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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간 수집가 Jan 05. 2024

영혼을 치유하는 숲, 제주 소울 플레이스 NO.1

서귀포 치유의 숲, 홈플러스 장보기

1월 4일 목요일     


제주 보름살기 첫째날, 점심에는 생선 커틀렛을 먹고, 저녁에는 전주 콩나물국밥을 먹었다. 나는 육고기를 먹지 않기 때문에 여행지에서의 식사는 조금 번거롭고 힘들게 느껴진다. 거의 대부분이 육고기 요리를 제공하는 것이고, 간이 세거나 조미료를 사용해 자극적이다. 나는 집에서 일상행활을 할 때도 외식이나 배달음식을 먹지 않는다. 주말에 약속이 있을 경우를 제외하고는 일터에서도 도시락을 가지고 다니고 저녁도 직접 만들어 먹는다. 그 이유는 나의 몸을 위해서다.      

고기를 먹고 가공 식품과 패스트 푸드 등을 즐기던 시절 나는 자주 아팠다. 일년에 한번은 반드시 감기를 앓았고, 장염이나 크고 작은 질병 때문에 병원에 간적도 많았다. 그래서 나의 몸에 대해 공부하게 되었고, 비건에 대한 책을 읽으면서 자연식물식이나 음식의 중요성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고기와 가공식품을 끊게 되었다. 내가 아무 생각없이 먹었던 것들이 그동안 내 몸을 망치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나니 더 이상 그것들을 맛있다는 이유로 먹을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나의 몸은 건강하게 다시 태어난 것처럼 더 이상 아프지 않게 되었다. 일년에 한번씩 앓던 감기도 걸리지 않고, 장염이나 소화기 관련 질병들이 없어지게 되었다.     

그랬는데 역시 나의 몸은 깨끗하고 건강한 음식에 길들여져 있었나보다. 여행지에서 외식을 하자마자 탈이 난 것이다. 극심한 복통에 시달리며 첫날을 보내고 나니 더 이상 외식을 하지 않아야겠다고 결심하게 되었다. 그래서 오늘의 첫 목적지인 서귀포 치유의 숲을 트레킹하고, 마트에 들러 이곳에서 머무를 동안 먹을 식사 재료를 장보기로 했다. 부엌이나 조리도구 없이도 호텔에서 간단하고 건강하게 먹을 수 있는 채식인의 식사를 만드는 데 필요한 재료들을 수첩에 적었다.     

“그래, 오늘은 트레킹을 하며 숲의 기운을 받아 몸을 치유하는 것, 그리고 몸을 생각한 건강한 먹거리를 장보는 것이 목표다!”     


그렇게 원래의 일정이었던 올레길 걷기를 다음으로 미루고 다른 날 가기로 해던 ‘서귀포 치유의 숲’을 먼저 찾게 되었다. 서귀포 치유의 숲은 서귀포시 호근동에 위치한 곳으로 자율탐방과 산림치유 프로그램, 산림휴양해설사와 동행하며 숲길을 걷는 프로그램 등이 있다. 숲속의 집(자연휴양림 숙소)이 있어서 머물면서 숲을 천천히 느낄 수도 있다. 또한 홈페이지를 통해 사전예약을 해서, 시간대별로 인원을 제한하고 있다.     

숙소 바로 앞에서 625번 버스를 타고 도착한 치유의 숲에 매표소에서 이름을 말하고 숲으로 들어섰다. 안내도를 보니 10개가 넘는 다양한 길들이 거미줄처럼 얽혀있었다. 노고록 무장애나눔길, 가멍오멍 숲길, 가베또롱 치유숲길, 벤조롱 치유숲길, 숨비소리 치유숲길 등 총 18km 에 달하는 다양한 길들을 걸으며 숲속을 걸을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기분이 좋아졌다.   



   


“숲에 가서 그 기운을 흠뻑 마셔라. 햇빛이 나무사이로 흘러 들어오는 것과 같이 자연의 평화가 우리에게 흘러 들어올 것이다. 바람이 신선함을 그리고 에너지와 열정을 우리에게 선사할 것이다. 걱정은 낙엽과 같이 떨어질 것이다.”  

 - 존 뮤어     




서귀포 치유의 숲은 열부하가 적고 맑고 신선한 공기가 존재하는 해발 320m~760m에 위치하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공기의 맛이 다르다. 달고 깨끗한 공기를 맘껏 들이마시니 굳었던 몸이 풀리고 아팠던 배가 조금씩 치유되는 느낌이다. 오감을 자극하는 다양한 숲의 향기와 마음의 평화를 주는 새소리들이 산책을 더욱 풍요롭게 해준다. 또한 이곳에서는 옛 사람들이 살았던 삶의 숨결, 돌담, 숯가마, 목장 등의 터를 볼 수도 있어 의미있는 곳이다.     


첫 번째로 걸은 길은 노고록 무장애나눔길이다. 이 길은 장애인, 임산부, 노약자, 어린이 등 보행약자를 배려하여 누구나 쉽게 숲을 찾아와 편안히 즐길 수 있도록 조성한 숲길이다. 중간에 맨발벋기를 할 수 있는 길도 있고, 편안하게 걸을 수 있는 데크길로 되어있다. 







중간에 빠져나와 가멍오멍 숲길로 합류했다. 이 길에는 쉼팡(쉬는 곳)이 중간중간 있어 나무의자에 누워 하늘과 나무를 느끼며 숲을 더 가까이 느낄 수 있는 길이다. 나도 나무의자에 누워 온 몸을 숲에 맡기고 숲 멍에 빠져보았다. 숲 속에는 오직 새소리와 나의 숨소리만 존재한다. 그래서 머리를 어지럽히는 생각이 썰물처럼 밀려나가고, 순수한 살아있음만이 느껴진다. 가만히 누워 숲을 온전히 만나는 시간, 이 시간이 좋아 나는 제주를 매년 찾았다. 그리고 2024년을 보름살기로 시작하게 되었다.      





