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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간 수집가 Jan 04. 2024

제주 보름살기를 시작하다

이중섭 미술관, 작가의 산책길, 기당미술관, 올레길 7코스

2024년 1월 3일 수요일     


제주 보름 살기의 본격적인 첫날, 비예보가 있었다. 원래는 한라산 둘레길을 걸을 예정이었다. 그러나 일정을 변경하여 다른 날 가려고 했던 이중섭 미술관, 작가의 산책길, 그리고 기당미술관에 다녀오기로 했다.     

어제 방과 침대가 너무 좁고 작아 자고 일어났더니 왼쪽 어깨가 결렸다. 살짝 두통기가 있었지만 약을 일부러 먹지 않고 요가와 스트레칭을 했다. 명상하고 감사일기를 쓰고 글쓰기를 하고 요가까지 했다. 여행지에서도 나는 2024년의 목표이자 1월의 습관 목표인 명상하기, 글쓰기, 요가하기, 돈공부 등을 실천한다. 그것이 여행만 하는 것보다 더 단단한 여행을 만들준다. 일상을 살 듯 여행하고, 여행하듯 일상을 사는 것이 내가 꿈꾸는 단단한 삶이기 때문이다.      


단단한 삶이란 뿌리깊은 삶을 말한다. 명상하며 나의 호흡을 알아차리고, 글을 쓰며 눈와 마음을 깨끗이 닦는다. 요가하며 나의 몸을 소중하게 돌보고, 공부하며 세상과의 연결을 도모한다. 여행지에서든 어떤 상황에서든 반드시 하고야 마는 자신만의 루틴이 있다는 것은 여행에 휩쓸려 나 자신을 잃어버리는 일 없이 나 자신의 뿌리를 세우는 일이다.     

루틴을 마치고 호텔을 나가기 전 로비에 가 룸업그레이드를 부탁드렸다. 추가 요금이 발생하더라도 깨끗하고 건강하게 회복된 몸으로 여행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돈의 숫자가 아니라 내가 얻고자 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     


3시에 새로운 방으로 짐을 옮기기로 하고 호텔을 나와 이중섭 미술관으로 향했다. 화가 이중섭은 교과서의 소 그림으로 유명하지만 나는 그의 편지가 더 기억에 남는 화가다. 어떤 전시에서 이중섭이 아내와 아이들에게 보낸 애틋한 편지를 본 적이 있는데 그 내용이 너무나 순수하고 애절하며, 사랑과 그리움이 가득하였기 때문이다.      






이중섭은 1916년 평남 평원군에서 태어나 1937년 일본 동경 문화학원으로 유학을 떠났다. 귀국후 그곳에서 만나 사귀던 야마모토 마사코가 1945년 한국으로 그를 찾아와 결혼했고 아내에게 ‘이남덕’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1948년에 아들 태현이, 1949년 차남 태성이 태어났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해 1951년 1월 부인과 아들을 데리고 서귀포로 피난 와 살다 1952년 부인과 아들을 일본으로 떠나보내고 부두노동 등으로 생계를 이어가며 작품활동을 하였다.

      

“귀여운 나의 천사, 남덕

구촌의 가슴에 포근하게 안겨 따뜻하고 따뜻한 입맞춤을 몇 번이고 길고 길게 오래오래 받아주오. 

오늘은 스케치하기에 안성맞춤인 벚꽃 철의 흐린 날이오. 스케치하러 나가기 전에 귀여운 당신이 그리워 설레는 마음으로 폴 발레리의 시와 폴 베를렌느의 시를 적어 보내오. 몸조리 하면서 읽어 보기 바라오. 

멋진 당신의 전부에게 꽃망울처럼 봉긋한 발가락 군처럼 부풀은 긴 입맞춤을 보내오.

훌륭하고 귀여운 나의 사랑이여, 받아주오.

현이와 성이에게 뽀뽀를 전해주십시오.

또 편지 주기 바라오."

*구촌은 이중섭의 호이고, 발가락군은 이중섭 부인의 애칭이다.     


일본에 있는 부인과 아들을 그리워하며 썼을 편지에 그의 사랑과 서글픔이 절절하게 느껴진다.      


