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개봉한 ‘대도시의 사랑법’을 보았다. 박상영 작가님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는 정말 좋았는데, 다수가 생각하는 틀에 맞지 않는 재희와 흥수가 오직 서로만이 서로를 온전히 이해하며 가까워지고, 둘도 없는 편이 된다는 줄거리였다. 세상의 틀에 맞지 않은 청춘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면서도 사회적으로 민감하게 다루어지는 주제와 우정과 사랑이 더해있어 사유할만한 것이 많았던 것 같다.
“네가 너인 게 약점이 될 수 없어.”
다수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 맞지 않는다고 해서 틀린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극 중 재희의 대사가 마음에 새겨진 것은 최근 골똘히 생각하던 것과 상당 부분 일치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나는 몇 달 전 우연히 다큐멘터리를 한 편 보았다. 제목은 ‘너에게 가는 길’로 성 정체성을 확실히 찾은 두 청년들의 부모가, 갈등의 시간을 넘어 자식을 응원하는, 더 정확히 표현으로는 그들이 가는 길을 나란히 걷게 된다는 내용의 작품이었다. 한 달쯤 전에는 김혜진 작가의 원작소설 기반 영화 ‘딸에 대하여’를 보았고, 의도하지는 않았으나 이것 역시 동성의 연인을 사랑하는 딸과 그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였다. 앞선 다큐멘터리와 영화에 더불어 ‘대도시의 사랑법’까지 공통적으로는 퀴어 문화를 소재로 삼고 있었는데, 사실 나는 퀴어니 사랑이니 하는 것보다는 극 중 인물들이 자신을 당당히 세상에 내 보이는 순간의 장면이 좋았고 아름다웠다. 나와 다른 점이 있으면 가까이하기보다 멀리하고 배척하는 것이 쉬워진, 보이지 않는 사회적 약자를 설정한 뒤 남은 사람들끼리 강한 결속력으로 뭉치는 것이 흔해져 버린 차별과 편견의 세상에서 스스로 옳다고 여기는 가치를 위해 기꺼이 자신을 던지는 불나방 같은 사람들. 그렇게 예준과 한결, 그린과 레인, 재희와 흥수는 묘하게 겹쳐 있었다.
러닝타임 후 올라가는 엔딩크레딧을 보며 그들과의 다른 점에 대해 줄곧 생각했다. ‘나는 스스로 당당한 사람인가’, ‘목소리를 크게 낼 수 있는 사람인가’에 대해 말이다. 돌아보면 나는 주변의 시선을 어려워해서 평가를 받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부류였는데, SNS가 활성화되고 각자의 일상을 너 나 할 것 없이 공유하는 흐름에 따라 나도 모르는 새에 타인과 비교하고, 재단하는 일에 동조하고 있었다. 물론 남에게만 그러는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도 그랬다. 더 좋은 조건의 직장에 다니거나 동경하는 일상을 보내거나 혹은 탄탄하고 늘씬한 체형을 가진 사람을 보면 그렇지 못한 스스로를 초라하게 여겼다. 좋고 싫음을 당당히 말하지 못한 탓에 음식 메뉴를 정할 때에는 괜찮다는 말만 반복했고, 혹시라도 책 추천 요청을 받을 때에는 취향을 들킬까 멋쩍은 웃음만 지었다. 심지어 인스타그램에 업로드를 할 때엔 어떻게든 예쁜 모습만 보여주기 위해 포토샵에 정성을 쏟기도 했는데, 힘을 들이면 들일수록 사진 속엔 내가 아닌 모르는 이가 가득했다.
그러던 중 눈으로 목격한, 본인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용기 있는 사람들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차마 어플로 찍은 사진 한 장에 비교할 수 없는, 인생을 걸고 싸울 용기가 그들에게는 있었다. 죽는 길인줄도 모르고 불길 속에 뛰어드는 멍청이 같은 불나방은 어쩌면 죽음을 알면서도 마음이 향하는 길로 굳건히 날아든 것일지도 모른다. 물론 그렇게까지 해야 할까 싶을 때도 있지만,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해서 불나방의 선택이 틀렸다고 말할 자신은 없다.
“뜨거운 줄 알면서도 뜨거운 불 앞으로 다가가는 이 모순, 이 모순 때문에 내 삶은 발전할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_양귀자, 모순
저마다의 개인에게는 남들이 판단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 있고, 각자의 삶의 방식과 태도에 대해 옳고 그름을 기준 지을 잣대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데, 무엇 때문에 타인의 시선을 어려워했고 무엇 때문에 나와 맞지 않는 사람은 미운 사람이라고 선뜻 결론지었던 걸까. 한 사람의 시야에 들어온 것이 보이는 전부는 아니었을 텐데, 다 안다고 착각하는 오만과 고집이 아니었는지 돌아보고 싶었다. 이후 작은 실천이라고 말하기도 민망하지만, 어쨌든 보정이 되는 어플보다는 기본 카메라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무슨 상관이냐고 할 수도 있겠다만, 자신 없는 모습도 드러내는 용기 정도로 포장할 수 있을 것 같다. 못나 보일 수는 있어도 정직한 렌즈로 담은 사진에야말로 진짜의 나와 억지로 꾸며내지 않은 자연스러움이 있으니까.
우리는 모두 다른 사람들이다. 다른 곳에 살고, 다르게 옷을 입고, 다른 음식을 먹고, 다른 말을 쓰고, 다르게 생각한다. 그렇지만 틀리게 살고, 틀리게 옷 입고, 틀리게 먹고, 틀린 말을 하고, 틀리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니까 두려워하지 말자. 싫은 건 싫다고, 좋은 건 좋다고 말하는 자유를 누렸으면 좋겠다. 사랑을 사랑이라고 말하고 나는 그냥 나라고 말하며 말간 웃음을 짓던 재희와 흥수의 얼굴을 잊지 않고 싶다. 우리가 우리인 것이 약점이 될 수는 없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