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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elles Adventure Dec 09. 2020

미국인이 식탁 위 두루마리 휴지를 이상하게 보는 이유.

두루마리 휴지는 엉덩이, 냅킨은 입, 화장지는 눈과 코에만!

휴지를 쓰는 용도와 부위가 다르다.



한국 우리 집에서는 두루마리는 생필품이었지만 클리넥스 같은 화장지는 가끔만 사는 휴지였다. 냅킨은 집에서는 아예 사본 적이 없다. 우리 집에선 뭐 부엌에서도 두루마리 휴지 꽤 쓰기로 하고, 식탁에도 놓고 냅킨 대용으로 썼고, 내 한국 방 책상에서도 두루마리 휴지를 썼다. 내게는 휴지는 그냥 다 휴지이다. 예를 들면 두루마리 휴지로 코를 풀 수도 있고, 그걸로 식사 중 입을 닦기도 했다. 가끔은 화장지를 냅킨처럼 쓰기도 하고, 밖에서 화장실에 갔을 때 휴지가 없으면 화장지를 썼다. 냅킨으로 코를 풀기도 하고.



미국에 와서 놀란 건 두루마리 휴지, 화장지, 냅킨이 쓰이는 이유와 부위가 완전히 구분되어 있다는 거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이걸 섞어서 쓰는 경우를 미국에서는 못 봤다. 미국에서는 두루마리 휴지는 화장실에서만, 냅킨은 식탁에서 밥 먹을 때만, 화장지는 그 외의 장소에서 주로 코를 풀거나 눈물을 닦을 때 쓴다. 그러니까 미국인들 마인드에는 두루마리 휴지는 엉덩이에만 쓰는 거고, 냅킨은 입에만 쓰는 거고, 화장지는 눈이나 코에만 쓰는 거다. 그들에게 두루마리 휴지는 엉덩이에 쓰는 거라고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왜 화장실에 있을 것이 식탁에 와 있지? 이런 느낌.





이름의 중요성



한국인과 미국인이 인식하는 두루마리 휴지의 용도가 다른 걸 보면, 언어가 사고를 지배한다는 말이 어느 정도 맞다. 두루마리 휴지는 영어로 toilet paper라고 하는데, 이름부터 이미 토일렛 (변기)이 들어가 있다. 참고로 우리나라에서 내가 영어를 배웠을 때는 토일렛은 화장실이라고 배웠고, 그래서 미국에 가서 화장실 어딨어요?라는 말을 Where is the toilet?이라고 물었다. 근데 나중에 알고 보니 미국인들은 토일렛을 변기를 지칭하는 단어로 쓴다. 물론 토일렛이라는 단어로 화장실을 지칭하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대체로 토일렛 하면 변기를 떠올린다. 그러니까 미국인들이 마인드에는 두루마리 휴지는 토일렛 (변기)에서 쓰는 거!라는 인식이 생길 수밖에 없지 않을까?



반면 우리나라에서 두루마리 휴지는 말 그대로 둘둘 말려있는 휴지를 일컫기 때문에, 이름 자체에 화장실이나 변기 등을 지칭하는 단어가 아예 없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두루마리 휴지는 "휴지"라는 인식이 강한 반면 미국인들은 두루마리 휴지는 "변기에서 쓰는 휴지"라는 인식이 강해진 게 아닐까 싶다.








박사 1년 차, 내가 첨 미국 왔을 때 두루마리 휴지를 책상에다 놓고 썼는데 친구들이 어우 저걸 왜 책상에 놓고 써? 라며 자꾸 넘 이상하다고. 그때부터 유심히 관찰해본 결과, 그들은 화장실 휴지는 정말 화장실에서만 쓰더라. 그리고 밥 먹을 때는 정말 냅킨만 쓴다. 내가 밥 먹을 때 입을 닦으려고 화장지(크리넥스 같은 거)를 톡 뽑아서 썼더니, 친구들이 "너 왜 화장지 써?"라고 묻더라. 아니 다 똑같은 휴지인데 애들이 냅킨 안 쓴다고 또 이상 하대. 박사 초반에 맷 (역시 박사 친구, 미국인이며 현재 싱가폴 교수)이랑 저녁 먹다가 냅킨 좀 달라고 했는데, 냅킨이 손에 안 닿는 곳에 있어서 그냥 내 책상 위에 있던 화장지를 줬더니 "냅킨 줘"라고 불평했다. 아 뭐 이렇게 까다롭게 굴어.