”예술은 끝없는 사랑의 표현이라오. 진정한 사랑으로 가득 찰 때 비로소 마음은 순수와 청정에 이를 수 있는 것이지요.

...마음의 거울이 맑아져야 비로소 우주의 모든 것이 바르게 마음에 비치는 것이오. 한없이 소중한 남덕만을 사랑하고, 사랑하고, 사랑하고, 또 사랑하고 열애하여 두 사람의 맑은 마음에 비친 인생의 도리를 참으로 새롭게 제작 표현하면 되는 것이오.“     





그의 그림들 특히 아이들이나 게, 복숭아, 서로 엉켜있는 가족의 행복한 모습, 새와 꽃 등을 보고 있으면 그 맑은 마음과 순수한 사랑이 있는 그대로 느껴진다. 그래서 그림을 분석하고 뜻을 헤아리며 머리를 써가며 그림을 해석하려는 노력 자체를 하지 않게 된다. 그냥 그의 순수한 사랑이 청정하고 맑은 마음이 있는 그대로 느껴져 가만히 보게 된다. 





그가 아내와 아들을 사랑하고 열애하는 맑은 마음으로 세상에 대한 우주에 대한 끝없는 사랑을 표현한 것이 바로 그의 그림이자 그의 예술세계였다. 진정한 사랑, 순수한 사랑, 청정하고 맑은 마음. 그런 것들이 귀하게 된 지금, 그리고 나조차도 그런 마음이 어떤 마음이었는지를 잊어버린 지금 이중섭의 그 마음이 참 귀하고, 소중하며 애특하다. 마음의 거울을 닦듯 그림을 그리고, 그 안에 자신의 마음에 비친 우주를 표현하고자 했던 화가 이중섭. 그의 그림에 나는 사랑에 빠졌다. 그리고 그처럼 순수한 마음으로 청정하게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마음의 거울을 맑게 닦고, 우주의 모든 것을 바르게 그 마음에 비칠 수 있도록 하자. 그리고 사랑으로 살자. 순수하고 청정하게 모든 것을 품어주는 그의 그림처럼. 




기념품 샵의 그의 그림들 중 하나를 사서 방에 걸어놓고, 항상 보며, 그 마음을 되새기고 싶어 여러 가지를 둘러보고, 도록을 보았다. 엽서, 그림, 액자, 손수건, 수첩 등 다양한 기념품들이 있었다. 언젠가 그의 다른 그림들이 소장되어있는 미술관들을 모두 돌아보고 싶다. 






이중섭 미술관을 나와 작가의 산책길을 걸었다. 작가의 산책길은 서귀포에서 태어났거나 머물며 예술적 영감을 받았던 한국 미술계의 대표 예술가 3인 (이중섭, 현중화, 변시지)의 삶과 작품의 발자취를 따라 걷는 산책길이다. 이 길은 이중섭 미술관, 소암기념관, 기당미술관 등 주요 문화예술 시설을 둘러볼 수 있고, 원도심을 지나 서귀포의 자연, 문화, 역사를 두루 탐방할 수 있는 단일 방향의 두 코스(A, B)로 구성되어 있다. 그 중 나는 변시지 선생의 작품이 상설 전시되고 있는 기당미술관으로 가는 B 코스를 걸었다. 







이중섭 거주지와 샛기정 공원, 천지연기정길을 거쳐 서귀교를 건너고, 칠십리시 공원을 지나 기당미술관으로 향하는 길은 올레길과는 또 다른 맛이 있는 길이었다. 올레길은 올레꾼들과 여행자들의 길이라면 이 길은 주로 주민분들의 산책로와 운동장소로 널리 쓰이는 듯했다. 코스 중간중간에 미술 프로젝트를 통해 제작된 작가들의 작품 30여점이 배치되어 있어 눈도 즐거웠다. 나는 여행지에서도 유명한 관광지를 숨차게 도는 것보다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애용하는 산책길이나 골목길을 걷는 것이 더 좋다. 그 길에는 그곳 사람들의 체취와 숨소리가 있기 때문에 다정하고 따뜻하다. 관광지를 떠돌며 유령처럼 부유하는 관광객이 아니라 그곳에 오랫동안 살던 사람처럼 느리게 천천히 걷는 사람으로 여행하고 싶다. 작가의 산책길은 그런 바람을 만족시켜주는 사랑스러운 길이었다. 무엇보다 구름 모자 쓴 한라산을 보며 걸을 수 있다는 것은 이 길의 숨겨진 매력 중 하나이다.      






