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보다 소중한 신뢰

오늘도 하루치의 신뢰를 쌓는다

by 열매한아름

사랑보다 소중한 것이 신뢰라는 것을

연애를 해볼수록, 나이가 들 수록 느낀다.


오래 가는 연인들의 특징일 수도 있겠다.

서로에 대한 신뢰가 두텁다는 것.


육체의 호르몬도 사랑이라는 불타는 감정에

유효기간을 두었다.

잔인하게도.


상대의 외모나 몸매를 보고 두근거린다거나

쳐다만 봐도 황홀하다거나

함께 있는 것만으로 두근거리는 그 감정은

얼마 가지 않는다는 걸 ..

우리는 우리보다 앞서 살아간 어른들에게

가까이서, 책을 통해, TV를 통해 숱하게 보고 또 들어왔다.


갈수록 이혼이 쉬워지는 세상이다.

우리 예비 시어머님이 귀에 못이 박히도록 얘기해주시기를...

"연애할 때는 몰랐던 단점들을 결혼하고 나면 알게 될텐데

그 때 가서 '사기 당했다'고 생각하면 안된다.

서로 참기 힘들고 어려운 일들이 있을텐데,

우리 세대는 어떻게든 참고 살았는데 요즘 세대는 또 안 그렇잖니.

그래도 너희는 한 발씩 양보하면서 잘 견디며 살아야 한다. 알겠니?"


우리 할머님이 말씀하시기를

"여자는 한 번 시집 가면 죽기 전에는 나오면 안되는 법이라!

살아서는 나오면 안돼"


'이런 구시대적인 발상을!' 싶은 말이지만..

할머니의 삶을 보면.. 그 한 마디의 말에 무게가 느껴진다.


일제 시대에 부모님을 잃고

'섬진강 물은 변해도 당신을 향한 내 마음은 안 변하오' 하던 남자에게 시집왔더니

멀리 가서 딴 살림 차려버리고

할머니는 시댁 식구들, 어른들 모시고 생고생 하며

아들 딸 3남매 혼자 키워 이제 여든이 되셨다.


할머니는 덧붙여 말씀하셨었다.

"내가 만약에 그 때 힘들어서 도망 갔었어봐라..

지금 너희 할머니로, 우리 자식들한테 엄마로 당당하게 앉아있을 수가 없지..

난 엄마도 할머니도 될 수 없는거라.."


요즘 세대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 땐, 살기 위해 버텼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여자들도 혼자 힘으로 먹고 살 수 있는 세대.

누가 참고 살겠는가.

하지만 할머니 말씀에 동감하는 것은...

이혼이라는 것, 헤어짐이라는 것은 결국 내가 당당하게 설 자리를 영영 잃어버리게 된다는 것..


그래서 나는 더더욱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

나무 같은 사람.

흔들리지 않는 사람.

내가 한 없이 흔들려도 그런 날 든든히 지켜줄 수 있는 사람.

난 그런 상황을 견뎌낼 자신이 없지만

내가 어떤 어려움도 견뎌낼 수 있도록 도와줄 사람이어야만 한다.


지금 내 옆에 있는 이 사람이 그런 사람이라고 지금은 믿고 있지만

처음 만났던 그 때는 믿을 수 없었다.


우리 사이에는 아무도 없었다.

소개 시켜준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

지역도 다르고,

친구가 있는 것도 아니고,

SNS도 안하는 이 남자에 대해 알 수 있는게 난 아무 것도 없었다.


그저 내가 쓴 글이 좋았던 그였고

나는 나이에 비해 순수하고 진실돼 보이는 그가 좋은 사람 같았지만...


날 향한 이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진실된지 난 알 수 없었다.

'사기꾼 아니야?'

'나랑 같이 있을 때는 나 만나고, 서울 가면 또 다른 여자가 있는 거 아닐까?'

'그렇지 않고서야 이 멀리 있는 나를 굳이 왜 선택해? 서울에도 좋은 여자들은 많을텐데 왜 굳이..'


온갖 불안함으로 가득하던 내게 그는 그저 '믿어달라'고만 했다.

그리고 신뢰라는 것은 서서히 쌓여가는 것이었다.

많은 산을 함께 넘으며 쌓여가는 것이었다.


일이 바빠져 연락이 뜸해진 그가 '변했다'고 생각하기도 했고

사랑한다는 말의 횟수가 줄어들었다고 '변했다'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일이 덜 바빠지니 다시 그는 한결같이 연락해주었고

사랑한다는 말은 좀 줄었어도 그가 여전히 날 사랑하고 있다는 걸

변함없이 느끼게 해주었다.


나는 여전히 의심이 많아서

'결혼하면 또 어떨지 모르지!'하고 그를 놀리지만

그는 나의 '만약에' 화법을 지독히도 싫어한다.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미리 걱정하는 습관 때문에

안해도 될 걱정과 불안에 떠는게 싫단다.


울산과 서울이라는 장거리 연애가 벌써 482일째인데

나를 불안에 떨지 않게 하는 건 그의 힘이다.

'한결같은'이라는 힘.


심하게 싸우면서도

나는 그를 떠나지 않을 것이고

그 또한 나를 떠나지 않을 것이기에

그렇게 서로 믿고 있기에

죽자고 덤벼들 수가 없다.

어떻게 풀어나갈지를 함께 고민할 수 있다.


이전의 연애는 그렇지 않았다.

상대방의 감정 기복 때문에 지쳤고,

연락을 잘 하지 않는 습관 때문에 늘 초조했으며,

상대의 마음을 알 수 없어 답답해했다.


그가 좋은 사람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예전의 나보다

지금의 내가 적어도 한 뼘은 더 자랐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기다리는게 죽도록 싫었던 나도

조금은 기다릴 수 있게 되었고,

생각나는대로 생기는 감정대로 뱉어내던 내가

그래도 한 번은 삼키고 하나씩 풀어낼 줄 알게 되었으니

우리의 연애가 이전보다는 조금 더 깊고 성숙해질 수 있게 된 것일지도...


나는 그의

몸도, 생각도, 마음도 사랑한다.

그의 넓은 어깨도 좋지만 조금은 두꺼운 허벅지도 사랑한다.

그의 어른스러움도 좋지만 때로는 섭섭하리만큼 지나치게 현실적인 면도 사랑할 수밖에 없다.

나는 그를 그렇게 사랑하지만

그 사랑만큼 더 많이 신뢰한다.


사람이라는 존재는 연약해서 언제 어떻게 무너질지 알 수 없지만

지금 이 순간은 믿는다.

그가 날 떠나지 않을 거라는걸

그가 지금도 날 많이 사랑하고 있다는걸 ...


그 믿음이 무너지지 않기를 오늘도 기도하며

오늘도 하루 치의 신뢰를 쌓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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