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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금아 Nov 13. 2023

폰사완의 붉은 울타리

            

  


  


 

바람에 흔들리는 억새들이 메콩강에서 뛰어오른 물고기들의 지느러미 같았다. 가도 가도 사람의 그림자라고는 보이지 않았다. 가풀막진 산허리를 몇 번이나 돌고서야 집 몇 채가 나타났다. 미니밴 기사는 마을이 나타날 때마다 차에서 내려 그를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에게 짐을 건넸다. 편지 같은 것을 전하기도 했다. 그가 차에 오르면 어른들은 손을 흔들었고, 아이들은 맨발인 채로 차의 꽁무니를 따라 달렸다.

 

라오스 중동부의 폰사완(Phonsawan)으로 가는 길이었다. 루앙프라방에서의 여정을 마치면 북부 산악지대로 정글 트래킹을 할 계획이었지만 일정을 바꾼 것은 전날 몽족 야시장에서 들었던 이야기 때문이었다. 몰락한 왕조에 깃들인 비운의 그림자는 늘 애잔한 슬픔과 함께 묘한 매력을 남겼다. 라오스 최초의 통일왕국이었던 란쌍 왕국의 수도, 루앙프라방도 그랬다.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될 정도로 아름다워서 일주일을 머물렀지만 그러고도 아쉬워 더 머무를지 떠날지 정하지 않은 채로 야시장 구경에 나선 길이었다.

시장 한쪽에서 작은 전을 펴고 있던 어린 소녀와 마주쳤다. 그냥 지나치려는데 “헬프, 플리즈!”라는 소리에 걸음을 멈췄다. 소녀의 손끝이 땅바닥을 가리키고 있었다. 작은 보자기에 귀고리와 반지, 팔찌, 열쇠고리들이 놓여 있었다. 액세서리 사이에 밥숟가락이 있어서 이상하다, 느끼던 참인데 작은 종이에 적힌 손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비밀전쟁 때 떨어진 폭탄으로 만든 기념품’이라고 된 메모였다. ‘비밀전쟁(Secret War)’이라니! 번쩍 귀가 열렸다. 함께 갔던 일행도 처음 듣는다는 눈치였다. 스마트폰을 열어 ‘비밀전쟁’을 검색했다. 고색 찬란한 루앙프라방의 야시장 한 귀퉁이에서 작은 칸델라 불빛이 읽어주는 이야기에 그만 정신을 빼앗기고 말았다. 가서 눈으로 확인해야 할 것 같았다. 숙소로 돌아와 다음날 폰사완으로 가는 차편과 숙소를 예약했다.






8시간을 달려 도착한 폰사완은 살풍경했다. 씨엥쿠앙의 주도(主都)로 ‘낙원의 언덕(Hills of paradise)’이라는 이름이 붙었을 정도지만 화려했던 흔적이라고는 찾을 수 없었다. 길은 움푹움푹 파였고, 시멘트가 떨어져 나간 건물들은 심하게 부식된 철근들로 앙상한 과거를 드러내고 있었다. 숙소를 찾아갔다. 왜소한 체격의 남자가 상냥한 소리로 “까올리!” 하고 달려 나오며 한국에서 온 여행객임을 알아보았다. 그곳에 머무는 동안 우리를 안내한 ‘리’였다. 말쑥한 차림이었지만 무더운 날씨에 어울리지 않게 왼손에 보풀이 심한 털장갑을 끼고 있어서 의아했다.

다음날, 몽족 마을을 찾아갔다. 마을이 나타나자 멀리서부터 붉은 꽃 무더기가 보였다. 가까이에서 보니 포인세티아였다. 꽃이 드문 겨울에 주위를 화사하게 해줄 뿐 아니라 꽃말이 ‘축복’이어서 크리스마스 무렵이면 화분을 몇 개씩 사서 집 안에 들여놓곤 하던 그 꽃이었다. 분(盆)으로만 보았을 뿐, 길가에서 자라는 것을 보기는 처음이었다. 좁다란 골목이 나타났다. 입구에서 마을로 이르는 긴 고샅길 양옆으로 포인세티아가 어른 키를 훌쩍 넘어 자라고 있었다. 어찌나 빽빽하게 서 있던지 참빗 살 같았다. 골목까지 드리운 붉은 꽃 이파리들이 차창에 부딪는 소리가 묘한 느낌을 자아냈다.