그리고 나는 기당 미술관에서 또 한명의 엄청난 화가 한명과 만나게 되었다. 바로 태풍의 화가 변시지이다. 그의 그림을 이 글을 쓰면서도 보고 또 보고 있지만, 여전히 뭐라고 설명할 수도 표현할 수도 없겠다. 그의 그림은 무언가를 보았고, 그것을 설명한다고 해서 그것을 알았다고 할 수 없는 것과 같다. 그의 그림은 그가 삶 전체를 바쳐서 표현하고자 했던 ‘그것’이 응축된 하나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무언가를 보고, 그것을 ‘안다’고 생각하며,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표현하거나 설명하지만 그것이 진짜 그것을 ‘안다’고 할 수 있을까? 

제주의 바람을 상징하는 거친 붓터치, 한국의 수묵화를 보는 듯한 검은 선의 매력, 강렬한 황금색과 원시자연의 생명이 느껴지는 제주화, 세계적이면서도 가장 한국적인 그림. 여러 가지 수식어로 그의 그림을 설명해보려고 하지만 그 시도는 이미 전제부터 틀렸다. 나는 그의 그림을 설명함으로써 그것을 ‘안다’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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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그림은 느끼고, 온 몸으로 받아들이며, 그냥 보게 된다. 그의 생애를 기록한 다큐멘터리를 보고, 그가 걸었던 길들을 따라 걸으며, 그의 말을 곰곰이 생각하며 온 몸으로 그림과 함께 대화해보는 것이다. 지팡이를 집고 구부정한 몸으로 황금빛 자연을 걷는 그림 속 주인공처럼 그렇게 그림 속의 ‘나’가 되어 보는 것이다.      

기당미술관 바로 옆에 있는 삼매봉 도서관 아래 위치한 삼매봉 153이라는 곳에서 생선 커틀렛을 먹고, 그가 걸었을 서귀포의 아름다운 자연 속 길을 걷기로 했다. 올레길 7코스 중 버스로 바로 갈 수 있는 서귀포여자고등학교에서 내려 법환포구를 거쳐 대평포구로 가는 길을 걸기로 했다.      








”제주의 매력은 순수하고 단순하며 깊은 원시에의 향수이다. 바다의 약동하는 생명감은 나의 창작 활동의 근원이며, 자연의 생이야말로 무한하고 영원한 우리의 꿈이다. 나로서 허용되는 것은 자연 속에서 묵묵히 생활하며 자연에 감동하고 생각하며 조형활동을 하는 것이다.“


변시지 <예술과 풍토> 중 ”자연미와 예술충동“ 중에서     



(제주도에 간다면 꼭 추천하고 싶은 기당미술관)
미술관 바로 앞 삼매봉 153 식당에서 먹은 생선 커틀렛



순수하고 단순하며 깊은 원시의 생명을 담고 있는 제주의 자연. 그 자연 속에서 묵묵히 걸으며 그림을 그렸던 화가 변시지. 그의 그림들을 보면서 내가 제주의 자연에서 느꼈던 감동을 생각해본다. 자연이 나에게 주는 감동은 나를 걷기 여행으로 이끌었고, 이렇게 글쓰기로 안내했다. 그 감동을 표현하고 싶어서 화가가 붓을 들 듯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 글쓰기가 어디로 이어질지 모르겠지만 분명한 건 화가는 붓을 들고자 결심했기 때문에 그림을 그리게 된 것이 아니라 붓을 들 수 밖에 없었기 때문에 그림을 그리게 된 것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나 또한 글을 쓸 수밖에 없게 만드는 우주와 자연의 아름다움, 감동과 사랑을 여행을 통해, 그리고 삶을 통해 경험하고 싶다.



기당미술관 가는 길 구름모자 쓴 한라산



이중섭이 살았던 1.4평 정도의 조그만 방




<올레길 7코스 (서귀포여자고등학교~대평포구) 걷던 중 마주친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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