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대한 이유없는 불안감이 사라졌다

by 여행하는 그리니
l9788985961851.jpg <지금 여기 깨어있기>, 법륜 스님 지음, 정토출판


우리는 모래성 위에 성을 쌓은 것처럼 불안정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자기 인생에 대한 어떤 확신도 없이 그저 가을바람에 휘날리는 낙엽처럼 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인생을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의해 살아지고 있기 때문에 인생이 꿈처럼 허망하고 뒤죽박죽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순간순간 미혹해서 전도 몽상이 일어납니다. 마치 허공의 헛꽃을 보듯, 꿈에서 환영을 보듯, 없는데도 있는 것처럼 허깨비들을 봅니다. 그렇기 때문에 늘 깨어있어야 합니다. 마치 바다에 파도가 일듯 경계에 부딪힐 때마다 늘 갖가지 느낌과 생각이 일어남을 그때그때 알아차려야 합니다. 그래야 그 파도에 휩쓸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 일어난 모든 일은 단지 하나의 사건입니다. 일어난 일이 애초부터 재앙이나 복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재앙으로 만드느냐 복으로 만드느냐는 자신에게 달렸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일어나는 많은 사건을 다 재앙으로 만들어요. "아이고, 내 팔자야.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서 이럴까?"라고 아우성치지만 사실은 전부 자기가 만든 재앙이에요. 그런데 이것을 탁 뒤집으면 모든 것이 복이 됩니다. 이렇게 자기가 자기를 복되고 아름답게 가꾸어 나가는 것이 불법이에요. 불교는 사주팔자를 따라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사주팔자를 고치는 것입니다. 운명을 바꾸는 것이지요.


우리는 이름이나 지위, 행색, 경력을 가지고 상대를 평가합니다. 모든 것이 무아이고 무상임을, 공임을, 텅 빈 것임을, 잠시 머물다가 곧 사라져 버리는 신기루 같은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속지 않고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되지 않는 가운데서도 정신을 차리고, 속는 가운데서도 속는 줄을 알아야 합니다. 적어요, '아, 내가 속았구나.' 하고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 <지금 여기 깨어있기> 법륜스님 지음, 정토출판


언제부터인가 이유 없는 삶의 불안함을 느끼던 내가 사라졌다. 과거에는 이따금씩 미래의 내가 어떻게 될지, 나를 위협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나의 외부에 있는 위험요소들을 해결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등의 정확하게 설명할 수 없는 흐릿한 불안감이 불현듯 떠오를 때가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불안감이 생겨도, 알아차리고 직시하게 되었다. 감정이나 생각이 일어났다 사라지는 것을 그냥 있는 그대로 바라보게 되었다.


숨을 들이쉬고 내쉰다.


모든 것이 무아이고 무상이며 공임을, 텅 빈 것임을, 잠시 머물다가 곧 사라져 버리는 신기루 같은 것임을 다시 나에게 일깨운다. 지금 이 불안한 마음도 신기루 같은 것이고, 그런 마음이 일어나는 '나'라는 존재도 사실은 없다. 텅 빈 것이다. 그런데 거기에 불안함을 느낄 필요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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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삶이 가벼워졌다. 그 모든 불안함과 의무, 기대, 욕망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라고 하는 거대한 자아에 대한 환상이 사라졌다. '나'가 사라지니 거기에는 엄청난 자유로움, 텅 빈 평화만이 남았다. '나'가 없으니 누군가와 비교하고 열등감이나 질투, 우월감을 허망한 것들에 휩쓸리지 않는다. '나'가 없으니 세상의 기준에 맞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할 필요도 없다. 그냥 살고 싶은 대로 자유롭게 살면 된다. '나'가 없으니 심각하게 문제를 고민하고 미래의 '나'에 대해 허깨비 같은 망상과 불안감을 느낄 필요도 없다. 그냥 여기 이렇게 숨을 들이쉬고 내쉬며 있는 그대로 그냥 존재하면 된다. 그냥 여기 존재하기. 그게 전부이다.


'나'라고 하는 존재는 이 지구별에 잠시 놀러 온 무아이고 무상이다. 거기에는 아무런 의무나 정답, 운명이 없다. 다만 내가 착각해서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고 스스로 잡다한 의무를 만들어내고, 정답이 있다고 생각하거나 운명이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텅 빈 것에 이것을 갖다 붙이면 이것이 되고, 저것을 갖다 붙이면 저것이 된다. 그게 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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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주팔자를 따라서 사는 것이 아니라 사주팔자를 고쳐 운명을 바꾸는 것은 내가 애초에 텅 빈 무아, 공, 무아 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러므로 살고 싶은 대로 살면 된다. 어딘가에 내 운명이 적힌 책 같은 것은 없다. 그 책을 쓰는 것을 내가 하는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일은 단지 하나의 사건일 뿐, 내 운명의 수레바퀴에 의해 벌어지는 재앙이나 복이 아니다. 그것을 재앙으로 또는 복으로 만드는 것은 자기 자신에게 달렸다.

재앙을 복으로 만들고, 무아인 자신을 복되고 아름답게 가꾸어 나가는 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이다. 무슨 일이 일어나도 다 좋다.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 모든 것이 복이니 나의 운명은 내가 만든다.


잠시 지구별에 태어나 이곳에서의 삶을 재미있게 즐기고, 살아있음의 기쁨과 삶의 아름다움을 감사하게 누리는 것. 그것이 '나'라고 하는 무상, 무아, 공이 여기 있는 이유이다. '나'는 물론이고 모든 것이 무아이고, 무상이며, 공이고, 텅 빈 것임을, 잠시 머물다가 곧 사라져 버리는 신기루 같은 것임을 기억하자. 늘 깨어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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