공터에 차를 세워두고 마을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너와집에서 몸집이 작은 할머니가 나와 ‘리’를 맞았다. 뒤에서는 할머니의 손녀로 보이는 어린 소녀가 아기를 포대기에 싸서 업고서 마당을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생김새와 키가 내 막내 조카딸과 비슷해서 자꾸 눈길이 갔다. 나이를 물으니 조카딸과 같은 열한 살이란다. 아기가 칭얼댈 때마다 다리를 흔들어 어르는 모습이 우리네와 똑같아서 소녀를 보며 싱긋 웃어주었다. 생활용품들도 비슷했다. 음식을 짓고 베를 짜고 농사를 짓는 도구들이 우리나라의 옛 살림을 보는 듯했다.

그런데 마당은 달랐다. 한 뼘의 땅이라도 있으면 남새를 심는 우리와는 달리, 너른 흙 마당에는 흙먼지만 풀풀 날릴 뿐이었다. 풀이라고는 없었다. 포인세티아만이 자랐다. 마당에는 녹슨 쇠기둥들 수십 개가 지붕에 기대어 있었는데 마을을 지나올 때 다른 집들에서도 본 것들이었다. 색연필처럼 생긴 그것들은 좁은 수로를 지날 때 한 사람이 타고 갈 만한 크기의 작은 배를 떠올리게 했다. 쇠기둥들은 여러 용도로 쓰이고 있었다. 마당 가운데에 놓인 불씨를 담는 화로도 돼지우리 속 구유도 닭장 속 모이통도 횃대도 뒤뜰에 세워진 원두막 기둥도 그것으로 되어 있었다.



몽족마을, 폰사완, 라오스. 2020.01.20       




그때였다. 스피커를 타고 안내 방송이 나왔다. ‘리’는 우리에게 귀를 막으라는 시늉을 했다. 몇 번인가 방송이 반복되고 얼마 후, 큰 폭발음이 들렸다. 깜짝 놀라 하는 우리와 달리, 할머니와 ‘리’는 별일 아니라는 듯 무심하게 말을 주고받았다. 언제 왔는지 서너 살배기 아이들 셋이 마당을 뛰어다녔다. 오리와 닭, 강아지, 돼지도 함께 달렸다. 닭들이 지붕 위로 날아오르자 아이들의 웃음소리도 지붕을 넘었다. 아이들도 집안의 가축들도 모두 조금 전에 울린 폭발음에 익숙한 듯했다. ‘리’는 마당 가 한쪽 끝에 서서 손으로 마당의 양 끝을 이어 반원을 그려 보였다. 그리고는 바닥을 가리키며 한참을 설명했다. 자세히 보니 마당에 넓게 패인 흔적이 있었다. 폭탄이 떨어진 자리란다.

‘이토록 평화로운 집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 집은 ‘리’의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 외삼촌과 이모, 어머니가 살던 외가 터였다. 어느 날 마당 한가운데에 폭탄이 떨어졌고, 집에 있던 외조부모와 삼촌은 즉사했다. 이모와 어머니는 외출해서 화를 면했다. 그때 살아남았던 이모가 그 집에 사는 할머니였다. ‘리’가 물었다.

“당신, 비밀전쟁에 대해 들어본 적 있나요?”

고개를 가로젓는 내게 들려준 ‘리’의 말은 놀라웠다. 베트남과 전쟁 중이던 미국은 선전포고도 없이 라오스 동부에 공중폭격을 퍼부었다고 했다. 북베트남군이 라오스에 만들어놓은 ‘호찌민 트레일’*을 통해 전쟁 물자를 운송한다는 이유였단다. 1964년에서 1973년 사이 9년 동안 200만 톤 이상의 폭탄을 8분 간격으로 하루도 빠짐없이 투하했다는, 믿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리’가 부엌 바닥에 있던 물체를 가리켰다.

“밤비(Bombie)!”

야구공인 줄 알았는데 폭탄이었다. 작아 보이지만, 속에 작은 폭탄들이 씨앗처럼 박혀 있어서 한 번 터지면 축구장 세 개를 폭파할 정도란다. 비밀전쟁 중에 2억 7천만 발이 떨어졌고, 아직도 30%가 제거되지 않은 채 불발탄으로 있어서 많은 아이가 장난감으로 가지고 놀다가 사고를 당했고, 어른들은 땅을 개간하다가 목숨을 잃거나 사지가 잘렸다. 지금도 해마다 3백여 명이 불발탄 폭발로 목숨을 잃는다며 말끝을 흐렸다. ‘리’가 머뭇거리더니 왼손에 낀 장갑을 벗어 보였다. 손가락 세 개가 사라진 자리가 흉측했다. 어릴 때 친구와 함께 밤비를 줍다가 입은 상처라고 했다.

