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컹거리는 지하철 창문에 비친 한쪽 어깨는 다른 쪽보다 조금 더 처져 있다. 오른쪽 어깨에 가방을 메는 습관 때문일까 생각하며 온갖 물건들이 어지럽게 섞여 있는 안을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노트북, 필통, 메모지, 그리고 여러 권의 책. 도서전에 다녀오는 길에는, 넉넉한 것으로 들고나갔던 천 가방이 언제나 무겁게 가득 찼는데, 웃기게도 한쪽 어깨가 내려가 있던 건 나만이 아니었다. 행사장 안의 다른 사람들도 모두 너나 할 것 없이 한쪽 어깨가 내려간 채로, 그것도 모자라 양손에 걸어둔 종이가방으로 새빨간 가로줄을 몇 개씩이나 만들고 있었다.
한 때, 한 줄기 빛처럼 일상의 틈새를 파고드는 휴식 시간에는 언제나 쉬어감을 택했다. 나라는 사람을 속속들이 알지도 못하면서 매일 안녕의 인사를 나눠야 했던 수많은 사람과, 처음 마주하는 또 다른 수많은 얼굴들에게 웃어 보이던 날 중 혼자일 수 있는 시간은 많지 않았으니까.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재단당하지 않고, 미소 짓고 싶을 때 웃고, 거짓된 말을 하기보다 침묵할 수 있는 진짜의 나로 존재하고 싶었다. 다양한 목소리보다 산책하며 잠재워진 내면에 귀 기울이는 것이 더 편했고, 시시콜콜하고 사사로운 하루를 공유하기보다는 나만의 메모장에 써 내려가는 것이 더 좋았다. 마치 잔잔한 호수 속을 미끄러져 들어가듯 고요한 내게로 기울 수 있던 평화였다. 조용한 새벽에는 독서등을 켜둔 채 책을 읽었다. 어느 날에는 현실 세계와 동떨어진 낭만 가득한 소설을, 또 어느 날에는 여행하듯 자유로운 삶이 펼쳐진 에세이를 읽었는데, 언제든 페이지를 펼치기만 하면 책들은 다가와 문을 두드렸다. 똑똑- 하며 조심스럽지만 친절하게. 활자들로 가득 찬 종이엔 이름 모를 이들의 순수한 미소와 미지근한 눈물, 그리고 뜨거운 열망이 가득했다.
이상한 일이다. 어쩌면 지구 반대편에나 살지도 모를 사람들에게 위로받을 수 있다는 것과 만난 적도 없는 이들의 유머에 속절없이 터지는 웃음이 난다는 사실은 참 이상한 일이었지만, 내게만 기울어 있던 마음은 어느새 이름 모를 그들에게로 기울어져 갔다. 담담히 자신을 드러내는 용기와 차분히 전하는 위로를 자세히 들여보고 싶어 자꾸만 자꾸만 기울게 되었다.
‘네가 혼자 있을 때도 내가 곁에 있을 거야.’라고 다정한 구원을 건네는 글의 힘을 믿는다. 글과 글로 연결된 사람들의 조용한 연대를 믿는다. 비록 한쪽 어깨가 내려간 모습으로 기울었지만, 그러다 쿵-하고 넘어질 수도 있지만. 서로에게 기대는 마음으로 굳이 넘어지고픈 욕심이 난다.