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다른 아이들에게는 없는 훌륭한 장점이 있단다. 이 세상에는 너 만이 감당할 수 있는 일이 너를 기다리고 있어.”
피아니스트인 아인슈타인의 어머니는 아들이 여섯 살 때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가르쳤다. 처음에 그는 배우기 싫어해 1년쯤 배우다가 그만두었다.
이때 어머니는 강요하지 않았다.
몇 년 뒤 그는 다시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했다. 자신이 원해서 다시 시작했기에 최선을 다했다. 그는 어느 날 음악이 수학적 구조로 되어있음을 깨달았다. 그는 혼자서 깨닫는 것이 진정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인슈타인은 대학 성적이 좋지 않아 취직이 힘들었다. 보험 회사에 취직했다가 해고당한 뒤 물리학 가정교사를 하기 위해 신문 광고를 냈다.
그 이후 친구 아버지의 도움으로 스위스 특허청에 취직했다. 직장 상사로부터 ‘논리학’에 근거한 사고 훈련을 받았다. 이에 자극받은 아인슈타인은 퇴근 후 토론에 열중했다. 토론으로 단련된 그의 연구에 상상력이 더해졌다. 26세의 아인슈타인은 독일 물리학 연보에 논문 다섯 편을 연달아 발표했다.
나는 초보 부모이다. 공교롭게 주변 친구들도 거의 미혼인 데다 육아에 대한 조언을 구할 곳도 마땅치 않다.
8살 때부터 단짝인 친구의 어린 시절은 늘 나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초등학생 때부터 전교 1등은 늘 그녀 차지였다. 그녀는 정상 탈환을 위해 노력한 적이 없었다. 그저 공부가 가장 즐거웠을 뿐이다. 책상머리에서 엄청 발버둥 쳐서 간신히 중간 정도의 성적을 유지하는 나에게 그녀는 외계인이었다. 그녀는 내가 만화책을 보듯 수학 문제집을 가볍게 풀어 넘겼다. 그녀의 책은 몇 년이 지나도 새 책이었던 나의 수학 문제집과 상태가 많이 달랐다. 그녀는 넝마가 된 책을 들고 전등을 고치고 있던 아버지에게 다가간다.
“아빠. 나 이거 다 풀었는데. 다른 출판사 걸로 새 거 하나만 사 줘.”
“뭐? 아이고... 그걸 어떻게 매번 사니. 지우고 다시 풀어.”
그녀는 묵묵히 책상으로 돌아와 문제집을 펴고 지우개를 들었다. 종이에 자국이 남을까 봐 살살 필기한 연필 자국을 첫 장부터 지워나갔다. 나는 이 충격적인 광경을 아무 말 없이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예상과 같이 끊임없이 공부를 해야 하는 직업을 택했다.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나 아기 키우는 게 너무 막막해 친구야. 어떻게 해야 좋은 부모가 되는지도 모르겠고.”
“걱정 마. 아기는 네가 모르는 새에도 열심히 자라고 있어.”
“너는 어릴 때 말이야. 부모님이 너에게 했던 행동 중에 혹시 서운했던 게 있니?”
“난... 엄마가 내가 그려놓은 그림에 덧칠을 했던 게 너무너무 서운했어. 내가 그린 그림에 덧칠을 하다니... 그날 엄청 울었던 기억이 나.”
생각지 못했던 대답이었다. 그녀는 아마도 자신의 작품에 대한 정체성을 지켜내고 싶은 것이었으리라. 나는 그녀의 대답을 항상 곱씹으며 내 아이가 펜을 들어 그림을 그릴 때 쳐다보지 않으려 노력한다. 아이가 그림을 그릴 때 “와 ~ 우리 아기가 ~ ” 하고 아는 척을 하는 순간 아기는 부끄러워하며 멀리 내뺀다. 내가 잠시 핸드폰을 보거나 컴퓨터를 할 때 아기는 숨겨놓은 펜을 꺼내 와서 온 벽에 그림을 그렸다. 순간 말문이 막혔지만 도배는 이사 갈 때 하는 것으로 다짐하고 숨을 고르며 작품을 감상했다.
대부분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지만, 아기는 나의 평가를 받기 위해 그림을 그린 것이 아니라 단지 자신만의 우주를 표현한 것뿐이다. 나는 아기의 작품에 대해 어떤 코멘트도, 덧칠도 하지 않기로 했다. 그저 아기가 도화지가 아닌 벽지에 사인펜을 들고 과감하게 자신의 선을 그려나간 용기를 칭찬해주기로 했다. (집 밖에선 그리면 안 돼)
아인슈타인은 “상상력은 지식보다 중요하다. 지식에는 한계가 있지만 상상력은 세상을 감싼다.”라고 말했다.
창조란 상상력을 통해 기존에 없던 것을 새롭게 만들어내는 것이다. 상상력은 꿈을 가장 아름답게 꾸며주는 최고의 옷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