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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elles Adventure Dec 08. 2020

미국에서 코로나 추적조사를 못하는 이유

사생활과 권리의 범주가 다르다.

미국 살이하며 느낀 문화 차이 - 사생활과 권리의 범주




우리나라 관점에서는 "도대체 이게 왜?"라는 의문이 들게 하는 미국 사안들은 대표적으로 (1) 총기규제에 아주 심하게 반발, (2) 사유지 침범에 대한 강력 대응, (3) 코로나 추적에 응하지 않겠다는 사람들​, 그리고 (4) 마스크 규제에 반대하는 사람들. 이번엔 3번 코로나 추적조사에 대해 써 보겠다. 도대체 미국인들은 왜 코로나 추적조사를 할 생각도 안 하는 걸까?


밑에 구구절절을 요약하자면, 미국에서 인식하는 사생활의 범주와 보호의 정도가 우리나라와 다르다.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사생활을 중요시하고 보호하는 정도도 어마하다. 게다가 누구로부터 사생활이 보호돼야 하는가에 대한 인식도 좀 다른 것 같다. 사생활이 사기업에는 알려져도 별 상관없는 사람들이, 국가가 알려고 하면 들고일어난다. 국가에 의한 사생활 침해에 훨씬 민감한 거다.


참고로 미국은 이미 확진자가 너무 많아서 추적조사가 불가능하다. 일례로 내가 살고 있는 주는 한국과 땅덩이는 비스무리하지만 인구는 1/7도 채 안된다. 뭐 전 미국이 그렇듯이 여기도 코로나가 도무지 통제가 안되는데, 하루 확진자 수를 비교하면 여기가 한국의 10배가 넘는다. 미쳤어미쳤어. 


게다가 코로나 때문에 락다운이 들어가기 시작한 3월에, 미국인의 80%가 "코로나는 가짜다"라는 뉴스를 봤다고 한다. 심지어 지금도 코로나는 생각보다 위험한 게 아님에도 정부가 민간인을 통제하기 위해 사망자를 부풀려서 보고하고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조금 있는 게 아니라 많다. 무려 1/3이나 그렇게 믿는다. 사족: 근데 이렇게 가짜 혹은 부풀려졌다고 믿는 사람들은 대체로 공화당 지지자들인데, 이들과 민주당 지지자들을 비교하면 코로나로 인한 사망률 높다.






미국인은 사생활을 끔찍이 여긴다.



미국은 한국에 비해 사생활의 범주도 넓고 사생활 침해에 좀 지나칠 정도로 민감하다. 이게 의료 기록이면 (누가 아팠다, 어디가 아팠다 등의 정보들) 더더더더더더욱 어마어마하게 보호한다. 예를 들면, 미국에 개인의 의료 기록에 관한 규정 (HIPPA)가 있다. 이는 내가 상상도 못 했던 정도로 개인 정보를 보호하는 정도가 매우 강력하다. 이게 어느 정도로 세냐면 우선 의료 관련한 데이터는 아무 데나 보관을 못한다. 병원, 보험회사는 물론이고 학교에 있는 연구자들도 학교에 있는 (관리와 보안이 잘 되고 공립임에도) 수퍼컴퓨터 서버에 마음대로 저장할 수 없다. 지정된 보안기준을 통과한 저장장치에만 보관할 수 있도록 돼 있다. 우리 학교도 수퍼컴퓨터든 학교에서 사준 개인 컴퓨터든 뭘 저장하려고 하면 일단 HIPPA에 어긋나는지를 물어본다. 어긋난다면 "여기는 저장 안 됨"이렇게 뜬다.


내가 겪은 또 한 가지 예는, 학교에서 절대로 학생의 의료 기록을 봐서도 안되고 보려고 해서도 안된다는 거다. 당연한 소리 같지만, 출결을 체크할 때 문제가 생긴다. 이전에는 학생이 아파서 수업을 빠졌을 때 감점을 면하려면 병원에서 진단서 가져다가 교수에게 제출해야 했다 (다 그런 건 아니지만 대체로 이렇게 했다). 근데 HIPPA가 발동하고 나서는 학생의 의료 진단서는 강력히 보호되어야 할 사생활 정보이기 때문에, 진단서를 요구해서는 안된다는 거다. 그래서 이제 출결 체크할 때 학생이 아프다 그러면 그냥 그걸 믿는 수밖에 없어졌다. 그만큼 학생 개인의 의료 기록은 중요한 사생활로 여긴다.


