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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elles Adventure Dec 24. 2020

미국식 크리스마스 카드 쓰는 법

카드 쓰는 법에도 문화 차이가 있다.

카드에 쓰는 내용



한국과 미국의 카드 문화에 가장 큰 차이점은 아마 콘텐츠일 거다. 우리나라에서는 카드를 고를 때 앞면에 있는 디자인을 보고 고른다. 그 안에 뭐라고 써 있는지는 사실 크게 상관하지 않는다. 우리 엄마가 내게 생일 카드 보낸 것을 보면 Thank you카드인 적이 많다. 표지가 예쁘니까 엄마가 그걸 고른 거다. 하지만 앞면보다 미국에서 더 중요한 건 카드 안에 있는 글귀다.


우리나라에서는 누군가에게 카드를 쓴다고 하면 우리는 구구절절 할 말은 쓴다. 생일 축하해, 너는 참 좋은 친구야, 안 본 지 오래됐다, 보고 싶다, 우리 다음에는 같이 만나서 저녁 먹자, 행복하고 건강해, 크리스마스 따뜻하게 잘 보내구 등등. 우리가 할 말을 카드에 쓴다. 카드 자체에 뭐가 쓰여있는지는 크게 관여하지 않는다.


크리스마스 카드를 예로 들어보자. 밑에는 홀마크에서 파는 크리스마스 카드를 가지고 온 건데, 앞면에는 평화와 기쁨이라고 써 있다. 우리나라에서 내가 이 카드를 썼다면, 카드 안에 하얀 공백에 내가 쓰고 싶은 말을 썼을 거다. 사실 아직도 나는 그렇게 카드를 쓴다.



홀마크 크리스마스 카드 예시



미국은 카드 쓰는 방법이 판이하게 다르다. 미국에선 카드를 쓴다기보다는 카드에 본인 이름을 서명하는 게 다 이다. 그러니까 카드 안에 저 공백에다가 아무것도 쓰지 않고 자기 이름만 쓸 뿐이다. 롸? 그럼 카드는 왜 보내는 거지? 아무 말도 안 쓰면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카드를 쓰는 거지? 미국인들은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직접 쓰는 게 아니라 카드 안에 이미 적혀있는 글귀를 통해 할 말을 한다. 참 게르으죠?ㅋㅋ 아니 그거 몇 자 적는 데 얼마나 걸린다고. 아무튼 그래서 미국에서 파는 카드를 보면 그 안에 뭐라뭐라 글귀가 적혀있다. 그 글귀가 곧 본인의 메시지이기 때문에 미국인들은 카드를 고를 때 반드시 그 안에 무슨 말이 써 있는지를 본다.


위 홀마크 크리스마스 카드 예를 다시 보면 "이번 크리스마스와 내년에 너의 삶에 평화가 있기를, 그리고 너의 가슴에 기쁨이 있기를"이라고 써 있다. 만약 미국인이 본인 서명을 해서 내게 이 카드를 줬다면, 아마 진심으로 내가 평화롭고 기쁨 넘치는 삶을 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카드를 줬을 거다. 그 사람이 내게 카드를 보내는 의도와 심정에 가장 가까운 글귀를 골랐을 테니까.




이 카드도 홀마크에서 가져온 크리스마스 카드 예시다. 여기에 있는 글귀는 "머리 끝부터 내 가슴 깊은 곳까지 너무나 고맙다고 말하고 싶어. 연말 즐겁게 보내!"라고 써 있다. 미국인이 내게 이 카드를 줬다면 아마 정말로 내게 고마워하는 일이 있기 때문일 거다. 보낸 이는 아무 글도 적지 않았지만 글귀가 그 사람 마음을 대신하니까 그렇게 이해한다.


개인적으로 난 미국식으로 카드 쓰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무슨 청첩장 고르듯이 이미 다 적혀있는 템플릿을 그대로 쓰다니. 그 어떤 개인적인 메시지나 개인적인 감정을 카드에 싣지 않는 것이 내겐 여전히 생경하다. 카드를 쓰는 이유는 그 사람에게 정말로 내가 정하고 싶은 마음이 있으니까 쓰는 건데, 카드에 프린트된 정형화된 글귀가 내 마음을 100% 대변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그 마음을 왜 표현하지 않는지. 게으르고 감동적이지도 않다.