제주로 나를 이끌게 한 매력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자연이다. 올레길과 한라산의 크고작은 숲들을 걸으며 나는 새로운 세상에 눈뜨게 되었다. 아니 어쩌면 그 세상은 원래 내가 살던 곳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아주 오랫동안 그곳을 떠나 사회적 의무를 다하고 살다보니 잊어버렸을 뿐, 원래 나는 그곳에서 나와 그곳으로 돌아가는 존재였다. 원시의 생명력인 자연. 그 자연 안에서 나는 행복과 평화, 말할 수 없는 기쁨과 놀라움을 느꼈다.      

그리고 원시의 생명력에 나를 맡기고 자연처럼 살고 싶다고 느끼게 되었다. 생각은 꼭 필요할 때만 하고, 몸으로, 영혼으로 직감대로 자연처럼 살고 싶다고 결심하게 되었다. 그리고 숲에서 걷는 동안에는 그런 삶을 살 수 있게 된다. 제주의 바다도 사랑하고, 올레길도 사랑하지만 가장 사랑하는 것은 역시 제주의 숲이다. 제주의 숲을 걷다보면 나 또한 이 키 크고 거대한 나무 무리들 속의 하나가 되어 이 자연을 이루고 있는 하나이자 전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덧없는 욕망과 쓸데없는 감정들이 다 깨끗이 씻겨나가고 말간 얼굴을 하고, 순수한 눈을 한 나를 만나게 된다.     




가멍오멍 숲길을 지나 가베또롱 치유숲길로 들어섰다. 가베또롱은 가뿐한, 가벼운 이라는 의미의 제주어이다. 이 길은 잣성(화산돌로 쌓아 올린 담)을 옆에 두고 따라 걸으며 제주를 더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는 숲길이다. 소담하고, 아기자기한 맛이 있는 길이었다. 그리고 이 길은 놀멍 치유숲길로 이어지고 약간의 경사도 있는 오르막기을 걸으면 시오름을 만날 수도 있다. 시오름에서는 한라산 꼭대기를 볼 수 있었다. 느긋하고 늠름하게 제자리를 지키고 서 있는 한라산. 한라산을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온 마음이 푸근해진다. 세상사 아무것도 서두를 것 없고, 그냥 편안하게 마음가는대로 하고 싶은대로 살라고 말해주는 것 같다. 그래도 큰일 일어나지 않으니 그냥 그렇게 살라고. 






시오름을 보고 이제 숲을 내려가는 길이다. 버스배차가 자주 있지 않아 1시 30분 버스를 놓치면 4시 버스를 타야했다. 그래서 어떤 길로 갈지 고민하다 하늘바라기 치유숲길로 방향을 잡았다. 이 길은 푹신하고 완만한 경사로로 낙엽수림과 삼나무, 편백나무 숲의 다양한 경관을 느낄 수 있는 숲길이다. 나무들의 키가 매우 커서 저절로 고개를 들어 하늘바라기를 하게 되는 길이기도 하다. 제주에 와서 나는 자주 하늘과 구름을, 햇살에 부서지는 나뭇잎과, 바람에 흔들리며 사사삭 소리내는 가지들을 자주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들을 보는 순간, 그 순간 나는 무언가 말로 설명하기 힘든 감정을 느낀다. 

처음에는 그저 아름답다라고 느꼈고, 계속 그것을 보고 관찰하면서 그것이 단순히 아름다운 것이라기보다는 나의 본성 그 자체라는 것이 느껴졌다. 마치 원래의 고향으로 돌아온 듯한 느낌. 내가 원래 있어야 할 곳에 돌아온 듯한 감정. 아무것도 애쓰지 않고, 노력하지 않아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기분. 아니 그냥 ‘나’라는 것 자체가 없어지는 느낌이었다. 그렇다. ‘나’를 부여잡고 살때는 몰랐던 평화로움이 그 순간에는 온 몸으로 느껴졌다. ‘나’가 없어질 때 느끼는 그 홀가분함, 가벼움, 날아오를 것 같은 느낌을 무어라고 설명해야 할까. 살면서 좀처럼 느끼기 힘들었던 그 느낌. 그 느낌이 너무 좋아 나는 숲을 걷고, 하늘을 바라보고, 나무를 바라본다. 그리고 ‘나’는 없어지고, 자유만이 남는다. 




   



하늘바라길 치유숲길을 지나 숨비소리길을 거쳐 다시 무장애나눔 데크길을 지나 입구로 돌아왔다. 마지막에는 버스시간을 생각해서 조금 빠른 속도로 걸었는데, 내리막길이 데크길이라 편하고 좋았다. 중간에는 고라니를 만나기도 했다. 다음에는 도시락을 싸와 천천히 음악도 듣고, 숲을 온전히 느끼며 느긋하게 있다가 4시 막차를 타고 나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길을 나누고, 그 길들에 이름을 붙이니 걷는 맛이 좋았던 서귀포 치유의 숲. 이것으로 또 나의 제주 소울 플레이스 리스트에 또 하나의 장소가 추가되었다. 보름살기가 끝나면 각각의 장소에 순위를 매겨 리스트를 새롭게 만들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숲속의 맑은 공기와 햇빛, 비타민을 잔뜩 흡수하고 호텔로 돌아와 홈플러스에서 장 본 건강한 음식으로 몸을 채웠다. 생각을 버리고 ‘나’를 버리고 몸으로 그리고 영혼으로 자연처럼 자유롭게, 홀가분하고 가볍게 삶을 살자고 다짐하며 달게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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