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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매한아름 Sep 27. 2016

추억의 힘

우리가 함께 하는 지금 이 순간을 가장 소중하게 

 이미 결혼한지 오래 된 어느 여사님(?)은 중매로 결혼을 하셨는데 연애 기간도 없이 급하게 결혼을 하셨다고 한다. 서로 사랑해서, 좋아서 결혼하게 된 것도 아니고 함께 데이트하며 쌓아온 추억이 없으니 힘들 때 떠올릴 것이 없더란다. 아무리 힘들어도 떠올릴만한 '좋았던 시절'이 있으면 견딜만 하단다. 추억의 힘이다. 우리가 지금 조금 불행하더라도 우리가 그저 행복했던 추억이 그 추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힘든 시기를 버틸 힘이 된다니. 

 

 식전 영상을 만들어야하니 연애 사진을 보내달라는 웨딩업체의 요청에 우리의 지난 사진들을 찾아보았다. 평소 "남는건 사진 밖에 없다!"는 모토로 나는 나름대로 사진을 많이 찍고 또 날짜별로 모아서 정리를 해두는 편이다. 그 사진들을 보면서 '우리 정말 행복한 추억이 참 많구나' 싶어 마음이 찡했다. 남자친구는 사진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사람이라 그가 찍어준 내 사진이 별로 없긴 하지만 그래도 셀카 찍는다고 카메라를 들이대면 멋쩍어하기만 하던 그가 갈수록 자연스럽게 포즈를 취하는거 보면 참 많이 발전했다. 

 추억을 모으다보니 사진만큼이나 영상이 그렇게 재미지더라. 우리의 목소리와 우리의 움직임이 담긴 영상은 비록 용량을 많이 차지하긴 해도 가장 좋은 추억 저장법이다. 


 우리는 서울과 울산 장거리 연애를 2년 가까이 했다. 그래서 한 달에 2번 만나면 정말 많이 만나는 거고, 보통은 3~4주에 한번 정도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 집은 절대 '외박금지'라 여행 같은 건 꿈도 꿀 수 없었다. 아! 휴가 때 여행을 외할머니댁으로...갔었다... 하하하 

 그런 우리는 한 번 만날 수 있는 하루의 시간을 쪼개고 또 쪼개서 늘 알차게 사용하려고 하다보니 늘 시간에 쫓기고는 했다. 남자친구는 '한 번만 시간에 쫓기지 않고 같이 놀고 싶다'고 푸념하기도 했지만 그래서 어쩌면 즐거운 일들이 많았다. 

 추억이라는 것이 꼭 어떤 멋진 곳에 여행을 간 것을 말하는 게 아니다. 우리가 웃으며 기억할 수 있는 그 무엇도 좋은 추억이 될 수 있다. 


 길에서 정말 갑자기 엄청난 폭우를 만났을 때, 오빠는 나를 건물 앞에 세워두고 혼자 차까지 뛰어갔다가 한참을 나타나지 않더니 마치 늑대의 유혹에 나오는 강동원처럼ㅋㅋㅋㅋ 우산을 들고 뒤에서 나타났을 때 웃음이 터졌던 일. 

 셀프 데이트 스냅을 찍어보자고 삼각대도 사고 리모컨도 준비해서 좋은 장소들에 가서 이렇게 저렇게 포즈도 잡아보고 실험해보다가 제대로 된 사진을 결국 한 장도 건지지 못하고 이건 셀프로 할 수 있는게 절대 아니라고 결론 내리며 절망하던 일. 

 한 달을 겨우겨우 기다려서 만날 날을 잡아놨는데 회사에서 갑자기 출장을 잡는 바람에 또 못보게 됐을 때 진심으로 서러워서 눈물을 펑펑 쏟아내던 일. 

 낮잠 자다가 오빠가 죽는 꿈을 꾸고 놀라서 전화해서 정말 대성통곡을 했던 일. 

 화상채팅하면서 오빠가 오만가지 애교와 희한한 표정을 다 보여줘서 막 놀렸던 일. 

 해운대에서 사진 찍느라 잠깐 걸어둔 오빠의 가방(차키와 지갑이 담긴)을 잊고 몇 시간이나 돌아다니다가 한참 후에야 잃어버린 걸 알고 온 사방을 뛰어다니며 찾다가 겨우 분실물센터에서 찾았을 때의 그 안도감. 

 장거리 연애 하는 덕분에 서울, 대전, 대구, 울산, 경주, 부산, 포항, 하동, 전주... 다 찍고 다녔다. 늘 시간에 쫓기긴 했어도 이곳 저곳에서 찍어둔 사진들과 추억들이 한다발이다. 


 이런 소소한 일상들이 다 추억이다. 아무도 모르지만 우리 두 사람은 아는 그 때 그 일들, 그 때 그 감정, 그 때 그 추억. 

 과거를 자꾸 뒤돌아보며 '그 때가 좋았어...'에서만 머무는 것도 좋지 않다. 지금 주어진 현재를 소중히 여기며 살아가다보면 그 오늘이 모이고 모여서 '행복했던 추억'이 된다. 그 추억들의 힘으로 또 오늘을 힘내서 살아갈 수 있게 된다. 

 오늘 우리가 함께하는 이 순간을 '대충' 흘려보내면 알 수 없는 추억의 힘이다. 


 잠들기 전 '이제 전화 끊어야겠어 오빠~' 할때 남자친구가 한 번씩 앙탈(?)을 부리며 하던 말이 있다. 


오늘 2016년 9월 27일 밤 10시.. 이 순간은 이제 다시 안 오는건데? ...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단순한 진리이지만, 우리는 오늘 이 순간을 얼마나 자주.. 대충.. 흘려보내고 있는지 모른다. 우리가 함께하는 오늘 이 순간은 다시 오지 않고, 또 우리가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의 끝은 결국 오고야 만다. 그 끝에서 '그래 우리 정말 행복했었어'하고 추억할 수 있도록... 오늘 이 순간을 소중히 여기며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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