조금 전에 울렸던 폭발음은 마을 근처에서 수거한 불발탄을 인공적으로 폭파한 소리였다. 그들에게는 오래전에 일상이 된 소리였다. 그래도 사람들은 불발탄을 찾아 산과 들을 헤맨다고 했다. 그것을 팔아 음식물을 사기 위해서란다. 마을의 집에 쌓여 있던 쇠기둥들은 팔려나가기를 기다리는 폭탄의 잔해들이었다. 폭격에 가족을 잃고, 삶의 터전을 빼앗긴 사람들이 폭탄으로 목숨을 이어가다니. 그토록 슬픈 유물을 울타리로 세워두다니……. 오만 가지 놀라움과 슬픔의 표정을 짓는 나와 달리, ‘리’는 의외로 담담했다.

“오십 년이 다 된 일이에요. 우린 당장 먹을 게 없어요.”

생존을 위협하는 배고픔 앞에서는 슬픔이니 아픔이니 하는 감정들은 사치일 뿐이었다. 폭탄은 그들에게서 굶주림의 감각만 남겨 놓은 것 같았다.

 






 


라오스 폰사완. 2020.01.20




불발탄 숟가락

 

점심때였다. 국숫집을 찾아가는 길이었다. 큰 길가 아래 가마터에서 한 남자가 불을 피우고 있었다. ‘리’가 잠시 들렀다 가자며 차를 세웠다. 우리를 보자 남자는 들고 있던 긴 불당그래를 내려놓고 두 손을 모으며 인사를 했다. “싸바이 디!” 장작불에서는 은빛 액체가 끓었다. 남자의 양옆으로 기다란 널빤지가 있었다. 왼쪽 널판에는 노끈이 감긴 나무통들이 있었는데 끈을 풀자 은색 숟가락이 나왔다. 남자는 숟가락을 요모조모 살피더니 한두 개만 남기고 다 가마솥 안으로 던졌다. 오른쪽 널판장에는 던져지지 않은 숟가락들이 가지런히 있었다.

루앙프라방의 야시장에서 보았던 숟가락들이었다. 폭파한 불발탄에서 알루미늄 부품을 녹여 숟가락으로 만드는 중이었다. 어딘가로 가려는 듯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남자는 목발을 찾아 짚으며 우리를 향해 엷게 웃어 보였다. 밑단이 돌돌 묶여 있던 왼쪽 트레이닝 바지는 걸을 때마다 제멋대로 맥없이 흔들렸다. ‘리’는, 그가 열 살 때 동생과 집 뒤 대밭에서 죽순을 뽑다가 불발탄이 터지는 바람에 한쪽 다리를 잃었다고 귀띔해주었다. 그래도 그는 운이 좋았다며 동생은 두 다리를 모두 잃고서 방 안에서만 지낸다고 했다.

숟가락을 만들기는 쉽지 않아 보였다. 거푸집에서 나오자마자 대부분 불 속으로 던져졌다. 남자가 통과시킨 숟가락도 아내가 다시 꼼꼼히 손질하여 상품으로 만들었다. 한 시간 동안 겨우 여덟 개였다. 열 시간 일한다면 하루에 80개 정도일 것이었다. 숟가락 한 개에 천 킵, 우리 돈으로 140원 정도라고 하니 온 가족이 하루 일해서 버는 돈이라야 겨우 10달러 정도였다.

자신의 다리를 앗아간 폭탄으로 밥을 담는 숟가락을 만들다니. 다시 먹먹해졌다. 남자는 가족을 먹여 살릴 수 있는 일이 있는 것만으로 감사하다고 했다. 내가 한 말이란 겨우 이것이었다.

“불발탄이 없어져서 숟가락을 만들지 못하게 되면 무슨 일을 할 건가요?”

남자도 난감했던 것 같다. 한참 후에야 대답이 돌아왔다.

“죽기 전에 그런 날이 오기나 할까요?”

그는 정말, 자신이 다른 일을 하게 되리라는 건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듯했다. 누군가 “라오스 전역에 남아 있는 불발탄을 다 제거하려면 1천 년은 더 걸릴지도 모른다.”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아무도 말이 없었다. 남자의 말이 세상의 말을 다 삼켜버리기라도 했던 걸까. 장작불이 타오르는 소리뿐, 작업장은 고요했다. 남자 곁에서 숟가락을 다듬던 아내도 포인세티아 아래에서 숟가락 거푸집을 손질하던 노인도 침묵 일색이었다. 작업장 안에 있던 폭탄의 껍질들과 그것으로 만들어놓은 숟가락들이 말을 대신하고 있었다.

