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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간 수집가 Jan 26. 2023

매일 아침 나를 눈뜨게 하는 삶의 의미

눈 산책, 그림책, 재즈앨범 들으며 걷기


오늘은 아침부터 부지런히 눈이 내렸다.

"와 예쁘다"

창문밖으로 하늘에서 나풀나풀 춤추듯 아름답게 떨어지는 눈을 보니 탄성이 나왔다. 그리고 눈이 오는 풍경 속을 걷고 싶어졌다. 그래서 단단히 옷을 챙겨입고 모자를 눌러쓰고 무릎까지 오는 패딩부츠를 신고 우산을 꺼내 산책길을 나섰다. 오늘 산책길은 수원의 둘레길 중 하나인 도란길이다. 집 가까운 곳에 있어 자주 찾는 곳이다. 눈내리는 도란길은 또 다른 매력으로 빛나고 있었다. 영하의 날씨였지만 하나도 춥지가 않았다.


눈이 내리면 세상은 크리스마스처럼 낭만적이고 따뜻하게 변한다. 그리고 그 풍경 속을 걸어가는 사람들은 동화 속 사람들처럼 조그맣고 귀여워 보인다. 몸을 둥글게 말고 종종 걸음으로 눈길을 걷는 사람들과 새하얀 눈이 푸르르 내리는 풍경. 그런 따뜻하고 귀여운 풍경 속을 그냥 걷는다. 그렇게 그냥 걷다보면 머릿속은 하얀 눈처럼 텅 비고 마음에도 눈이 내려 가슴 속이 시원해진다.


도란길의 중간즈음에는 내가 좋아하는 어린이 도서관이 있다. 1층에는 그림책들이 잔뜩 있어서 이곳 쇼파에 앉아 그림책들을 보는 것이 나의 작은 사치다. 오늘도 1시간 정도 새로 나온 그림책들을 읽었다. 그 중 마음을 울린 책들.



<당신의 마음에 이름을 붙인다면> 이라는 책에는 세계 여러 나라들의 특별한 말들을 소개하고 있는데 내 마음을 들킨듯 마음에 쏙 드는 말들이 여럿 있었다. 사람들은 모두 똑같구나.


* 발트아인잠카이트

자연의 일부가 된 느낌. 나무들 사이에 홀로 서 있을 때 지구에 남은 유일한 사람이 된 기분


*메라키

어떤 일이 진행되는 과정에 깊이 녹아 들어가 진심과 영혼을 쏟아붓는 상태. 무슨 일이든 메라키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이를테면 사랑을 담아 누군가를 위해서 커피를 내리는 일. 우리는 이런 작은 일상에도 온 정성을 다 하곤 한다.


* 볼타

목적없이 발길 닿는대로 걸으면서 들려오는 소리와 풍경을 즐기는 일


* 돌체 파르 니엔테

모든 순간이 즐거움으로 가득한 달콤한 게으름. 그 순간을 즐기는 일이니, 시간을 허비한다고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없다. 그 시간은 이미 충만하기 때문이다. 행복은 아침에 마시는 커피 한 잔, 바닷가를 따라서 걷기, 가족이나 친구들을 만나는 일에 있다.


* 주아 드 비브르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기뻐할 이유다. 움직이고, 보고, 햇살의 따스함이나 친구의 손길을 느낄 수 있는 기회를 가진 것에 감사하는 마음


* 에코타

이른 아침의 뻐꾸기 소리. 새가 지저귀는 소리를 들으려고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것


* 이키가이

매일 아침 당신을 눈뜨게 하는 삶의 의미


- < 당신의 마음에 이름을 붙인다면> 마리야 이바시키나 (지은이),김지은 (옮긴이)책읽는곰


자연 속의 풍경으로 걸어들어가 하나가 되는 행위는 나에게 '메라키'이다. 걷기와 풍경에 깊이 녹아들어가 진심과 영혼을 쏟아붓는 상태가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동시에 '볼타'이고 '돌체 파르 니엔테'이다. 목적없이 발길 닿는대로 걸으면서 소리와 풍경을 즐기다 보면 그 순간이 즐거움으로 가득한 충만한 시간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걷기는 나에게 '주아 드 비브르'를 느끼게 한다. 두 다리를 움직여 걷고, 풍경을 보고, 눈의 시원함을 느끼며 살아있다는 것에 기뻐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걷기는 매일 아침 나의 눈을 뜨게 하는 삶의 의미, '이키가이'이다.


보석같은 그림책을 마음에 담고 돌아오는 길에는 재즈앨범 하나를 들었다.



오스카 페터슨 트리오의 <We Get Request>

집에서 가만히 앉아 재즈 앨범을 듣다보면 잠들어버리는데 걸으면서 재즈앨범을 들으면 신기하게도 산책이 더 즐거워지고 음악이 잘 들린다. 앞으로 할머니가 될때까지 들을 수많은 앨범들을 생각하면 곳간에 쌀을 아둔것처럼 든든하고 행복하다.


산책, 그림책, 음악, 그리고 눈이 내리는 풍경. 매일 아침 나를 눈뜨게 하는 삶의 의미는 이런 사소한 것들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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