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대중교통은 전 국민이 이용, 미국의 대중교통은 저소득층이 이용
한국은 인구 밀집도가 높고 특히 인구의 반이 살고 있는 서울과 수도권은 대중교통이 당연히 발달이 되어 있고, 자동차가 있더라도 대중교통을 자주 사용한다. 웬만한 재벌이나 연예인이 아니고서는 거의 다들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지하철에 타 보면 명품 가방을 들고 비싼 시계를 찬 사람들을 마주쳐도 전혀 놀랍지 않다. 인구 대부분이 소득 수준과 상관없이 이용하는 거기 때문에 예산도 많이 들어갈 거고 늘 깨끗하고 안전하게 보수, 유지가 된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아마 뉴욕을 제외하고는 대중교통 자체가 발달이 잘 되어있지 않다. 워낙 땅덩이가 넓고 인구밀도가 낮아서 아마 경제적으로 수지가 안 맞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꽤 큰 도시더라도 대중교통으로 갈 수 없는 곳이 너무 많고 배차 간격도 상당히 길어서 매우 불편하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동차로 이동하고, 자동차가 없는 (혹은 자동차를 사고 유지할 여력이 안 되는) 사람들만 대중교통을 탄다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물론 차 있고 부자이지만 대중교통 사는 미국인도 분명히 있을 테지만, 평균적으로 통계 상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인구는 대부분이 개인 차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타는 저소득층이 많다. 예를 들면, 샌디에고 같은 경우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평균 소득이, 자가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의 평균소득에 반 밖에 안된다. 이런 패턴은 다양한 도시에서 발견되고 이에 대한 연구도 상당히 많다.
한국의 대중교통은 차의 유무나 소득에 상관없이 그 누구나 이용하는 수단인 데 반해, 미국은 차가 없는 인구가 어쩔 수 없이 이용하는 수단이 대중교통이다.
나는 기생충에 나온 대사인 "지하철 냄새"를 들으면서 와 봉준호는 천재다라고 생각했다. 말 그대로 "대중"이 타고 다니는, 그러니까 나도 타고 다니는 그렇게 깨끗하고 관리가 잘된 지하철에서 냄새가 난다고? 아 저런 사람들은 나를 볼 때, 냄새나는 일반 대중 혹은 기택이네 집안사람들과 동일시하는구나. 내가 아무리 번듯하고 깨끗하고 열심히 정직하게 중산층에 살아도 그네들에게 나는 그냥 일개 냄새나는 기생충이구나. 한국인 대부분에게 이렇게 박탈감을 들게 하고, 기택의 마음에 공감할 수 있게 만드는 한마디의 말이었다.
미국인은 기생충에 나온 대사인 "지하철 타면 나는 냄새"를 정말 문자 그대로 받아들였을 수 있다. 왜냐면 일단 미국에서는 지하철 타면 정말 지린내가 난다. 위에 말했듯이 미국 지하철은 "대중"이 타는 것이 아니고 돈이 없어서 차가 없는 사람들이 타는 교통수단이라는 생각이 팽배하므로, 지하철 냄새라는 대사에 한국 일반 대중이 느끼는 박탈감과 공감을 미국인들은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미국인들은 저 대사를 듣고 지하철 냄새 정말 나는데 뭐 어쩌라고?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예를 들어 중산층인 내 미국 시댁은 저 부분에서 "그래 기택이네에서 미국 지하철에서 나는 지린내가 나나보구나"라고 생각하고 말지, 그 대사로부터 "헉 저게 내 얘기였어?"하지 않을 것 같다. 역시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다.
코로나가 터지고 나서 미국인 시부모님들이 우리 부모님이 어떻게 지내냐고 물었다. 한국은 워낙 마스크 잘 껴서 엄마 아빠 다 지하철 타고 출퇴근한다고 했다. 그때 대중교통에 대한 인식 차이를 아는 미국인 남편이 재빠르게 한마디 거들었다. "한국에서는 누구든 지하철 타기 때문에 아주 일상 적인 거고, 차가 없어서 지하철 타는 게 아니다"라고 부연설명을 했다. 아마 해외여행이라고는 파리 정도를 가본 시부모님에게는 한국의 문화를 잘 모르기 때문에 "세상에 지하철을 타고 다니다니! 얼마나 돈이 없으면..."이라고 가엾게 생각할 수 있기에.
나는 아틀랜타, 뉴욕, 시카고, 미네아폴리스, 샌프란시스코 등지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나는 가난한 학생이었고 차를 살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리고 면허도 없었음). 버스든 지하철이든 전철이든, 서울에서는 한 번도 안전하지 않다고 느낀 적이 없었고, 냄새가 났던 적은 일생 중 한 두 번에 불과했다. 이상한 사람도 간혹 있기는 하다만 적어도 탈 때마다 매번 마주치진 않았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대중교통을 탈 때마다 (뉴욕 맨하탄은 그나마 예외) 더럽고 지저분하고 냄새나고, 쥐 돌아다니고, 벽에 그라피티 되어 있고, 이상한 사람들이 혼잣말하거나 말 걸거나 위협하는 게 대부분이었다. 처음에는 그런 분위기가 너무 무서웠고 여전히 가끔 무섭다. 대중교통으로 충분히 갈 만한 곳이더라도 직장을 잡고 나서는 나는 이제 꼭 차를 가지고 다닌다.
미국 여행기를 보면 그레이하운드가 얼~마나 구린지에 대해 토로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도 격하게 공감한다. 우리나라 고속버스는 지인짜 최고다. 깨끗하고 냄새 안 나고 티비 틀어 주고 와이파이 되고 기사님 친절하고. 우리나라는 돈 있고 차 있어도 고속버스 잘 이용한다. 그만큼 괜찮으니까. 근데 미국의 고속버스인 그레이하운드 (아니면 메가버스)는 아니나 다를까 차가 없어서 장거리 이동을 하려면 고속버스를 타야만 하는 사람들이 이용한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통계적으로도 그렇고. 그래서 미국에서 고속버스를 타면 우리나라 고속버스의 분위기와 매우 다르다.
위에 적은 미국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사람들에 대한 묘사는 통계적인 묘사에 불과하고 (예를 들면 평균적으로) 이 통계적인 묘사는 대중교통을 타는 모든 이에게 (당연히)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이런 통계적 수치들은 인과관계를 뜻하지도 않는다. 단지 상관관계일 뿐. 그리고 어디까지나 나의 생각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