또 한 가지 내가 겪은 사생활 범주에 관한 예는 성적 공지에 관한 얘기다. 성적을 수업 때 공개하는 것은 물론 안된다. 예를 들면, 한 학생이 이번 시험에서 몇 점을 받았는지는 그 학생 본인이 얘기하지 않는 이상 그 누구도 알아선 안된다. 그게 부모든 친구든 교수인 내가 한 학생의 시험 성적을 동의 없이 공개할 수 없다. 그니까 채점된 시험지를 다시 학생들에게 나눠줄 때, 점수가 앞면에 써 있으면 안 된다. 점수가 앞면에 써 있으면 다른 학생이 볼 수 있으니까. 그래서 뒷면에 적는다. 나눠줄 때도 여기 쌓여있으니 알아서 가져가라고 안 하고 일일이 한 명씩 부르면서 나눠준다. 혹시나 학생이 다른 학생 점수를 볼 까 봐. 이렇게 안 했다간 학생이 신고라도 할까 무서워서 더 조심조심한다.


이게 시험 점수뿐만 아니라, 학생의 점수를 평가하는 데 들어간 레포트 등도 다른 사람에게 절대 공개하면 안 된다. 이게 문제가 된 경우는 코로나 때문에 인터넷 강의가 많아지면서 생겼다. 어떤 강의에서 학생들에게 발표를 시켰고 그게 점수에 반영이 됐다. 문제는 인터넷 강의는 대체로 다 녹화가 되니 학생들이 발표한 것까지 녹화가 된 것이다. "학생들의 발표물"은 교수가 학생의 성적을 내는 데 사용되는 증거물(?)이므로, 이게 다른 학생들에게는 공개돼서 안된다는 거다. 이게 대면 수업을 할 때는 문제가 안됐는데, 인터넷 강의로 바뀌면서 녹화가 되기 시작하니 문제가 됐다. 그래서 학교에서 공문이 내려와, 이러저러한 경우는 학생들에게 발표가 녹화된다는 걸 밝히고 동의를 받거나, 아니면 아예 녹화를 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나 같은 경우는 학생이 제출한 레포트 중에 너무나 정석으로 잘 쓴 것이 있어서, 이걸 다른 학생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근데 맘대로 보여줘선 안되니까 우선 그 학생에게 허락을 맡고 그 학생 이름을 지우고 나서야 다른 학생들에게 보여줄 수 있었다.






다시 코로나로 돌아와서, 학교에서 이번 가을 학기 때 추적 조사를 한다고 공문이 내려왔다. 우리 과 교수들의 첫 반응이 "학생들이 거부하면 손을 쓸 수 없을 텐데 어떻게 강제할 수 있냐"는 질문이었다. 그러니까 어떤 학생이 코로나에 확진됐다고 치자. 그러면 학교에서는 우선 어떤 학생이 코로나에 걸렸는지 알아야 하는데 이것부터가 문제다. 학생의 의료 기록은 사생활로 보호되어야 하는데, 학교가 알아야 하니까. 설사 학교가 알았다 치자. 그러면 이 학생이 참석했던 대면 수업의 교수와 그 학생 옆에 앉았던 다른 학생들에게 알려야 하는데, 그러면 자연스럽게 (특히 인원수가 적은 수업이면 더더욱) 누가 확진자인지 금방 추리해 낼 수 있다. 그러면 이제 그 확진자의 사생활인 의료기록은 학교만 아는 게 아니라 교수, 주변 학생들에게까지 알려지는 것이므로 문제가 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 학교에서는 이런 추적조사에 동의한다고 싸인한 학생들만 대면 수업을 들을 수 있게 하고, 동의하지 않는 학생은 무조건 100% 온라인 수업만 들을 수 있게 했다. 어쨌든 가을학기 동안 여기까지는 추적조사를 했다.