내가 우리 부모님에게 보낼 카드에 남편더러 뭐 좀 쓰라고 하면 "뭐라고 써?"라고 묻는다. 그러니까 이미 카드에 써 있는 글귀가 카드 내용인데, 거기에 자기더러 뭘 더 쓰라고 하는지 묻는 거다. 미국의 카드 문화를 이해하기 전엔 "뭐야 남편이 울 엄마 아빠한테 할 말도 없어?"라고 생각해서 서운해했다. 근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냥 카드 쓰는 문화가 달랐던 거다. 이제 남편도 한국식 카드 쓰는 문화를 이해해서, 말 안 해도 알아서 구구절절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고 주절주절 카드에 쓴다.


이번 성탄절에 받은 카드

이번 성탄절에 받은 카드다. 보면 문구가 이미 적혀있고 밑에는 본인 서명만 했다.





https://brunch.co.kr/@ilovemypinktutu/60


지난 글에 미국에서 크리스마스가 갖는 종교적 의미에 대해 썼다. 미국에선 카드를 보낼 때도 종교적인 색채를 담아 보낼 건지 아닌지를 신중히 골라야 한다. 상대방이 기독교인이라면 밑에 있는 종교적 색채의 카드를 보내도 된다. 하지만 상대방이 기독교인이 아니라면 저런 카드는 고르면 안 된다. 라기 보담은 받는 사람이 읭 난 기독교인이 아닌데 왜 이런 카드를 보냈지? 할 거다. 특히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에게 저런 카드를 주면 "뭐지? 나는 00 종교인데?"하고 혼란스러워할 거다.


남편네 집안은 죄다 가톨릭 신자다. 남편도 그렇게 자랐지만 지금은 종교가 없다. 그래서 남편은 부모님께 크리스마스 카드를 쓸 때 소심하게 종교에 대한 반항심(?)을 부린다. 그 많고 많은 기독교 색채가 있는 카드는 무조건 퇴짜 놓고 가장 종교적인 색채가 없는 카드를 고른다. 털끝만큼도 기독교적인 분위기를 내지 않겠다는 나름의 소심한 반항이다.



종교적 색채가 있는 크리스마스 카드


미국의 카드 문화를 잘 몰랐던 나는, 처음 시댁에 크리스마스 카드를 쓸 때 그냥 앞면이 너무나 예쁜 카드 (사진에서 중간에 스테인드 글라스처럼 된 카드)를 골랐다. 남편이 기겁을 하며 이런 거 보내면 시부모님이 내가 기독교인인 줄 안다고, 이런 거 말고 좀 종교적 색채 없는 걸로 고르라고 했다. 결국 난 우리 부모님을 위해 산 카드를 시부모님에게 보내고, 저 예쁘디 예쁜 카드는 울 부모님에게 보냈다. 울 부모님도 가톨릭 신자지만, 어차피 카드 표지나 문구를 보고 그 어떤 해석을 하지 않을 걸 아니까 맘 편히 보냈다.


정리하자면, 미국인에게 카드를 쓸 때는 그 상황에 맞는 카드를 골라야 한다. 생일 카드에 Thank you라고 쓰여있는 카드를 보내면 이상하게 생각한다. 졸업을 축하하기 위해서 주는 카드에 Happy birthday 써 있으면 아무리 예뻐도 미국인은 이상하게 본다. 이걸 알게 된 후로는 나도 카드를 좀 신경 써서 고른다. 최대한 내 심정에 부합하는 글귀가 적힌 카드를 고른다. 물론 나는 뭐라고 적는 걸 좋아하기 때문에 빼곡하게 내가 할 말을 또 적는다.






