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알아서 살도록 내맡긴다

<될 일은 된다> 마이클 싱어 지음, 정신세계사 출판

by 여행하는 그리니

그때까지 내면의 자유를 향한 나의 여정은 모두 명상을 중심으로 돌아갔다. 나는 깊은 평화와 고요를 한껏 맛보기 위해 명상을 통해 내면으로 들어갔다. 그것은 효과가 있었다. 어느 정도까지는 말이다. 나는 몇 시간이고 앉아서 에너지의 아름다운 흐름이 나를 위로 끌어올리는 것을 경험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내가 그토록 가고 싶어하는 곳에 도달하기에는 아직 뚫지 못한 벽이 있었다. 게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움직이기 시작하면 마음은 언제나 제자리로 되돌아왔다. 나는 도움이 필요했고, 그것은 어느 날 벼락같은 깨달음을 통해 왔다. 어쩌면 내가 잘못된 방식으로 접근해가고 있는 것일 수 있다는 데에 생각이 미친 것이다. 끊임없이 마음을 조용히 잠재움으로써 나를 해방시키려고 할 것이 아니라, 마음이 그렇게 소란스러운 이유를 먼저 물어봐야 하는 것 아닐까. 마음을 그렇게 재잘거리게 만드는 배후의 원인이 무엇일까? 만일 그 동기를 제거할 수 있다면 싸움은 끝날 터였다.

이 깨달음 덕에 나의 수행은 완전히 새롭고 흥미로운 차원으로 접어들었다. 내면을 잘 살펴보니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이 하나 있었다. 바로 마음의 활동 대부분이 나의 호불호를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점이었다. 마음은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것을 발견하면 그것에 대해 왁자지껄 떠들기 시작했다. 마음의 이 호오야말로 어떻게 하면 삶의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을지에 대한 주절거림을 끊임없이 일으키는 주범이었다. 그 모든 것으로부터 해방되겠다는 대담한 시도의 일환으로서 나는 개인적인 호불호를 둘러싼 마음의 수다에는 완전히 귀를 닫겠노라고 결심했다. 대신 삶이 자연스러운 흐름을 통해 내게 가져다주는 것을 그대로 수용하는 데에만 의지를 발휘하리라고 마음먹었다. 이런 관점의 변화가 어쩌면 내면의 소란을 잠재울 수 있을지도 몰랐다.

수행은 아주 간단한 것으로부터 시작했다. 바로 날씨였다. 비가 오면 툴툴대지 않고 그저 비가 내리나 보다 하는 것이, 해가 쨍쨍하면 툴툴대지 않고 그저 쨍쨍한가 보다 하는 것이 정말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 마음이 그럴 수 없다는 사실만은 확실했다.

‘왜 하필 오늘 비가 내리는 거지? 비는 꼭 내리지 말았으면 할 때 내리더군. 다른 날 놔두고 왜 하필 이날이야. 이건 불공평해.’

나는 이 모든 무의미한 소음을 다음 말로 대체했다.

‘참 아름답구나. 비가 내리네.’

이런 수용 연습은 효과가 매우 강력하여 확실히 마음을 조용해지게 만드는 데 일조했다. 그래서 나는 좀 더 밀고 나가 더 많은 것을 대상으로 수용연습을 해보기로 했다. 이제부터 삶이 특정한 방향으로 펼쳐지는 것에 대해 내가 저항하고 있다면, 그리고 그 유일한 이유가 나 자신의 호불호라면 나는 그 호불호를 내려놓고 삶에 주도권을 넘기겠노라고 결심했던 것이 생생히 기억난다.

분명히 이것은 내게 미지의 영역이었다. 나는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좋고 싫은 마음을 따라가지 않는다면 내게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 이 의문은 나를 겁먹게 하지 않았다. 오히려 나를 강렬하게 사로잡았다. 나는 삶의 주도권을 잡고 싶은 게 아니었다. 나의 자아 저 너머로 자유롭게 솟아오르고 싶었다. 나는 이것을 하나의 위대한 실험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내면의 저항을 그저 내려놓고 삶의 흐름에 나를 맡긴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실험규칙은 매우 단순했다. ‘삶이 내 앞에 가져다주는 사건들을, 나를 내 자아 너머로 데려가기 위해 온 손님처럼 대할 것’ 혹여 내 개인적 자아가 불평불만을 늘어놓는다면 나는 그 상황을 기회 삼아 자아를 내려놓고 삶이 주는 것에 내맡기기로 했다. 이것이 바로 내가 ‘내맡기기 실험’ 이라고 부르게 된 연습의 시작이었다. 나는 이 실험이 나를 어디로 인도하는지를 똑똑히 지켜볼 준비가 되어 있었다.

미친 사람이 아니고서야 누가 이런 결심을 하겠냐고 생각할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사실 나는 삶에 모든 것을 내맡겼을 때 얼마나 놀라운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를 이미 어느정도 경험한 상태였다. 나를 내려놓고 별것 아닌 것 같은 사소한 사건들을 따라갔을 뿐인데 우연히 멕시코의 한 언덕에 도착했고, 그곳에서 멕시코 마을사람들과 그토록 아름다운 만남을 가졌었다. 또 미국으로 돌아와서는 내 아름다운 땅으로 인도되었고, 거기서 집이 세워지는 과정을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했다. 작은 오두막을 짓고 싶었을 뿐인데 예상하지 못할 정도로 풍요로운 경험을 하지 않았는가. 확실히 이 모든 일은 내가 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이 내게 일어났다.’ 실제로 내가 맨 처음에 마음의 저항을 내려놓지 않았더라면 그 뒤의 모든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거의 평생을 ‘나한테 좋은 것은 내가 제일 잘 알지’ 라는 마음으로 살아왔지만 이제는 삶 자체가 나보다 훨씬 잘 아는 것처럼 보였다. 이제 나는 ‘모든 일은 아무렇게나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라는 전제를 막판까지 시험해볼 참이었다. 나는 과감히 뛰어들어 삶의 흐름에 몸을 맡길 준비가 되었다.

- <될 일은 된다> 마이클 싱어 지음, 정신세계사 출판


그래서 멀리 생각하지 말고 지금 이 순간 그냥 삶이 알아서 살아지도록, 펼쳐지도록 내버려 두기로 했다. '나'는 없다. 오직 삶이 있을 뿐이다. 삶이 알아서 살도록 내맡긴다. 내맡기고 관찰할 뿐이다. 나는 하얀 스크린이지 그 위에 펼쳐지는 영화가 아니다. 나는 모든 것을 내맡기고 다만 텅빈 무, 스크린이 되어 흘러간다. 내맡기고 삶이 알아서 펼쳐지도록 흘러간다. 그것이 삶의 목적이자 바탕 자리이다.

삶이 알아서 펼쳐지도록 내맡기기. 이 몸과 마음은 도구이고 수단일 뿐 내가 아니다. 나는 없다. 나는 없고 삶만이 있다. 알아서 알아서 펼쳐지는 꿈과 같은 삶의 흐름만이 있다. 나는 완전히 힘을 빼고 그 흐름에 내맡긴채 바라볼 뿐 애쓰거나 노력하거나 판단하거나 밀쳐내거나 당기거나 하지 않는다. 그저 있는 그대로 내맡긴다.


모든 것을 완전히 내맡기고 '나'가 사라지는 순간 완전한 자유의 감각이 찾아온다. 모든 것이 생긴 그대로 좋다. 그 어느 것에도 걸릴 것이 없다. 무한한 자유만이 있다. 무엇을 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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