근데 추적조사도 여기까지 뿐이다. 이 학생이 평소에 어떤 식당에 갔는지, 룸메가 누구인지, 친구들끼리 파티에 갔는지 등등은 물어볼 생각도 안 했다. 확진자 본인이 갔었던 식당에 알리지 않는 이상, 룸메에게 알리지 않는 이상, 그걸 다른 사람들이 알 수 없다. 왜냐면 그건 개인 사생활 기록이니까. 특이한 점은 이게 우리 학교가 주립학교라서 공공기관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미국법을 잘 몰라서 내가 아는 데는 한계가 있지만, 내가 아는 사립학교는 학생들끼리 일정 인원수 이상의 파티를 하는 걸 목격하면 사진을 찍어서 보고하라고 했다. 심지어 학교 밖에서 학교와 상관없는 곳에서 학생이 아닌 사람들과 파티를 하더라도. 그 목격담을 수집한다는 것 자체가 개인정보 수집이기 때문에 (게다가 얼굴이 나온 사진이라니!) 주립학교인 우리 학교에서는 불가능할 거다. 아무튼 그 사립학교에서는 파티하다 걸리면 퇴학이라고 했다. 후달달.


코로나에 걸렸다는 사실조차도 강력하게 보호돼야 할 개인정보로 인식하는데, 내가 언제 어디에 누구와 있었냐는 정보는 더 개인적인 정보이기 때문에 국가적인 차원에서의 추적조사는 미국에선 불가능할 거다.





국가에 의한 사생활 침해에 훨씬 민감하다. 



여기서 중요한 건 국가적인 차원에서의 추적조사다. "국가"에서 추적조사를 한다고 하면 미국인들이 또 엄청 들고일어난다. 미국에서 사기업들이 어마어마하게 개인정보를 빼 가는 데에는 굉장히 무딘 사람들이, 정부가 개개인의 뭐라도 알려고 하면 엄청 반발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 역시 전 편에 쓴 것처럼, 정치적 성향과 상관관계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공화당 성향을 띈 미국인들은 평균적으로 정부가 개입해서 개인의 권리를 규제하거나 개인의 정보를 알려고 하는 것에 반감이 꽤 크다. 어느 정도냐면 내가 어디 사는지 국가가 왜 알아야 되는데!?라고 불평하는 사람들도 있다. 물론 대부분은 아니지만, 국가가 왜 내 주소지 정보를 가지고 있음으로 본인의 사적인 정보가 침해당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더라. 그런 사람들에게 핸드폰 GPS 추적은 그야말로 말도 안 되는 소리로 여길 것이다.


참 웃긴 게 미국 사기업들은 개인 정보를 어마어마하게 가지고 있다. 인터넷 사용 기록만 봐도 내가 어느 사이트를 들렀는지 다 알고 그에 맞게 광고가 나온다. 그리고 핸드폰에 앱을 깔면서 위치 공유를 허락하는 순간, 내가 그 앱을 쓰고 있지 않을 때에도 내 위치를 빼가는 경우가 있다. 이걸 어떻게 알았냐면, 최근 연구자들이 코로나가 어떻게 어디서 잘 퍼지는가를 연구하기 위해서 핸드폰 위치 데이터를 찾기 시작했고, 몇몇 기업이 (정확히 무슨 앱인지는 안 나옴) 그 데이터를 연구 목적 하 공개했다. 이 데이터를 자세히 보면 핸드폰이 움직이고 있는 한, 이 앱을 쓰지 않더라도 한 사람의 위치가 시시각각 기록돼 있다. 이는 국가 차원의 코로나 추적조사보다 훠얼씬 강력한 사생활 침해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별 말을 안 한다. 그렇게 사생활을 중요시 여기지만 이런 식의 침해는 기사화되지도 않는다. 코로나 추적조사에는 들고일어나서 반대하는 미국인들은, 어쩌면 정부에 의한 사생활 침해가 싫은 거지 사기업에 의한 사생활 침해 자체에는 별 생각이 없는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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