 경험입니다. 이것은 교환이 불가능하고, 그렇기 때문에 가치가 있습니다. 한편의 소설을 읽으면 하나의 얇은 세계가 우리 내면에 겹쳐집니다. 저는 인간의 내면이란 크레페 케이크 같은 것이라 생각합니다. 일상이라는 무미건조한 세계 위에 독서와 같은 정신적 경험들이 차곡차곡 겹을 이루며 쌓이면서 개개인마다 고유한 내면을 만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거기 소설이 있으니까" 읽는 것입니다. 자, 근육량을 늘리고 건강해지기 위해 헬스클럽에 가자 라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인간과 세계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소설을 읽자 고 결심하는 것은 어딘가 부자연스럽습니다. 소설은 소설이 가진 매력 때문에 다가가게 되는 것이고, 바로 그 매력과 싸우며 읽어나가는 것이고, 바로 그 매력 때문에 다시 돌아가는 것입니다. 독서의 목적 따위는 그에 비하면 별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지 않아도 산이 사라지지 않는 것처럼 어떤 소설은 우리가 읽든 말든 저 어딘가에 엄연히 존재합니다. 독자는 소설을 읽음으로써 그 어떤 분명한 유익도 얻지 못할 수 있습니다. 다만 그 소설을 읽은 사람으로 변할 뿐입니다.

"소설은 두 번째 삶입니다."

그렇습니다. 그게 전부일지도 모릅니다.


사실 독자로 산다는 것에 현실적 보상 같은 것은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의 짧은 생물학적 생애를 넘어 영원히 존재하는 우주에 접속할 수 있다는 것, 잠시나마 그 세계의 일원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독서의 가장 큰 보상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별들이 수백 수천 년 전에 보내온 빛이 이제야 우리의 망막에 와닿듯이 책 역시 시공을 초월해 우리에게 도달하고 영향을 미칩니다. 밀란 쿤데라의 통찰처럼 비록 우리 현대인의 시야가 마치 오제프 k의 그것처럼 좁아져 있고 모두가 세속적 이해와 단기적 전망으로 아웅다웅하며 살아가고, 세계가 돈키호테와 같은 모험을 더 이상 허용하지 않는다 해도, 우리에게는 이 좁은 전망을 극적으로 확장해줄 마법의 문이 있습니다. 바로 이야기의 바다로 뛰어들어 책의 우주와 접속하는 것입니다.


- <읽다> 김영하 지음, 문학동네 출판


나를 책의 세계로 인도한 것은 소설이었다. 허구의 이야기.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나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를 읽고 책의 우주와 만나게 되었고, 그렇게 책은 내 삶의 일부가 되었다. 초등학교시절에는 책읽기는 하나의 놀이였다. 놀이터에서 그네를 타며 노는 것이나 친구와 술래잡기를 하며 노는 것처럼 재미있는 놀이. 그리고 중고등학교를 지나 대학교때까지 나는 소설을 읽으며 그 놀이를 즐겼다. 세상엔 내가 읽지 않은 책들이 셀 수 없이 많았고, 나는 책장을 들추고 페이지를 넘기면 그 우주에, 새로운 세계에 접속할 수 있었다.


그러나 취업을 하고 뒤늦은 질풍노도의 시기가 오면서 나는 소설을 읽지 않게 되었다. 내 삶이 소설처럼 미로가 되어 풀기힘든 세계가 되었기 때문이다. 눈앞의 세계를 헤매느라 나는 소설같은 것은 들춰볼 여력이 없었다. 현실적인 문제들과 삶에 대한 고민, 자아탐색의 고민들을 해결하기 위한 책읽기가 시작되었다. 자기계발서나 실용적인 책들, 나의 문제와 호기심을 해결해줄만한 책들을 찾아 읽게 되었다. 비소설의 책세계도 소설의 책세계만큼 방대했다. 그 세계를 이리저리 헤엄치며 나는 내 삶을 변화시켜나갔다.


자아탐색을 도와주는 책, 성공을 약속하는 자기계발서, 직업을 말하는 책, 자아성취를 도와주는 책, 인간관계를 다루는 책, 습관을 만드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 비건을 말하는 책, 마음공부책, 여행책, 에세이, 음악과 미술등 예술을 다루는 책, 우주를 다루는 책, 과학을 말하는 책 등등. 얼마나 많은 책들이 내 삶을 거쳐갔는지 셀 수 없을 정도로 나는 그 책들에게 신세를 졌다. 크레페 케이크처럼 한겹한겹 내 삶을 겹겹이 이루고 있는 그 책들 덕분에 내가 지금 여기 이렇게 존재한다.


김영하의 책 <읽다>를 읽고 나는 다시 소설의 세계에 접속하고 싶어졌다. 삶도 하나의 가상의 세계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의식이 만들어낸 허상의 세계. 그 세계는 소설속의 세계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도 의식이 만들어낸 허상의 세계, 꿈과 같은 세계였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세계에는 수많은 문들이 있다. 어떤 문을 여느냐에 따라 이 세계는 다양한 길로 나를 인도한다. 그리고 한편에는 이야기의 바다가 있는 책이라는 우주로 향하는 수많은 문들이 있다. '오제프 k의 그것처럼 좁아져 있고 모두가 세속적 이해와 단기적 전망으로 아웅다웅하며 살아가고, 세계가 돈키호테와 같은 모험을 더 이상 허용하지 않는다 해도', 나의 이 좁은 전망을 극적으로 확장해줄 마법의 문이 바로 그 문들이다. 나는 내가 살고 있는 이 세계의 문들과 책이라는 우주로 향하는 마법의 문들, 그 모든 문들을 열고 뛰어들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되어 모험을 떠나고 싶다. 그 모험이 어디로 이어질지 예측할 수 없기에 두근거리는 모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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