유일하게 냅킨 대용으로 쓰이는 건 키친타올이다. 현재 미국 우리 집 식탁에는 냅킨이 있는데, 평소에 밥 먹는데 이 냅킨을 쓰긴 뭔가 아깝다. 냅킨은 손님 왔을 때나 써야 할 것 같고. 사실 굳이 아끼지 않아도 되는데, 괜히 우리끼리 밥을 먹을 때는 냅킨보다는 키친타올을 많이 쓴다. 실제로 손님 초대했을 땐 키친 타올을 쓸 생각은 한 번도 안 하고 냅킨만 쓴다. 우리 시댁에서도 (적어도 내가 방문할 때는) 밥 먹을 땐 무조건 냅킨을 쓰는데, 아마 그건 내가 손님으로 왔으니까 키친타올을 냅킨 대용으로 내주기가 좀 맘에 걸리나보다.



   





내 글은 타당성을 따지는 글이 아니라 보편성에 대한 관찰일기이다. 보편성은 사실관계를 따지는 문제다. 예를 들면 "인류 역사상 살인과 강도는 늘 있었다."는 것이 보편적인 발언이고. 타당성은 "살인과 강도가 과연 옳은가 그른가"를 따지는 가치판단의 문제다. 내가 인류 역사에서 늘 살인과 강도가 있었다고 쓴다고 해서, 살인이나 강도를 가치 판단하는 것이 아니다. 내 글은 한국은 문화가 A인 것 같고, 미국은 저래서 B인 것 같다는 보편성에 관한 글이지, 이래서 뭐가 더 우월하고 저래서 더 미개하다 등의 가치 판단을 하는 글이 아니다.



내가 쓰는 글은 내 경험을 바탕으로 써서 성급한 일반화처럼 보일 수 있는데, 그걸 부인하지 않는다. 내가 겪은 거 쓰는데, 당연히 그게 어떻게 한국 전체를 대변할 수 있겠어요? 근데 내가 겪은 일들과 통계적인 사실 (statistical fact)를 보면 얼추 비슷하게 들어맞는다. 그래서 내가 경험하고 관찰한 문화 차이가 적어도 평균적으로는 존재하는 문화 차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보면, 두루마리 휴지를 여기저기 쓰는 건 나만 그런 건 아닌 것 같다. 한국에서도 물론 이걸 이상하게 보는 사람들이 당연히 있겠지만, 내 글의 요점은 한국에서 식탁 위 두루마리 휴지를 이상하게 보는 사람의 비율이 미국에서 똑같은 걸 이상하게 보는 사람의 비율보다 높다는 거다.






미국인이 신발 신고 침대에 올라가는 이유를 썼다가, 댓글에 내가 한국에서 경험한 위생관념 (예를 들면 반찬을 가족끼리 쉐어한다거나 화장실을 쓰고 나서 손을 안 씻는 걸 많이 봤다)에 뭇매를 맞았다. 이 또한 보편성에 대한 관찰 글이지, 그래서 한국의 위생관념이 미국보다 떨어진다는 가치판단을 하는 글이 아니다. 뭐가 더 더럽고 뭐가 더 우월한 위생관념인지에는 난 별 관심도 없다. 그냥 위생관념이라는 것이 전 세계적으로 보편 한 게 아니라, 지역에 따라 차이가 난다는 게 신기한 걸 뿐. 그리고 "나는 안 그런데?"라는 댓글도 많이 봤는데, 당연히 십분 이해한다. 어떻게 내 경험이 한국인 전체를 대표할 수 있겠나. 내 글은 어디까지나 통계상 평균적으로 (혹은 중간값을 봤을 때) 이러이러하다는 글이지, 한국인 하나하나가 다 이렇게 행동한다고 주장하는 글이 아니다.



참고로 한국 사람들이 반찬이나 찌개를 가족끼리 셰어 하는 일은 실제로 보편적이라서, 신문 기사를 찾아보면 "찌개에 다 같이 숟가락 넣는 거 이제 그만해요~"이런 기사를 자주 본다. 우리가 대체로 그렇게 하고 있었으니까 이런 기사가 나오는 거다. 이게 옳다 그르다가 아님. 반면, 미국에서는 밥을 같이 나눠먹는 일을 검색해보면 "미국인들 해외 나가서 밥 나눠 먹는 걸 보고 놀라지 마라. 그 나라에서는 그게 정을 나누는 방식이니까. 그런 문화에 미국인도 익숙해졌으면 좋겠다"라는 기사가 어마어마하게 많이 나온다. 그 말은 미국인들은 대체로 같은 그릇에 뭘 먹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게 더 낫네 저게 더 낫네의 문제가 아님. 마지막으로, "우리 집은 안 그러는데?" 반문이 든다면, 내 글은 통계적 평균에 관한 관찰이지 한국인 가정 하나하나의 행동양식을 규정하려는 것이 아니다. 한 분 한 분의 집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나도 모르는 게 당연하고, 너희집도 그럴거야! 라고 주장하는 게 아니다. "우리 집은 안 그래"라면 good for you! (영어를 굳이 쓰려는 건 아니었고 한국말로 이걸 어떻게 번역을 해야 뜻이 전달이 잘 될까 모르겠어서 그냥 영어로 쓴 것일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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