숟가락을 저울에 달아보았다. 겨우 18g. 너무 가벼워서 놀랐다. 누군가는 영혼의 무게가 21g이라고 했다는데 그 숟가락의 무게는 인간의 영혼에서 무엇을 빼고 남은 무게일까. 폭탄이 그토록 가벼워질 수 있다니. 얼마나 많은 제련과 정련을 거듭했을까. 불은 폭탄을 품고서 활활 타올랐다. 불꽃과 마주 앉은 남자의 등을 본 순간, 온 세상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진 한 사나이가 생각났다. 남자가 녹이고 있는 것은 폭파된 폭탄의 껍질이 아니었다. 폭탄의 본성이었다. ‘파괴’라는 태생을 바꿔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을 확인하느라 남자는 그 더운 날씨에도 불구멍 앞을 꼬박 지키고 있었던 거다.

그 집에 깃든 상처의 무게를 저울로 단다면 얼마나 될까. 폭탄 한 개에 비할까. 가마 속 같은 불잉걸의 세월이었을 게다. 18g은 집 안 구석구석 박힌 아픔이 빠지고 남은 무게이리라. 그리 가벼워서야 세상에서 제일 무겁다는 밥의 무게를 감당할 수나 있을까. 이제는 그 가족이 숟가락에 담을 밥을 구하는 일도 좀 가벼워졌으면……. 숟가락 두 개를 샀다. 불편했던 마음자리가 만져졌다. 살아오는 동안 때려치우고 싶고, 던져버리고 싶고, 도망쳐버리고 싶었던 때가 한두 번이었을까. 내 안에서 오래도록 기생해 온 불발탄의 시간도 그 숟가락에 담기면 좀 가벼워질 수 있으려나.

숟가락 공장을 나와 차에 올랐지만 달릴 수 없었다. 길가를 따라 펼쳐지는 논밭의 표정은 무심하기만 했다. 풀빛이라고는 찾을 수 없었다. ‘리’가 말했다. 어린 날 학교에 갈 때면, 부모님에게서 호랑이를 조심하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마을엔 야생동물이 많았고, 땅은 야생의 먹이로 풍성했다고. 융단폭격 후 마을에서는 생명의 씨가 다 파괴되어 버린 것 같다고도 했다. 흙들은 풀씨를 품지 못했고, 어쩌다 돋아난 식물들은 흙먼지를 뒤집어쓰고서 숨이 다한 듯 파리했다. 돼지 몇 마리가 밭두렁에 코를 박고 “꾸륵꾸륵” 하며 마른 흙을 파고 있었다. 닭들은 여윈 발로 밭을 헤집고, 코뚜레 소들은 슬픈 워낭소리를 내며 논바닥을 서성였다. 모두 늙은 엄마의 마른 젖가슴에 달라붙은 어린 목숨이었다. 먹이를 찾는 소리로 폰사완의 들판은 더 가난했고 더 적막했다. 국수를 먹으러 가는 것도 잊은 채 차에 앉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삐우 동굴(Tham Piu), 무앙캄. 라오스. 2020.01.20



두 개의 불빛


 

 

늦은 점심을 먹고 나니 ‘리’는 꼭 보여주고 싶은 곳이 있다고 했다. 무앙캄이라는 마을을 향해 달렸다. 산세가 좋았다. 산자락 아래에 동상이 있었다. 한 남자가 두 팔에 축 늘어진 소년의 시신을 안고 있었다. 남자의 눈빛은 처연했다.


동상을 돌아 산을 올랐다. 가파른 나무 계단이 끝나는 곳에 삐우 동굴(Tham Piu)이라는 안내판이 나왔다. 동굴 바닥은 희한하게도 돌무더기 천지였다. 큰 충격에 쪼개진 듯 돌들은 모서리가 날카로웠다. 높고 낮은 돌탑 위에는 타다 만 향과 피우다 만 담배, 뚜껑이 열린 비어라오 맥주 캔들이 놓여 있었다. 안으로 들어갔다. 벽은 검게 그을렸고, 동굴은 전등 없이는 갈 수 없으리만치 깊었다. 학교라는 표지와 함께, 병원이라는 표식도 있었다.


