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가 가르쳐준 가장 값진 배움

by 최정미의 뇌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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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무렵, 일본 무샤 교수님의 Brain Function Laboratory에 공동 연구를 하러 간 적이 있습니다.

그곳은 당시 과학동아에도 소개될 만큼 이름난 뇌기능 연구소였고, 어렸던 저에게는 정말 선망의 대상이었어요.


러시아 과학자들까지 함께 모여 전극 위치를 레이저로 정밀하게 맞추고, 공간이 다른 사람들 간의 뇌 동기화 현상을 연구하시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한데요. 그때는 낯설은 주제여서 솔직히 ‘초능력 연구’처럼 느껴질 정도였죠. 하여간 그곳은 말 그대로 ‘두뇌의 우주’를 탐구하는 현장이었습니다.


저는 그곳에서 치매 관련 뇌파 데이터를 분석하며, 조기 예측이 가능한 특징 지표들을 몇 가지 찾아냈습니다.

매일 결과를 보고하며 느꼈던 성취감은 아직도 생생해요.하지만 연구가 끝나는 날, 빈손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데이터는 그들의 것이니, 어떤 성과도 가져갈 수 없다는 그 한마디에 마음이 서늘해졌습니다. 그땐 몰랐어요. 진짜로 중요한 것은 결과보다 데이터의 주권과 신뢰성이라는 걸요.


무샤교수.jpeg Toshimitsu Musha (Professor, Director of Brain Functions Laboratory, Inc.) and Alexander Kaplan


그 후로 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저는 수많은 공동연구를 이어오며 다양한 사람들의 뇌를 들여다봤습니다.

정신질환, 신경질환, 인지 변화, 감정, 수면, 명상, 약물 반응까지... 그 모든 순간마다 ‘깨끗한 데이터’를 얻기 위해 실험 설계를 바꾸고, 환경을 통제하며, 사람들의 상태를 꼼꼼히 관찰했어요.


그렇게 쌓인 신호들이 모여 지금은 한국형 뇌 데이터 코호트로 발전했으며, 그 안에서 한국인 뇌노화 표준화 및 치매와 섬망 조기 예측, 인지/ 정서 지표 등을 찾아내 특허로 발전시킬 수 있었네요. 이런 뇌건강 예측/예방 기술이 일부 전문가나 기관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일반 사람들도 손쉽게 활용할 수 있는 공공적 뇌건강 플랫폼이 되길 꿈꾸며 지금도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습니다.


이 모든 여정을 지나며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브레인케어와 같은 헬스케어 분야에서는 아무리 AI 알고리즘이 발달해도, ‘깨끗하고 정직하게 확보된 데이터’가 없으면 그건 허수아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요.


헬스케어 AI의 경쟁력은 기술이 아니라 데이터에서 시작됩니다. 한국이 이 분야에서 앞서 나가기 위한 길 또한,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데이터를 정직하게 쌓아가며 그 힘을 키워내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시간이 흘러서야 비로소 깨달았어요.

그때 일본에서 빈손으로 돌아오던 저는, 사실 ‘가장 값진 배움’을 손에 쥐고 돌아왔다는 걸요.


오늘도 행복하세요.




“과학으로 세상을 밝힙니다. 최정미의 뇌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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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http://brain.bio.msu.ru/kapl_photo/bci_album3.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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