카드 종류가 산더미



미국은 카드 천국이다. 밑에 사진만 봐도 일반 슈퍼마켓에서 카드를 얼마나 많이 파는지 볼 수 있다. 생일이면 으레 생일 카드를 주고, 약혼을 하면 약혼 축하한다는 카드를 준다. 결혼을 하면 결혼 축하한다는 카드를 주고 아기를 낳으면 또 축하한다는 카드를 준다. 엄마의 날이나 아빠의 날이 되면 각각 카드를 주고, 부모님 결혼기념일이 되면 축하 카드를 쓴다. 누가 졸업을 하면 졸업 축하 카드를 쓰고, 누가 아프면 빨리 나으라고 카드를 쓴다. 매 연말이 되면 가족, 친지, 친구들 모두에게 크리스마스 카드를 보내는 것도 매우매우 대중적이다.


슈퍼마켓 카드 섹션

 

처음엔 왜 이렇게 카드를 종류별로 많이 파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미국의 카드 쓰는 문화를 이해하고 나니까 이해가 간다. 개개인이 하고 싶은 말을 맞춤형으로 알아서 쓰는 식이 아니라, 이미 프린트돼 있는 글귀를 내 맘 대신해서 보내는 식이니까. 사람들이 카드를 많이 주고받는 생일용, 명절용, 각종 공휴일 용 등등 다 카드를 다르게 만든다. 게다가 받는 사람과의 관계 (부모, 자식, 배우자, 손주, 조부모, 친구, 등등)에 따라서도 카드가 다르다. 이러니 생일 카드만 해도 선반 한 면 전체를 덮을 정도로 종류가 다양하다.



홀마크 홈페이지


홀마크 홈페이지에 가서 생일 카드를 보면 무려 3000개가 넘는다. 첫 번째는 상대방과의 관계다. 아무나에게나 적용되는 카드가 있는 반면에 형제, 자매, 엄마, 아빠, 부모님, 딸, 아들, 자식들, 이모, 삼촌, 할머니, 할아버지, 조부모님, 조카 (남 여 따로) 등등 다 고를 수 있다. 그다음으로 고를 수 있는 건 상대방의 나이다. 첫 번째 생일, 두 번째 생일, 10번째 생일, 18번째 생일, 30, 40, 50, ... 등등 상대방의 나이에 따라서도 종류종류 있다. 그다음으로 고를 수 있는 것은 글귀의 톤이다. 글귀가 성인용으로 써 있을 수도, 귀엽게 써 있을 수도, 웃기게, 종교적이게, 시크하게 등등. 어마어마하죠?


하도 카드를 많이 쓰다 보니까 각 집에는 예비 카드가 수두룩하다. 나도 집에 Thank you 카드, 생일 카드, 크리스마스 카드 등 많이 쓰는 카드를 상비해둔다. 그리고 우표도 10개들이로 넉넉하게 사놓는다.







정형과 맞춤의 사이





크리스마스 카드 예



미국은 모든 카드가 정형화된 것 같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크리스마스나 연말용 카드는 왼쪽 사진처럼 박스박스 카드를 사서 쭉 돌리기도 하지만, 오른쪽처럼 가족사진을 이용해서 카드를 아예 제작하기도 한다. 오른쪽 사진은 minted.com에 올라온 카드 예시다. 겨울이 되면 온 가족이 모여서 가족사진을 찍고, 이걸 찍스같은 인터넷 사이트에 보내 카드를 여러 장 제작한다. 이런 건 우리나라에서는 잘 하지 않는 맞춤식 카드이다.



Little Fires Everywhere


이렇게 연말용 가족사진을 찍어서 카드를 보내는 게 연례 가족행사인 경우가 많아서 미드에서도 자주 볼 수 있다. 이 캡쳐는 Little Fires Everywhere이라는 미드에서 가족들이 모두 타탄 무늬를 입고 사진 찍는 연례행사를 보여준다.


이렇게 맞춤화의 끝장을 보여주는 미국식 카드인데, 웃긴 건 이 카드에 가족들이 서명만 해서 보낸다. 부모에게 보내든, 친구에게 보내든, 이모에게 보내든 결국엔 다 똑같은 카드가 간다. 넘 웃기지 않나요?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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