비밀전쟁 때의 은신처였다. 사람들은 8분마다 떨어져 내리는 폭격을 피해 집을 떠나 숨을 곳을 찾았다. 삐우 동굴도 그중 한 곳이었다. 누군가는 먹을 것을 구해 와야 했고, 낮 동안엔 동굴에 있다가 밤이면 밖으로 나가 열대과일이나 야생감자 같은 것을 채취했을 것이다.


1968년 11월 14일 새벽 1시 반이었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음식을 구하러 나온 불빛을 발견한 미군 전투기가 불빛을 향해 로켓포를 발사했고, 동굴 안에 있던 농부들과 주민 374명이 죽었다. 깜부기불에 지나지 않았을 그 작은 불빛을 꺼지게 하는 데에 그토록 무시무시한 불빛이 필요했을까. 먹이를 찾는 불빛만큼 거룩한 불빛이 있을까. 그 선량한 가슴을 쏜 불빛의 이름은 무엇으로 불러야 하나.


프로메테우스는 신의 전유물이었던 불을 인간에게 전해주고서 날마다 독수리에게 간을 뜯어 먹히는 고통을 치러야 했다. 불이 경배의 대상이어야 하는 이유다. 불은 마음속 어둠을 몰아내게 해서 한 자루의 촛불 앞에서 기도하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욕망을 다스리게 한다. 불은 인간을 다른 생물과 구별되게 하고, 먹이사슬에서 맨 윗자리를 차지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렇지만, 인간을 가장 열등하게 만드는 것 또한 불이다. 축복과 재앙 중에 어느 것을 선택하느냐는 지혜의 영역에 속한다. 모든 것에 앞서 불의 본질은 생명이다. 생명인 불을 살상의 무기로 쓰는, 불을 다룰 줄 모르는 종족은 야만인으로 부름받아 마땅하다.


내려오는 길에 보니 산기슭은 잡목들로 울창했다. 넌출마다 연보라 꽃들이 송이송이로 피어 있었다. ‘까밍오에’라고 부르는 그 꽃은 라오스 숲길 어디서나 자주 볼 수 있었는데 나는 ‘나비꽃’으로 기억한다. 삐우 동굴의 희생자들이 나비가 되어 못다 한 지상의 시간을 날고 있는 것 같아서다. 숲 사이로 비치는 하늘빛이 시리도록 맑았다. 그토록 푸른 하늘에서 그렇게나 많은 폭탄이 쏟아져 내렸다니……. 동상 앞에 서서 묵념을 올렸다. 그때 요란한 음악 소리가 들려왔다. 저쪽 원두막같이 생긴 곳에서 젊은이들 몇이 휴대폰을 켜고서 춤을 추고 있는 게 아닌가. 철없기는! 여기가 어디라고! 이방인이면서도 나는 또 괜한 참견이 드는 것이었다.


신비의 나라, 치유의 시간을 꿈꾸며 찾아간 땅이었다. 2008년에 『뉴욕 타임스』가 죽기 전에 가보아야 할 곳 세계 1위로 선정한 곳이라고도 했다. 그런데 라오스의 땅은 디디면 디딜수록 마음 한구석이 아파졌다. 백만 마리 코끼리가 선한 사람들과 함께 무리를 이루어 평화롭게 살았다던 폰사완, 그곳에 그 ‘낙원의 언덕’은 없었다.


폰사완에서 나흘을 보내고 다음 여행지로 향했다. 마을을 돌아 나오면서 보니 집집 울타리에 세워둔 폭탄 쇠막대들이 승전의 대가로 얻은 전리품으로 보였다. 그 사이에서 포인세티아가 자라고 있었다. 마을의 슬픔이 지붕을 넘어 포인세티아로 피어난 듯했다. 파란 하늘에 피어나던 붉은 이파리들은 폭탄이 뿜어내는 화염 속 꽃불이었다.


자꾸만 고개가 돌려졌다. 뒷 차창으로 보니 마을로 들어설 때처럼 어른들은 떠나는 차를 향해 손을 흔들었고, 아이들은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차 꽁무니를 따라 달려오고 있었다. 하얗고 조그마한 맨발바닥이 폭탄 공격에 꼬깃꼬깃해진 길을 펴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이들의 발치에서 포인세티아가 붉게 피어나고 있었다. 땅이 제 속 응어리를 다 뱉어낼 날은 언제일까. 그날에 꽃은 제빛대로 ‘축복’으로 피어나리라.


 

 

*베트남 전쟁 당시 북베트남군이 남베트남을 공격하기 위해 라오스와 캄보디아 영토를 경유하여 병력과 군수품을 이동시키던 경로. ‘호찌민 루트’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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